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5.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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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먹을 똥개 한 마리가 비척비실 고샅을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금기시 했지만 워낙에 답답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에 올린다.
할머니는 한의학, 즉 민간요법에 한발 두발 다가서고 있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에~ 또! 그러니까 성심을 다해 따님의 병세를 알아보고자 진맥을 하긴 했는데! 에~ 또! 저의 지식이 짧고 재주가 모자란 탓도 있겠지만 따님의 병세가 하도 희귀해서! 에~ 또! 그러니까 워낙 희귀병이다 보니까! 에~또! 그러니까 병에 대한 원인도 또 치료 방법도 찾지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에~ 또! 그러니까 전여 모르겠소이다.”며 서리 맞은 고춧잎처럼 풀이 죽어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처음의 당당하던 때와는 달리 얄팍한 지식과 바닥난 재주가 부끄러운지, 그도 아니면 변명 아닌 병명을 억지춘양 격으로 장황하게 늘여 놓자니 긴장한 탓이지 “에~ 또”와 “그러니까”를 연발하는 그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모양 우거지상에 초라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비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그 모습이 마파람을 탄 해동청의 날렵한 날갯짓소리에 지레 겁을 집어먹어 꽁지 빠져라 도망가는 가는 장끼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닮았다.

하지만 다급해진 쪽은 여전히 할머니다. 할머니의 입장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건진 것 없이 의원을 맹탕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라 여긴 할머니다. 따라서 서둘러 떠나려는 의원을 억지로 주저앉힌 할머니는 희극배우도 아니면서 재차 만면에 웃음기를 가득 띄우며 “의원님 제발”하며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몇 마디, 그조차 언감생심 욕심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풍월이라도 한마디만 주고 가라고 애걸복걸이다. 단지 안 된다는 말만은 하지 말고 몸에 좋은 약재 하나만이라도 알려달란다. 그렇게 애절하고도 간절한 정성이 통했는지 한참을 기가 차다는 눈으로 지긋이 할머니를 바라보던 의원이 몇몇 가지의 약재를 적은 종이 한 장을 할머니께 전해주며

“에~ 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 또!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에~ 또! 병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약은 필연적으로 있을 겁니다. 에~ 또! 어디엔가 약이 있고, 에~ 또! 길이 있을 겁니다. 에~ 또! 저 또한 미흡한 재주나마 오늘 진맥을 근거로 조용히 따님의 병세에 대해 황제내경이라던가 또 동의보감 등의 책을 뒤지든가 하여 심도 있게 연구해 볼 겁니다. 에~ 또! 그 과정에서 실낱같은 실마리라도 찾아낸다던가, 에~ 또!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생각난다던가, 짐작되는 바가 있으면 후일 인편을 통해 기별을 하던 지 아니면 발품을 팔아 꼭 다시 들리리다”하는 통상적인 인사치례를 남기고는 삽짝을 들어설 때의 당당함은 어디로 갔는지 빈 보리쌀자루처럼 후줄근한 차림새를 뒤로 바람처럼 떠나버린다. 돈도 절도 다 필요 없다며 손을 ‘훼훼’내저으며 떠나간다. 비루먹을 똥개 한 마리가 비척비실 고샅을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꼴에 양심은 있는 모양이지! 목숨을 걸 듯 돈을 밝히는 영감쟁이가! 에~ 라! 돌팔이 같은 영감탱이야”하고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눈에는 의원의 축 늘어진 어깨가 최소한 그렇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의원이 햇살 가득한 골목을 바람처럼 떠나버리자 닭 좆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격으로,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품 빠진 걸레조각처럼 후줄근하다 못해 사약을 받아놓은 죄인처럼 할머니는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고 만다. 급기야 꿈과 희망이 한꺼번에 사라진 할머니는

