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5.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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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만 더 살고 갔으면 원이 없겠다 여기고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약방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혼자만이 알아 볼 수 있는 문자나 기호들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설령 약 3년에 걸친 처절한 전쟁 끝에 남정네 보기가 보석을 구하듯 귀해서 시집을 못가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칠푼이 팔푼이가 된다던가? 바보 병신이 된다던가? 아니면 혼령이 저승에 못 들어 구천을 떠돈다는 처녀귀신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늘이 할머니에게 내리는 신의 계시와 같았고 오롯이 자신이 감내해야할 숙명과 같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나아가 할머니는 6남매를 낳아 4남매를 운명의 장난에 휩쓸려 일찌감치 가슴에 묻어 앞장세운 얄궂은 삶이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으로 태어난 고모다. 더 이상 가슴에 묻을 자식이 없다고 뼈에다 아로새긴 할머니다. 그때 할머니는 자신보다 고모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더 살고 갔으면 원이 없겠다 여기고 있었다.

처음 얼마간은 불면 날아갈까? 건드리면 터질까? 신주단지 모시듯, 보물단지처럼 끼고 살았다. 그 와중에 이웃사람들이 고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쑥덕거려가며 말끝마다 올망졸망 새끼를 치고, 거품처럼 부풀려 갈 때는 불같이 화를 냈다.

“왜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밤 놓아라! 참견이냐”며 벼룩의 간만큼, 모기눈깔만큼도 도움을 주지 못할 바에는 아예 없는 샘치고 입을 다물라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할머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괴팍스럽고 고집불통의 여편네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선물처럼 받는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은 당연하다는 듯 괘념치 않고 있었다.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해 주구장창 누워만 지내는 딸을 둔 어미로써 동네 사람들로부터 귀머거리 삼년, 봉사 삼년, 벙어리 삼년의 시집살이쯤은 오히려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모에 대한 미련을 영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동아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고모가 여느 애기들보다가 한참이나 늦더라도 미구의 어느 날에는 어눌하나마 말을 할 것이라 여겼고, 절름발이 일망정 자리를 훌훌 털고는 어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새싹이 파릇파릇한 들판을 노루새끼모양 껑충껑충 뛰어다닐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 상태로 짐작하건데 할머니가 고모에게 그러한 날을 기대하여 바라기에는 애당초 무리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모의 추위는 유별나 한여름에도 솜이불에 둘둘 감겨서 지낼 정도로 병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뼈를 감싼 살집은 늘 그대로지만 키 만큼은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대동소이하게 자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솜이불을 풀고 보면 고모의 몰골은 이집트의 고대 무덤인 피라미드에서 간간이 발견된다는 미라와 다를 바 없었고, 면례(緬禮:무덤을 옮겨서 다시 장사를 지냄)때 관속에 들어 썩지 않은 송장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제나 살이 붙을까? 저제나 힘 줄에 힘이 들어 지렁이처럼 툭툭 불어져 꿈틀거릴까? 오늘일까? 내일일까? 노심초사 이불을 들쳐 고모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할머니의 눈은 늘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욕심이 지나쳐서 그럴까? 틈 날 때마다 보고 또 봐도 늘 그 모양 그대로인 고모는 한 치의 병세도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 던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는 지금껏 고모의 병세를 쉬쉬해온 전례를 깨고 만나는 사람마다 민간요법을 물어가며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병은 소문을 내야 그에 걸 맞는 특효약을 구할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듯 했고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금선탈각처럼 매미번데기가 고치를 뚫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진리처럼 지독한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고모의 병세를 성심을 다해 적극적으로 치료하다 보면 어느 한 순간 꿈을 이룰 있다는 결론에 이른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고모의 병에 대해 적극성을 띠자 그동안 무심하게 돌아섰던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천적을 만나 입을 앙다물었던 조개가 때를 맞추어 밀려드는 밀물에 휩쓸려 제 세상을 만난 듯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을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발 없는 말이 순풍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또한 만나는 사람들마다 고모가 그동안 앓아오고 있는 병세를 꼼꼼하게 설명하고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약방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할머니는 틈틈이 족집게로 소문나고 용하다는 무당들을 자주 찾았다. 그때 만나는 무당들마다 할머니에게 고모를 들어 “잡귀가 씌었다. 윗대 조상들 산소자리에 물이 찬다. 성주신, 조왕신, 천왕신, 칠성신 등등 듣도 보도 못한 신이란 신들을 줄줄이 열거하며 어머니 자리로써 이들 신들께 극진한 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또 먼 친척 중에 떠돌이로 객사한 귀신이 있어 고모를 해코지를 하고 있으므로 천도제부터 지내야 한다고도 했다. 나아가 몇 대의 조상 중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데 저승 갈 노자가 없어 노잣돈을 구하려 다니다가 고모에게 껌 딱지처럼 찰싹 붙었다”는 등 알 수 없는 말을 그럴싸하게 지껄여 대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기보다는 굿을 하라는 부축임만 강요 당했다. 결론적으로 고모에게 붙은 잡귀를 강제로 떼려면 굿은 필수불가결, 그러기 위해서는 집을 팔고 땅을 팔란다. 용하고 뛰어나고 위엄을 갖춘 장군신이나 관운장 같은 유명 신을 불러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때로는 전 재산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할머니가 느끼기에는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돈 뿐이었다. 100%보장을 못한다는 어정쩡한 대답이 그랬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전혀 얻는 것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무당들을 수도 없이 만나다 보니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대로 된 내림굿만 없었을 뿐이지 서서히 선무당이 되어가고 있었다.

