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1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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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는 노을만 멍하니 바라다볼 뿐,
관 아래서 '할머니'하고 숨죽여 울던 밤이기도 했고,
엄동설한이건만 누구하나 춥다고 투덜거리지 않았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 동분서주할 때는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지사, 머릿속으로 또렷하다. 가랑잎이 바스라지듯 생명이 끝날 즈음에 아름아름 생각나는 까닭은 또 무슨 조화일까? 지팡이도 흔들거리고, 부서질 듯 가냘픈 몸도 흔들리는 중에 할머니는 뒷산만 뚫어지게 보고 섰다. 붉은 노을 속에 먼저 간 자식들이 있는 수대로 나와 “엄마 왜 빨리 안와” 손짓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랬을까? 할머니는 치맛말기에서 꺼낸 꼬질꼬질한 손수건으로 연신 볼을 타는 눈물을 훔쳐낸다.

태양은 서산을 넘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원래부터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루의 마지막을! 생의 끝을 보는 것 같아 더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붉게 타는 저녁노을 아래 크고 작은 장승 둘이 나란히 서쪽하늘을 바라다보고 섰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할머니가 살며시 손을 잡아 왔다. 새색시 적 보드랍던 살결은 모진 풍상의 세월 속에 마른 삭정이처럼 거칠어졌다. 못이 박힌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다가 손안에서 딱딱하다. 아버지가 장작을 팰 때 건네주던 소나무굴피를 잡는 기분이다. 할머니의 생을 오롯이 간직한 듯싶어 서글픈 손이기도 했다.

그와는 달리 할머니의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손바닥은 땀이라도 벤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달리 할 말이 없어 “할~매” 하고 속으로 읊조리는데 먼저간 아들 생각에 복받치는 슬픔을 짓눌러 참는지 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늦가을 무서리를 흠뻑 뒤집어쓴 황골래(방아깨비의 방언)의 파르르 떠는 다리와 같다. 분위가 심연으로 내려앉은 듯 은근하여 묵직하다. 이럴 때 할머니께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생각해 보건데 그때처럼 소설가나 시인을 갈망한 적은 없었다. 이 단어, 저 단어, 이 말, 저 말, 그 많은 문장과 단어들이 어디로 달아나 숨었는지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다. 달과 별이 사라진 컴컴한 하늘같고, 썰물이 쓸어간 모래사장에 오도카니 돌아앉은 조가비를 보는 듯 황량하다. 삼키지 못한 물 한 모금을 입안에 가득 문 듯 우물거린다. 바보천치처럼 그저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다. 설령 위로란 멋진 말과 단어를 알았더라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 한번 재대로 떼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옹알이를 하듯

“할머니...” 하고 불렀을 뿐이다. 입에 문 듯 그 작은 목소리를 할머니는 어떻게 알아 들었을까?

“그래 철수야 이 할미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하고 할머니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물어왔을 때는 내심 당황했다. 못들은 척 딴청을 피워 붉게 타는 노을만 멍하니 바라다볼 뿐이었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잡은 손을 슬며시 풀어 중구난방, 이마로 흘러내린 애교머리랑 귀밑머리를 손가락얼레빗으로 가지런하게 쓸던 할머니가

“그때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귀신이라도 씐 모양이지! 아무리 집안어른들의 결정이라지만 명색인 어미인 내가 왜 그랬을까? 어미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죽음을 목전에 두고 보니 여태껏 살아온 지난날이 온통 후회뿐이로구나! 네 애비에게 낯짝을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어미가 된 마당에 머리칼을 통째로 뽑아 미투리로 삼을 지언 정...! 깡통을 들고 구걸을 할지언정...! 어떻게든 살릴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그런 모진 마음을 먹을 수가 있을까? 동생이라도 생기면 좀 힘이 될까 싶어 죽을힘을 다했건만...! 죄도 많지, 네 고모마저 저 모양 저 꼬라지니! 애비야 피를 나눈 오누이라 그렇다 치고 지 올케언니에게 덤터기 짐만 될 뿐...! 이 죄를 어찌 다 감당할꼬...!” 하고 중얼중얼, 한참을 읊조리다가는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쉬더니

“이 할미가 죄가 많다보니 젖먹이를 두고 죽으라고 등 떠밀 때는 언제고, 결국에는 짐만 잔뜩 지우고 가는 구나! 이럴 바엔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차라리 구층 지옥 불에나 떨어질 것이지...” 하더니 애써 참은 울음보가 터진 듯 급기야 훌쩍인다.

