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5.1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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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여의주를 얻은 것처럼 꿈 같은 현실이었다.
미미한 온기는 있을지언정 생기가 희미하다.
나이어린 새색시가 울던 울음을 울먹울먹 가슴으로 삼킨 우거지상 같았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초옥지려의 누추한 방으로 안내하여 의원을 대접하는 할머니는 머리조차 재대로 들지 못해 가을바람을 맞는 갈대처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건대 임금님을 시중드는 무수리와 다를 바 없었다. 황송하고 감사한 나머지 발걸음은 만취한 취객처럼 어지럽고 흥분한 마음은 방향을 잃어 엄벙덤벙 거린다. 그때 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갈피를 못 잡았는지 높지도 않은 문지방에 발이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냉수를 떠오다가는 평생을 두고 드나들어도 받친 적이 없는 문설주에 머리까지 찧는다.

“아~ 얏”하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오늘따라 내가 왜 이럴까? 왜 이러지?”하고 자책하는 할머니는 고모의 악착같은 병세가 씻은 듯 치료되고, 그것이 과욕이라면 실낱같은 치료방법이라도 알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설사 멀쩡한 머리가 문설주에 받혀 수박이 갈라지듯 터지고, 문지방에 걸린 발등이 깨져 피 범벅이 된다할지라도 함박웃음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아가 시중들기에 지친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용한 의원이 찾아들었다는 그 자체가 할머니에게는 용이 여의주를 얻은 것처럼 꿈같은 현실이었다.

당시 의원이라면 촌부들의 눈에는 아망위에 머리를 올려 살던 지체 높은 분들이다. 그렇게 하늘같이 높아 보이는 의원이 내 집을 제 발로 찾아든 것이다. 병든 고모의 의뭉스러운 병세를 찬찬히 살피려 앉아있는 것이다. 상투를 가린 탕건이 주먹으로 한 방 얻어맞은 듯 찌그러진 갓 속에서 아슬아슬한 것이 더 신비롭게 보였다. 회색두루마기를 걸쳐 입고는 가부좌를 틀어 앉은 모습이 시선처럼 고고하다.

사대부들의 집안일이라면 이따위쯤이야 다반사로 흔한 일이겠지만 촌구석에 그것도 하늘만 겨우 가릴 정도로 어설픈 초가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헌데 청하지도 않았건만 제 발로 찾아들어 진료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진료비야 어찌되었건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날도 있단 말인가? 낮도깨비에 홀려 동구 밖 정자나무와 두꺼비시름 끝에 지처서 나가떨어진 주정뱅이가 까무룩 잠든 토막잠 중에 꿈을 꾸는 듯했다. 한단지몽의 노생이 베갯잇 속으로 들어가 딴 세상을 만난 듯하다. 눈앞으로 솜이불을 걷어낸 고모가 걸음마를 하듯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고, 이것이 진정 생시인가? 꿈인가?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보고 싶고, 볼을 꼬집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성주신께 밤낮으로 치성을 드린 효험인가 싶어 봉당을 지나는데 머리는 수굿하고 발걸음은 교육 중인 생각시의 걸음걸이인양 한결 조심스럽다.

아무려면 어때? 병 깊은 딸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을 의원으로부터 알아내고, 그로인해 죽어 자빠진 송장이 생시를 맞은 듯, 바짝 독이 오른 독사대가리처럼 벌떡 일어나 남들처럼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바리데기공주가 부왕인 죽은 아버지를 살리려 사지에서 구해온 약수를 의원으로부터 전해 받는다고 여긴 것이다. 살이 썩어 허옇게 들어난 뼈에 거짓말처럼 생살이 뿌옇게 부풀어 올라붙는다는 그 특효약을 금방이라도 전해 받는 듯 착각에 빠져 들어가는 할머니다. 불식간 송장처럼 누워있던 고모가 “엄마”하고 일어나 까치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삽짝을 나서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때 할머니가 가장 먼저하고 싶은 것은 유명장인이 만든 올 고은 참빗으로 고모의 머리를 가을햇살처럼 가지런하게 빗겨내려 치렁치렁 땋아주는 것이었다. 삼단 같은 검은머리를 새앙머리로 곱게 땋아 붉은색, 금색, 은색, 옥색댕기 중에서 예쁘고 아름다운 것으로 고르고 골라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드리우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고모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모지랑이 빗자루처럼 옹송그려 누웠다. 흰자위가 눈두덩을 넘칠 듯 가득한 눈망울에 호기심을 가득 담아 좌우상하로 또르르 굴려가며 말똥거리고 있다.

