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선대, 최치원 선생의 발걸음을 따라서
부산 신선대, 최치원 선생의 발걸음을 따라서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3.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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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에선 바람에 흔들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심신이 맑아진다

 

해발 170m 산 정상에 있는 신선대에서 확 트인 바다, 저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최치원 선생이 이곳을 거닐였던 발걸음을 따라서 걸으니 심신이 맑아졌다. 장희자 기자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

 

신선대는 부산시 남구 용당동 산170번지 일원에 있다.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29호이다. 기장군 일광면 달음산에서 시작한 금련산맥은 장산·금련산에 이어져 황령산에서 뻗어 나온 봉래산 산등성이가 부산 만에 몰입하는 우암반도(牛岩半島) 남단에 해당한다.

화산암질 해안이 파도의 침식으로 발달된 해식애와 해식동으로 절경을 이룬 곳으로 용당동 해변의 좌안에 있는 바닷가 절벽과 산 정상을 총칭한다. 신선대 주변의 산세가 못을 둘러싼 용의 형상과 같다고 하여 이 일대를 용당(龍塘)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선대에서 좌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조도 뒷편으로 영도의 태종대가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장희자 기자

속설에 의하면 신라 때 문장가 최치원 선생이 신선대 경관을 즐기면서 바위에 신선대라는 친필 각자를 남겼다고 전해오는데 오랜 세월 풍상 속에서 마멸되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산봉우리의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어서 신선대란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797년(정조 21년) 10월 14일 영국의 탐사선 프로비던스호 일행이 신선대를 방문하여 주민들과 접촉하였다. 해방 후에는 수려한 모래사장과 주변의 아름다운 해안의 절경 때문에 해수욕장으로 활용되다가, 이곳 일부가 부산항 관문으로서 군사상 요충지로 지정되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

지금은 휴식공간으로 개방되어 많은 시민이 즐겨 찾고 있다. 신선대 정상에서 바라다보이는 확 트인 대양의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가슴 맑아진다. 정상에서 오륙도, 영도, 조도, 부산 내항을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관망된다. 한ㆍ영 첫 만남 200주년 기념비도 설치되어있는 역사적인 명승지이다.

신선대에서 동편을 바라본 모습으로 언덕 아래 한·영 첫만남 기념비가 있고, 저멀리 바다에는 오륙도와 방파제가 보인다. 장희자 기자

신선대 주차장 옆에는 무제등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과거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쓰레기 소각장이 운영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휴식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공원 안에는 신선대 산봉우리를 포함하여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10장생(해ㆍ달ㆍ산ㆍ물ㆍ사슴ㆍ거북ㆍ학ㆍ대나무ㆍ소나무ㆍ불로초)을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다우측으로 벚나무, 동백나무, 개나리가 심어진 산자락 길을 따라 0.6㎞ 정도 걸어가면 정자와 함께 삼거리가 나타난다.

신선대에서 우측을 바라본 모습으로 감만부두와 부산항대교가 보이고 배들이 오가고 있다. 장희자 기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올라가면 해발 170m 정도에 무제등이란 신선대 전망대가 나타난다. 신선대 바로 아래 해안에는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가 있다. 정면으로 저 멀리 중리산 아래 국립해양박물관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부산 감만부두와 부산항대교가 한눈에 다가온다좌측으로는 조도와 영도 태종대가 보인다.

전망대 옆에는 고사포를 설치한 방공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방공호에서 동편을 바라보면 바다 저 멀리 오륙도가 가깝게 보인다. 방공호 아래로 산자락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한ㆍ영 첫만남기념비가 조성되어 있다. 삼거리로 되돌아와서는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면 애국지사 정몽헌 묘소가 나타난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신선대 주차장 옆에 있는 무제등공원은 십장생을 조성해 놓은 시민 휴식공간이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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