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3.2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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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듬만 돌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치맛말기에 꼬깃꼬깃 찔러 넣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할머니는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굿)를 하고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일찌감치 마음을 정리하여 포기하는 편이 상책이다. 성격이 우유부단함 때문일까? 한 치의 빈틈도 주지 않는다. 지금이 기회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 짧은 찰나를 이용해서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책보자기가 무거운 것은 차제하고 부끄럽고 창피하다 보니 홍당무처럼 벌건 얼굴로 마지못해 받는다. 책보자기 속에서 빈 도시락이 ‘떨렁떨렁’거리며 운다. 덩달아 가슴도 멀미를 하듯 ‘덜컹’하고 울렁거린다. 하굣길에서 맞이한 진기한 구경거리를 어찌 그냥 지나칠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호기심으로 가득한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려 구경꾼으로 빙둘러 쌓다.

제각기 "발랑 까졌다. 되바라졌다"등등 한두 마디씩 거든다. 그러자 수많은 입방아가 둘을 향해 끊임없는 절구질을 해댄다. 저절로 벼를 찧고 콩을 빻는다. 남들이 뭐라 든 주위의 분위기 따위는 초월한 모양이다. 승리의 자만심에 취한 영희가 배시시 웃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흙 묻은 엉덩이를 양손을 번갈아 털면서 “진작 그럴 것이지! 고마워 가자”며 일어선다.

하여간 티끌만한 덕은 없고 크고 작은 손해는 필연이다. 안 만나는 것이 최선책이다. 헌데 오늘은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 숙명적인 날이다. 그런데 남녀지간이란 참으로 얄망스럽다.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고 수학이나 과학으로도 정답을 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문명으로는 결코 풀어낼 수도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관계인가 보다. 그렇게 당했으면 사갈(蛇蝎: 뱀과 전갈)을 만난 듯 두렵고 귀신을 만난 듯 오금이 저려 징글징글 할만도 한데 눈앞에 안보이니 금세 그리워지니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발등에 떨어진 불똥처럼 당장 급한 것은 영희네 집에서 어떻게 소금을 꾸느냐는 것이다. “영희야 오줌 쌌어 소금 좀 줄래”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뚜렷한 대책이 없다보니 심히 머리가 복잡하다. 진즉에 이럴 줄 알았다면 평소 소금바가지를 훔쳐 놓든지 아니면 오줌을 쌀 때마다 꾸어오는 소금에서 조금씩 여퉈 수수바자 밑을 빌어 혼자만 아는 장소에 짱박아(숨겨)둘걸 싶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길처럼 청맹과니가 따로 없다. 돌대가리라 탓하며 주먹으로 ‘쿡쿡’쥐어 박지만 역시다. 비듬만 돌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추운지방의 어느 새는 밤이면 밤바다 겪는 맹추위에 떨기 싫어 다짐에 다짐을 한다. “내일이면 만사를 제쳐두고 집을 지어야지! 꼭 짓고 말리라! 따뜻한 보금자리를 가질겨야”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맹세와 다짐은 날이 새고 햇살이 비치는 순간 봄눈 녹듯 녹아진다. 지난밤의 다짐은 언제 그랬나는 듯 잊고 따스한 삶을 축복하기에 바쁜 것이다. 결국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밤으로 치달을 때면 여지없이 찾아드는 추위를 맞아 또다시 뼈에 아로 새길 정도로 결심을 굳혀보지만 늘 공염불로 끝난다.

나랑 그 새가 무엇이 다를까? 이럴 때 할머니라도 계시면 오죽이나 좋을까? 기억 속의 할머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섭다 해도 할머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다. “어이구 내 귀여운 똥강아지”하고 치마폭으로 감싸 안으면 철옹성이 따로 없다. 당태종이 백만 대군을 몰아와도 뚫지 못한 안시성과 같은 것이다. 할머니가 은근슬쩍 손에 쥐어 주는 곶감을 줄줄 빨며 서러운 듯 눈물만 뚝뚝 흘리는 연극만 펼치면 그만 인 것이다. 그 모습이 아버지가 보기에 좋을 리 없어 “철수 너 이리로 냉큼 안 올래! 어머니, 그렇게 오냐 오냐 키우다간 저늠아 버릇만 나빠져요”하고 하소연도 소용이 없다. 마침내 아버지가 “어무이요 그래도 ”할라치면 “뭐가 어때서! 클 때는 다 그렇지! 에비야 너 클 때는 더 했어”하는 할머니의 한마디에 아버지는 “제가 뭘요! 철수 너 낭중에 보자”며 꼬리를 내린다.

