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와 벚꽃 피날레, 거창 쌀다리
돌다리와 벚꽃 피날레, 거창 쌀다리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4.0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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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 해주 오씨 형제가 길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백미 1천석을 내 놓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돌다리

 

한양가는 길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옛 돌다리와 용원정 주변 모습. 장희자 기자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눈이 부신가.

일시에 큰소리로 환하게 웃고

두 손 털고 일어서는 삶이 좋아라.

끈적이며 모질도록 애착을 갖고

지저분한 추억들을 남기려는가.

하늘 아래 봄볕 속에 꿈을 남기고

바람 따라 떠나가는 삶이 좋아라. 

(벚꽃의 꿈, 유응교)

 

쌀다리는 경남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병항마을 입구에 있다. 고학(皐鶴)이란 높은 언덕으로 풍수지리설의 산세 모양에서 높을 고(皐)자와 새 학(鶴)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기백산의 동남기슭에 있다. 기백산에서부터 시작된 마리천이 마을을 관통하여 남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병항(柄項)마을은 동쪽 당봉(堂峰)의 자라바위와 서쪽의 자라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중앙의 목넙 고개 터에 자리하고 있다. 자래목이라 하다가 일제 때 병항으로 고쳤다. 400년 전 해주오씨 구화 오수의 후손들이 터를 열었다고 한다.

돌다리 아래에서 위쪽으로 바라본 모습으로, 한 개의 받침돌 위에 두 개의 큰 돌을 연결했다.  장희자 기자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가는 삼남대로였다. 다리가 없어 길손들이 불편해 하자, 해주 오씨 오성재(吳聖載), 오성화(吳聖化) 형제가 1758년 백미 1천석을 내 놓았다.  큰 돌을 구하고 석공에게 돌을 다듬게 하여 수백 명이  3일 동안 운반하여 다리를 놓았다고 전한다.

다리는 용원정 앞의 마리천 작은 개울 위에 놓여 있다. 쌀다리라 부른다. 당시 안의현감 이성중이 이곳을 방문하여 오씨 문중이 크게 번창하는 것은 이런 공덕 때문이라고 칭찬하였다.

용원정 위에서 마리천 개울쪽을 바라본 모습으로 벚꽃나무 아래 돌다리가 보인다. 장희자 기자

한 개의 중심 받침돌 위에 두 개의 큰 돌을 연결지어 마치 거문고처럼 누운 평교 돌다리이다. 길이 11.10m, 폭 1.25m, 높이 2m이다. 중간에 교각을 세우고 양쪽에는 석축을 쌓고 상판 두 장을 얹어 만들었다.

1917년 대홍수로 다리 한쪽이 유실되어 오랫동안 활용되지 못했다. 1964년에 후손들이 큰 돌을 구하여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 개설하였다. 옛길을 답사하는 사람들과 용원정에 가는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다.

용원정은 쌀다리 건너편에 있는 정자이다. 해주 오씨 입향조 구화공 오수(吳守) 선생을 기려 후손들이 세웠다. 기백산에서 흘러내리는 용폭(龍瀑)의 근원을 생각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다락처럼 높이 지은 누각 형태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효열각 앞에서 돌다리를 바라본 모습으로 벚꽃나무 가지가 다리위로 늘어져서 벚꽃사진 촬영 명소로 애용되고 있다. 장희자 기자

용원정은 단청이 화려하다. 천장 중앙으로는 청룡과 황룡을 조각한 대들보가 있다. 악기를 연주하며 하강하는 선녀들과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의 도깨비 등이 그려져 있다.

용원정 오른쪽에는 1965년 세운 해주 오씨 입향조인 오수선생의 비석인 구화오공유적비(九華吳公遺蹟碑)가 낮은 사각 석축에 둘러싸여 있다 . 비석 아래의 큼직한 이수(龜趺)가 이채롭다. 왼쪽에는 해주 오씨, 청주 한씨의 효열각과 오성재, 오성화 형제의 설교 사적비가 있다.

쌀다리를 건너기 전에 큰 바위가 있다 . 바위 위에 오세안시혜불망비(1910년), 오석규시혜불망비(1911년), 오세원시혜불망비(1974년)가 있다. 덕을 쌓은 해주 오씨 세 분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면민들이 세운 비석이다.

 

마리천 상류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개나리와 벚꽃나무가 돌다리와 어우러진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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