그런 고모의 눈동자를 일별하고 머리를 보는 할머니는 환상에서 깬 듯 아랫목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이다.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민둥산을 닮은 듯 대머리에 가까운 고모의 머리, 저 듬성듬성한 머리를 어쩐단 말인가? 옥색댕기는 왜 생기고, 금색댕기는 어찌하여 만들어졌단 말인가? 또 때때옷은 누가 무엇 때문에 만들었단 말인가? 잠시 잠깐 희망에 부푼 꿈을 깬 할머니는 진맥하는 의원의 손길을 하나라도 놓칠까싶어 정신일도, 찬찬히 살핀다.

그때 솜이불을 들쳐 고모의 몰골을 내려다보던 의원의 눈초리가 허공으로 돌아간다. 동공이 하얗게 흔들린다. 빼빼 말라비틀어진 고모의 손목에서 생기를 찾으려는 듯 이리저리 더듬어가며 눈을 지그시 감고 진맥을 하던 의원의 고개가 갸웃한다. 미미한 온기는 있을지언정 생기가 희미하다. 실눈을 뜬 듯 감은 듯 지긋한 눈꺼풀이 파르르 떤다. 금 침, 은 침을 들었다가 놓기를 수차례 반복이다.

그렇게 얼마 만큼의 시간이 침묵 속에 흐르고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할머니의 마른 침이 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방정맞게 ‘꿀꺽’한다. 무안한 할머니는 그저 부끄럽고 민망하여 고개를 들지 못해 방바닥만 뚫어지게 훑고 있다. 이윽고 “어~ 어~흠”하고 헛기침을 내뱉던 의원이 고개를 뒤로 젖혀서는 천장에 들어난 서까래를 하나하나 세듯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머리를 좌우상하로 흔들며 이리저리 궁리 아닌 궁리에 골몰하는가 싶더니 어렵게 입을 뗀다.

“엣~ 또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에~또 그에 맞은 비답을 찾아 적절하게 치료했지만 댁의 따님 같은 환자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병세는 짐작하건데 전무후무할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 해도 천운입니다. 어지간하면...!”하고 말끝을 흐린다. 그 뜻을 가만히 헤아려보면 고모의 생을 이쯤해서 포기하라는 것으로 밖에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었다. 할머니가 만약 손톱 밑의 때만치라도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이날이 되도록 고생고생하며 고모의 시시때때로 흩어지려 드는 혼을 붙잡으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에라 이 빌어먹을 의원나부랭이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면 딸애가 태어 낳을 당시 없는 샘치고, 두 눈 질끈 감고, 물이 든 옹기에 거꾸로 처박던가? 그도 아니면 솜이불에 엎어 솜베개로 짓눌러 버렸지! 차라리 매춘부더러 수절을 하라고 해라! 누구는 뭐 머리가 없어 그만한 생각이 없었을까? 하여튼 못돼먹은 작자 같으니”하는 할머니는 속으로는 의원을 향해 욕을 바가지~ 바가지 퍼붓고 있었다. 또 속으로 “쥐꼬리만큼의 알량한 재주가 무슨 용빼는 줄 알고! 돌팔이 주제에 꼴에 의원이라고 거들먹거려 돈만 밝히는 에라 나쁜 놈 같으니라고”하며 일갈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헤픈 웃음을 날리며 “의원님 그래 어떻습니까? 혹 치료할 방법이라도...”하고는 의원의 턱밑까지 바짝 다가앉는다. 그 모습이 비록 얼굴에 웃음기를 띠웠다지만 표독한 시어머니의 서슬에 놀란 나이어린새색시가 울던 울음을 울먹울먹 가슴으로 삼킨 우거지상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무슨 비답이 나올까? 의원의 비위를 상할까? 연신 헤실헤실 억지웃음으로 의원의 입만 애타게 바라보며 다그치듯 앉았다. 일각이 여삼추라!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할머니의 입안에 고인 마른 침이 재차 울대를 넘어가는지 ‘꿀꺽’하는 소리가 방정을 떤다. 흡사 자갈밭에 케터필더가 구르는 소리 같다. 이후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천장에서 팔랑팔랑 먼지 떨어지는 소리가 산비탈을 구르는 바위처럼 우렁차다. 시간이 멈춘 듯 침묵의 시간이 고요하게 흐른 어느 때 마침내 입을 뗀 의원이 떨리는 듯, 어눌한 듯 어렵게 다음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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