오늘따라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하지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지워지더니 이제는 오리무중으로 가려진 듯 어느 기억하나 온전치가 못하다. 토막토막으로 남은 기억을 퍼즐 맞추기를 한 끝에야 제법 온전해 질 정도니 말해 무엇 하랴! 아슴아슴한 기억 속의 할머니는 늘 부지런 했다. 특히나 새벽을 일구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언제 어느 때 어느 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부스럭부스럭 옷깃 스치는 소리를 동무한다. 중얼중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된다.

어제처럼 보름달이 훤한 밤이면 더욱 간절했다.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를 떠놓고 달을 향해 양손을 맞잡아 축원하던 할머니다. “할머니 뭘 빌었어요”하고 물으면 “응~ 우리 똥강아지에게서 마마(천연두)귀신 썩 물렀거라! 빌었지”하며 싯누런 앞니 두 개가 훤하게 들어나도록 웃던 할머니다.

할머니가 정화수를 마주하고 비는 간절함은 오로지 손자의 무사안녕이다. 이는 할머니자신이 건사한 자식보다 가슴에 묻어 눈물바람으로 키우는 자식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혹 어머니를 불러 “이 가슴에 무덤이 몇 개인 줄 아니?”하고는 “너도 시에미처럼 자슥을 잃어 가슴 한 복판으로다 옹이가 박히듯 애총(어린아이의 무덤)을 만들어서 울고불고 난리치지 않으려거든 우야든지 신경을 단디 쓰거라”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던 할머니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서 뒷산을 올려다보며 “모진세월 만나 어미 젖 한번 푸지게 못 빨고 이름조차 없는 불쌍한 것들아 이 못난 애미가 이제 곧 너그들 찾아 갈꾸마”며 ‘팽’하고 코를 푼 손을 치맛단에 쓱쓱 비며 닦고는 치맛말기를 들쳐 꺼낸 무명손수건으로 하염없이 눈두덩을 넘쳐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장승처럼 섰다. 저승꽃이 얼굴위로 검게 도드라진 빼빼마른 몸 그 어디에 그 많은 샘이 있는지 봇물 터지듯 양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린다.

어느 날 그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고모가 “또 죽어 얼굴도 모르는 네 오빤지 언닌지 하는 그치들 생각이가? 이제 이자 불 때도 되었건만 청승스레 또 저 카네! 그라고 제발 그 손수건인지 거지발싸겐지도 모르는 헝겊쪼가리 좀 어째하소”하고 타박을 줄 때도 “왜? 죽은 것들이 너보고 뭐라 카디, 손수건이 너보고 뭐라 카디”하며 치맛말기에 꼬깃꼬깃 찔러 넣는 것이다.

그 손수건의 내력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모가 시집가기 직전에 무명천의 자투리를 이용해서 만든 손수건이라 했다. 그때 고모는 가위로 자그마한 무명천을 네모지게 잘라 서툰 바느질로 사면을 대충 감쳐 할머니께 선물이라 건 낸 모양이다. 태어나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막내딸에게 받은 선물이라 그런지 애지중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흰색에서 회색으로 변한지도 오래다. 그 지난한 세월 속에 올올이 실밥이 도드라지는 것은 당연지사, 가운데는 닳고닳아서진 보름달 같은 구멍이 뻥 뚫어졌다. 어떻게 보면 걸레보다 못한 지경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모양이다. 간혹 나들이 길에 개울가에라도 앉으며 예의 손수건을 치맛말기에서 꺼내 조물조물 빤다. 자는 아이가 깰까 싶어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정성이다.

할머니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고 한다. 처음 형제는 연년생이었다. 그 중 아버지는 동생으로써 집 안서는 사형선고를 내린 그런 아들이었다. 죽은 큰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튼실했다. 반면 아버지는 지지리 궁상으로 까무잡잡한 것이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집 안서는 될 성 싶은 떡잎은 맏이라 여겨 모든 것에서 우선을 두었다. 반면 아버지는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구박덩어리다. 어쩌면 하루라도 빨리 명줄이 끊어 졌으면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될 성 싶은 떡잎이라 여기던 맏이의 이마에 열이 올라 펄펄 끓는다. 의원을 불러 보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란 말만 남기고 가버린다. 그렇다고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할머니는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굿)를 했다.

무당은 집안으로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수탉의 목을 잘라 피를 받더니 솔가지에 찍어 집안 구석구석으로 뿌리며 “어~허 물렀거라”를 연신 반복이다. 방에 들어서는 죽은 듯 누운 아이를 안더니 체했다며 열손가락을 땄다. 부적을 태운 재와 숫돌에 칼을 간 물을 먹인다. 야단법석이 따로 없다. 주렁주렁 달린 방울을 동네가 시끄럽게 울리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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