“어이구! 하나님! 이 일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세상 밖 하늘 위, 천 외 천, 옥상 옥 높다란 용상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면 쇤네의 애타는 마음을 털끝만치라도 헤아려 뭐라도 좋습니다. 염치없는 아낙이라 내치지 마시고 한마디 말씀 좀 해주세요! 길 좀 알려주세요! 하나님!”하며 예수쟁이들의 허황된 신이라며 질색팔색하던 때를 까맣게 잊고는 천연하게 하나님을 입에 올린다. 철저하게 금기시 했지만 워낙에 답답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유일신으로 섬겨오던 신이 노할까 하는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여긴 모양이다. 그렇게 밤낮을 두고 정성으로 섬겼건만 전여 도움이 안 되는 이 마당에 하나님이면 어떻고 부처님이면 또 어떻단 말인가? 벼룩의 간 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치료 방법을 알 수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어째 못 부를까? 조상신을 포함한 세상의 신이란 신을 모두 다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모의 가녀린 숨결만이 먼지마저 가라앉은 허공을 희미하게 흔들어 동글동글 파문을 일으키는 방안에 넋을 놓아 털썩 주저앉은 할머니다. 그렇게 한나절이나 죽은 듯 하나님을 부처님을 찾아 중얼거리는 할머니는 왜국으로 간 서방님, 박재상을 일구월심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부인처럼 망부석이 되었다.

무심한 시간이 소리 없이 흐르고 문풍지를 파고든 볕뉘가 길게 누워 방구석을 기웃거리는 어느 때인가? 참새 떼가 재잘거려 초가집 추녀에 튼 둥지를 찾고, 문풍지가 저녁으로 치닫는 소슬바람에 파르르 울적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할머니는 의원이 적어준 약방문을 펼쳐보는데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가 막혔다. 도대체 알아먹지 못하는 한문나부랭이만 종이에 가득 차서 빼곡 했던 것이다. 검은 것은 글씨고 흰 것은 종이, 이걸, 이 일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방바닥에 펼쳐진 종이를 내려다보는데 까닭 모른 눈물이 할머니의 눈가로 서럽게 고인다. 의원의 바짓가랑이를 첩을 찾아가는 서방님의 다릿목을 부여잡듯 악착같이 붙잡아 몇 자 적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막상 받아놓고 보니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까막눈인 자신이 한없이 서러운 것이다.

“왜 적어 달라고 애원 했던고! 왜? 왜? 왜”라며 자조하여 읊조리는 자신의 무지몽매가 그저 저주스럽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넋을 놓아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약방문을 속 시원하게 풀기로 작정하고는 방문을 열고는 삽짝을 나선다.

그렇게 삽짝을 나선 할머니가 의원이 남긴 약방문의 숙제를 풀기까지는 달포 남짓 걸려야 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글, 그 글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할머니는 이웃한 동네 사람들이 이런저런 병을 얻어 의원을 찾을 때면 늘 동행을 자처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조차 끌 생각 없이 무조건 따라 나섰던 것이다. 진창인 날, 맑은 날, 눈보라치는 날이 따로 없었다. 그때마다 약방문이 적힌 쪽지를 의원에 내보여 물었고 설명을 덧붙여 달라며 생떼를 썼던 것이다. 때로는 자질구레한 식모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약방문은 너덜너덜한 걸레쪼가리로 변해갔다. 그런 과정에서 할머니는 한의학, 즉 민간요법에 한발 두발 다가서고 있었다. 정작 본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첫 번째 의원이 다녀간 뒤로 할머니는 수차례의 손님을 더 맞이했다. 그 중에는 의원도 있었고 대처에 이름께나 알려졌다는 유명하다는 의사도 있었으며 더러는 근엄한 표정의 무당도 있었다. 할머니가 그동안 아름아름 뿌린 밑밥에 송사와 피라미만 문 것이 아니라 가끔씩 생각지도 않았던 가물치, 미터 급의 잉어 등등의 대물도 입질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후일담에 의하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물, 즉 돈이었다고 했다. 그도 아니면 훗날의 돈벌이의 수단으로 명예를 원했다. 지금의 스펙 같은 것이었다. 인명을 중시 한다던지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은 지나가는 똥개들에게 던져준지 오래되어 보였다.

무당이란 무당은 있는 수대로 굿을 권했다. 신들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여움을 어르고 달래서 잠재워야 한다는 것이다. 의원이란 의원은 있는 수대로 값비싼 약제를 권했다. 웅담, 산삼이나 녹용 같은 귀한 약재로 달인 보양제가 도움이 될 거라며 권했다. 또 구할 수만 있다면 용의 간이 제일이라고 부추였다. 거기다가 최고 학부를 나와 옥상 옥, 펜트하우스에 산다는 의사나부랭이는 한 술 더 떠서 할머니를 곤란지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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