손가락을 헤아리고 집어가는 중에 어설프게나마 사주를 풀어내고, 상에다 엽전이나 쌀 등을 펼쳐 신수를 헤아리고, 펼친 쌀을 모아 그 가운데 숟가락을 세우고, 천수경, 반야심경 등을 떠듬떠듬, 갈대를 묶어서 송충이 등 같은 돗자리를 만들어 내듯 중얼중얼 외우게 된 것이다. 또 어느 때부터는 벽사의 일종으로 부엌칼을 숫돌에 갈아내고, 집안의 한쪽 벽면을 들어 간단하게나마 구색을 갖춘 신당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늘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무당들을 수시로 마주하다 보니 일자무식 꾼의 할머니가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글씨를 쓰지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천성적으로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즈음하여 할머니는 종이쪼가리와 몽당연필을 품에 품 안에 끼고 살았다. 무얼 적는지 늘 끄적거리고 있었다. 종이쪼가리가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할머니는 혼자만이 알아 볼 수 있는 문자나 기호들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는 무당들이 할머니를 들어 돌대가리에 무식하다고 내지른 호통 때문 만은 아니었다. 고모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목표 의식이 확고하다 보니 부끄럽고 서러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때로는 불치하문이라고 시중드는 어린동자동녀에게 머리를 굽실거려 묻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우고 있는 얄팍한 지식을 일사천리, 문장으로 이해하여 글로써 쓴다던가? 또 쓴 글을 읽어 내지는 못했다. 단지 암기력에 의존하여 곡예를 하듯 위태위태하게 외우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열 문장을 들으면 열 문장 전부 잊었다. 그럴 때면 무당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무식해서 어떻게 병든 자식을 살린단 말인가?”하고 날벼락이 떨어지듯 호통 일색이었다. 그렇다고 결코 포기할 수가 없는 할머니였다. 그런 나날들이 겹치고 겹치다가 보니 점차 머릿속으로 찌꺼기처럼, 앙금처럼 남는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한 문장을 기억하고 두 문장을 기억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게 된 것이다. 처음이 어려웠지 기억력이 점차 향상되고 주문이란 것 또한 매 일반, 거기서 거기다보니 스스로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할머니는 할머니만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봄날이었다. 신작로 저 끝으로부터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꿈결 같은 봄을 뚫고 산 너머에 산다는 용한 의원이 찾아 들었다. 이는 생각 밖의 일로 할머니가 있는 듯 없는 듯 뿌려놓은 밑 밥에 씨알 굵은 고기가 걸려 들 듯이 생면부지의 의원이 덥석 물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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