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환산(桓山) 이윤재(李允宰)의 '성웅 이순신'
(63) 환산(桓山) 이윤재(李允宰)의 '성웅 이순신'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6.0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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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산 이윤재민족대백과사전
환산 이윤재 민족대백과사전

 

3·1만세운동(1919년) 이후, 독립지사들이 나라를 구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고대사 연구, 우리말 보존 운동, 그리고 문학 작품 저술, 등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단재 신채호가 1908년 국한문혼용판 '대한매일신보'에 '수군제일위인(水軍第一偉人) 이순신'(5.2∼8.18)을 연재한 것이 문학을 통한 구국 활동의 본보기였다. 그 마지막은 이러하다. “이에 이순신전을 지어 고통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양식으로 보내노니, 무릇 우리 착한 남자와 미쁜 여자는 이를 모범하며 이를 보추(步趨;빠르게 뒤쫓아)하여 형극(荊棘) 천지를 답평(踏平)하며(가시밭 천지를 평지처럼 다니며) 고해의 난관을 넘어갈지어다. 하늘이 20세기의 태평양을 장엄히 하고 제2의 이순신을 기다리니라.” 글자 그대로 나라를 위한 단재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31년, 독립 운동가이며 한글학자이자 교육자였던 환산 이윤재(1888-1943)가 '성웅 이순신'을 출간했다. 이는 단재 신채호를 정신을 계승한 환산의 노력이었다. 이순신을 처음으로 ‘성웅(聖雄)’이라는 칭한 전기(傳記)였으나, 제2판이 다 팔리기 전에 일제에 의해 ‘발매 금지’를 당했다. 위당 정인보가 이 책의 서문을 쓰면서 ‘성웅’이라는 뜻은 자식의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위대한 모성(母性)의, 즉 어머니의 지혜라는 의미에서 ‘성웅’이라고 설명했다. 저자 환산 이윤재는 이순신을 ‘성웅’이라고 했으나 신격화 하지 않고, 우리 민족을 구해 낸 위대한 장수로 드높였다. 해방 직후 1946년, 환산의 아들 이원갑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 독감방(獨監房)에서 쓸쓸히 떠나신”이라는 애통한 서문을 써서 이 책을 재출간했다.

1968년 노산 이은상이 '성웅 이순신'을 출간하면서 ‘성웅’ 이라는 이미지가 시대의 관심사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을 영웅화한 이은상의 과욕을 받아들인 박정희의 정치적 야심으로 인해서, 오히려 이순신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이순신을 사유화하려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었다.

‘성웅’의 ‘성(聖)’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이런 불행한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단서는 ‘성(聖)’이라는 글자의 근본 의미에 있다. '강희자전' '설문해자' 등 중국의 전통적인 자전(字典)을 보면, “聖 通也.(성스러움은 통함이다.)” 그리고 “聖 無所不通(성은 무소불통;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음, 즉 두루 통함) 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리고 성(聖)은 “博達衆務(박달중무; 세상일에 널리 통달함), 庶事盡通(서사진통; 모든 일에 두루 통함) 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성(聖)은 종교적 차원에서 ‘거룩하고 성스러운’, 추상적으로 신격화 된 의미보다, ‘세상만사에 달통(達通)하여 치국·평천하를 이끌어 주는 지도자(君子)의 능력, 그 탁월한 인격’을 뜻이 선행한다. 그러므로 성웅(聖雄)은 ‘만사에 통달(通達)한 지도력(leadership)으로 백성들과 두루 소통(疏通)하며 세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라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문과 합격하여 정랑(正郎,정5품)의 벼슬을 지낸 조카 이분(李芬)의 '행록(行錄)', 승지 최유해의 행장(行狀), 대제학 이식(李植)의 '익장(謚狀)' 그리고 '난중일기'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성웅 이순신’은 수군 장졸들은 물론, 고통당하던 백성들까지 거침없이 소통(疏通)하면서 탁월한 병법으로 왜적을 물리친 ‘세상만사에 달통한 소통의 지도자’, 즉 성웅이었다.

누군가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느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에서 언어에 갇혀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는 ‘무명(無明; 잘못된 생각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어의 어두움’, 즉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서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누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것이 왜곡된 이념의 우물이라면, 밝은 대지로 걸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밝고 선명한 ‘의미의 등불’을 치켜들고 그 심지를 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