[꽃 피어날 추억] (89) 두레박이 수도꼭지로 변한 삶
[꽃 피어날 추억] (89) 두레박이 수도꼭지로 변한 삶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3.04.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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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박이 펌프로 바뀌고, 펌프 파이프와 순환 모터의 만남과 간이상수도 설치로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사용하였다.
두레박과 방치된 공동우물의 모습. 유병길 기자

 

1950년에서 70년대 농촌 동네에는 공동우물 한두 개가 있어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 봉강리 새마에는 동네 입구에 하나, 아래 뜸에 하나, 뒤 뜸에 하나가 3개가 있었다. 3개의 우물 중에 동네 입구 우물의 물맛이 제일 좋았고 물이 많이 났다. 가뭄이 심할 때 다른 2개의 우물은 물이 말랐어도 이 우물만은 마르는 일이 없었다. 향나무 밑의 공동우물은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여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두레박을 우물 속에 던질 때 요령 있게 던지면 두레박이 물속에 풍덩 들어가는데, 들어가지 않으면 줄을 이리저리 당겨서 물속에 들어가게 하고 두 손으로 두레박줄을 잡아당겨 물을 퍼 올렸다. 두레박줄은 언제나 젖어있어 겨울에는 두레박줄이 얼어서 뻣뻣했다. 여인들의 손길에 녹았다.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항아리에 붓고, 다시 두레박을 넣어 물을 퍼 올리고, 여러 번 퍼 올려 항아리 가득하면, 두레박을 뒤에 사람한테 주거나 향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똬리를 머리에 올리며 달린 줄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항아리를 힘겹게 들어서 머리에 이고 부엌의 물독에 물을 부었다. 새벽에 여인들이 종일 먹을 물을 물독에 가득 채웠다. 밥 짓고, 숭늉과 국도 끓이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삶고 냉수로 마시는 생활용수가 되었다.

함석 물통과 물지게, 똬리의 모습. 유병길 기자

 

50년대 후반에 남자들이 함석 물통에 물을 퍼서 물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금남의 구역이 남녀 공용 우물로 바뀌었다. 이웃집에 설치된 펌프를 보고 부러워들 했지만, 돈이 없어 설치를 못 했다.

집 집마다 설치되었던 펌프의 모습. 유병길 기자

 

60년대 초 동네에서 두 번째로 펌프를 박는 집이 생겼다. 펌프의 편리함을 보고 동네에 펌프 설치 붐이 일어 60년대 후반에는 모두 펌프를 설치하였다. 공동우물은 농업용수로 방치되고, 두레박, 물지게, 똬리, 항아리 등은 사라졌다.

80년대 초반 입식 부엌 개량하면서 펌프 위를 잘라내고 파이프를 순환 모터에 연결하여 부엌, 화장실, 욕실의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았고, 부엌 개량을 하지 않은 집도 부엌과 마당에 수도꼭지를 설치하여 편리하였다. 그러나 순환 모터 고장이 자주 났고, 겨울에 보온을 잘하여야 얼지 않았다.

간이 상수도가 설치되면서 마당에 설치된 수도 꼭지. 유병길 기자

 

2000년대 동네 젊은 지도자들 노력으로 상주시의 보조를 받아 마을 뒤 절터 골 입구에 지하 암반 120m을 뚫어 간이 상수도를 설치하였다. 집 집마다 주방 욕실에서 간이 상수도 물을 펑펑 쓰게 되어 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려운 시절 설치하여 편리하였던 펌프 파이프, 순환 모터가 철거되면서 고철로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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