그런다고 지금에 와서 뭐가 달라질까? 이내 체념을 한 듯 할머니도 시선을 나란히 하여 서쪽하늘을 바라다본다.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간 할머니의 처연한 얼굴 위로 서쪽하늘이 불그스레한 저녁노을을 차곡차곡 내려놓는다. 까닭모를 설음이 목구멍에서 울컥한다. 절로 숙연해져서 고개가 떨구어 진다. 부엉이가 두 눈을 껌벅이며 날갯짓을 죽이고 가랑잎조차 소리를 죽여 구르는 날이다. 철부지의 마음속으론 그때 죽음이란 단어를 몰라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함께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이승을 떠나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한을 며칠 앞둔 어느 겨울날이다. 훌쩍거리던 물코를 소맷자락이 번질거리도록 닦아낸다. 입주위에서 얼쩡거리는 물코를 입으로 삼켜 쩝쩝거리던 어느 새벽녘이다. 밤새 소리 없는 눈이 많이도 내렸다. 한 생명의 끝을 미리 예감이라도 했을까? 바람마저 숨을 죽여 잠든 날이다. 밤을 지새워 내린 눈이 솜이불처럼 산천을 온통 하얗게 뒤덮던 날이기도 했다. 백설기 같은 하얀 눈이 뽀얗게 지붕을 뒤덮은 아래서 할머니의 그르렁거리던 가래 끓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그러던 어느 때인가? 아버지의 “아이고 어메요” 하는 호곡을 시작으로 할머니는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들을 찾아 소복소복 눈이 내린 새벽을 택해 발걸음을 한 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아들들이 묻힌 양지바른 자리가 눈에 삼삼 사무치게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렇게 허망하게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 곧장 겨울이 끝나 새봄이 돌아오면 하늘에서 자맥질하는 노고지리(종달새)의 봄노래를 들으며 “삘~릴리! 삘~릴리” 하는 박자 없는 장단을 따라 호드기를 불어 봄을 예찬하고, 뒷산을 올라 진달래도 꺾어 드리고, 들로 나가 찔레순도 꺾어 드려야 하는데...! 뒤집어 쓴 이불 밑에서 눈만 말똥말똥, 잠을 청해 뒤적거린 눈가로 까닭모를 눈물이 주르르 흐르던 날이기도 했다. 송진 냄새가 할머니를 삼킨 관아래서 “할머니”하고 숨죽여 울던 밤이기도 했다.

장례절차에 따라 빈소가 차려지고 염(殮: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 습(襲:장사지내기 위하여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새 옷을 갈아입히는 일)이 차례로 끝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이 끝났다. 생전 눈물을 모르던 아버지가 버드나무 지팡이에 기대서서 눈가로 찌저그레(지질)한 이슬을 소맷자락으로 훔치고 고모는 퍼지러 앉아 생떼를 쓰는 아이처럼 운다. 졸지에 어미를 여위어 곡을 하여 울어 예는 것이 자식 된 도리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볼 때 고모와 아버지는 천양지차다. 아버지의 울음이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속으로 삼키는 읍이라면 고모는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머리를 산발하여 대성통곡이다.

“곱디고운 베옷입고 꽃신 신고 가는 님아/이승의 짐 훌훌 벗고 고이 가소 정든 님아/사바고해 괴롬일랑 한강물에 띄우고/지난날 맺힌 한 바람결에 흩날리고/...태산준령 망망대해 세월 속에 변하는데/백년 안팎 짧은 인생 생로병사 면할 손가/부처님이 이르시되 사대육신 허망하여/인연 따라 태어났다 인연 따라 간다했소/...후락 무상계 일부”

상여의 맨 꼭대기에는 사자를 저승길로 인도하는 꼭두닭이 홰를 치며 앉았다. 종이로 만든 울긋불긋한 꽃으로 상여는 화려하게 치장을 마쳤다. 명정이 길을 열고, 공포가 그 다음으로 울긋불긋한 만장이 펄럭이고 요여{腰輿 또는 영여(靈輿):시체를 묻은 뒤에 혼백과 신주(神主)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가 할머니의 혼백을 실었다. 어떻게 살아왔던 꽃상여가 정든 집을 떠나는 할머니의 발을 자처한 것이다. 상주와 일가친척, 피붙이들이 뒤를 따르고 문상객들이 그 뒤로 늘어섰다. 엄동설한이건만 누구하나 춥다고 투덜거리지 않는 날이다.

어~기 영차” 마침내 상여가 길 떠날 준비를 마쳤다. 헌데 상두꾼들이 발이 안 떨어진다며 주춤거린다. 망자가 저승길에 필요한 노자돈도 부족하고 배도 고프단다. 여태껏 술을 못 드신 할머니가 죽어서야 술을 찾는다는 것이다. 저승길에 들어서기가 못내 서러운 모양이다. 엽전 두 어 냥에 막걸리 한잔으로 주춤주춤하던 상여가 마침내 삽짝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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