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0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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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처럼 음지의 삶이 양지로 바뀐다.
동생이라도 태어난다면 덜 외로울 거라 생각한다.
철석간장의 돌부처인 칠성님의 마음을 움직여 돌아앉게 한 것이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버지의 독백처럼 몹쓸 놈의 한 생명이다. 죽은 아기가 무슨 죄가 있을까 만은 애끓는 아비어미의 심정을 죽음을 빌어 매몰차게 뒤로한 것이다. 줄 끊어진 방패연처럼, 가오리연처럼 가뭇없이 사라진 것이다

가슴 한복판에 깊숙히 못 박힌 생명체 하나가 바람처럼 가버렸다. 그런데 또 다른 생명체 하나가 남았다. 그늘진 음지에 송장처럼 누웠다. 연년생으로 태어나고 부실해 보이는 외모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죄인으로 만든 것이다.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뒷전으로 내쳐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미로부터 젖을 칭얼거리다가 야멸찬 손길아래 방구석으로 내팽개쳐서 꾸겨진 듯 누운 아버지였다. 그 처량한 모습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더란다.

끊어질 듯 가쁜 숨결에 팔딱거리는 아래뱃구레가 조막손만큼 작다. 어미가 품안에 안아 사랑으로 내주는 젖 한통이면 충분할 만큼 작아서 더욱 애닲다. 저렇게 작은 뱃구레조차 제대로 채워 주지 못하는 부모도 부모랄 수가 있을까?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껏 허울 좋게 부모라 있었지만 사랑한번 제대로 못 받고 죽어지낸 세월은 또 얼마나 애달프고 원통했을까?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칠천억겁이란 세월 속에 맺어진다는데 그렇게 매몰찰 수가 있었을까? 그 기나긴 세월을 오롯이 기다려 부모라고 찾아왔지만 죽어라죽어라 등 떠밀리는 삶은 또 얼마나 서럽고 애통했을까?

“그래! 내 새끼야! 애미가 예있다”며 안아 드는데 수수깡을 안는 듯, 바람을 안는 듯 허깨비 같더란다. 급하게 적삼을 들쳐 젖을 물리자 얼마나 굶주렸는지 ‘쭉쭉’하는 소리가 일도록 빨더란다. 잠시나마 오늘새벽 아들을 앞세워 가슴에 묻은 죄 많은 어미가 맞는가 싶더란다. 그러고 보면 질긴 게 생명줄이고, 야멸찬 게 목구멍이라고 소태를 씹은 것 같은 입에 밥알이 꾸역꾸역 들어가더란다. 죄인의 입이 반찬을 찾고 물을 찾더란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세상에 첫발을 내딛어 울음을 터트린 이래 지금껏 어느 한때 푸지게 배를 채워본 적이 있었던가? 난생 처음으로 포만감에 젖은 아이가 행복하다는 듯 눈을 맞추어 방글방글 웃다가 쌔근쌔근 잠이 든다. 천사처럼 천진난만하고 내리감은 눈꺼풀이 잠든 호수처럼 더없이 평안하다. 그 아름답고 고요한 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쪽 구석이 시퍼렇게 멍이든 것처럼 먹먹해 지더란다. 이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하지만 뼈에 겨우 가죽만 붙은 아기다. 수수깡처럼 허허한 팔다리를 내려다보는데 지난 죄업이 새삼 단장에 사무쳐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더란다. 촘촘하게 바늘이 찔려오는 듯 가슴은 쓰려서 아프고 서러운 눈물이 봇둑이 터진 듯 흘려 내리더란다.

애초부터 의도하고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아버지의 생명줄은 죽은 친형이 틀어쥐고 있었다. 이 또한 손금에 그렇게 쓰였는지, ‘년,월,일,시’사주팔자 대로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하늘의 안배가 그러했는지 한 인간이 겪어내기에는 가슴이 짓물러 내릴 만큼 아리다. 그 아린 아픔과 한 생명의 희생으로 인해 또 다른 한 생명이 오행산에 오백년간 갇혔던 손오공이 풀려나듯 마침내 자신을 얽어맨 결계에서 풀려난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의도하거나 계획한 것은 아니다. 설렁 그렇더라도 살아남은 생명체 하나가 이제 오롯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인생길에서 새옹지마처럼 음지의 삶이 양지로 나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런 경우 초년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아버지의 모든 삶이 무던했다고 한다. 약골로 태어나고 제대로 먹지 못한 것에 비해 그 흔한 병치레도 없었다. 먹는 것 역시 거친 것, 질고 된 것, 딱딱한 것 등등 주는 대로 쓰다 달다 말없이 두꺼비 파리 잡듯 넙죽넙죽 받아먹었다고 했다. 편식은 물론 그 흔한 음식투정 한번 없었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는 또 속으로 울어야만 했다. 이래저래 할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지각없는 어린 것이 배 고픔의 설음을 얼마나 골수에 사무치게 겪었으면 저럴까 싶어서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철수가 크는 걸 보면 먹는 것만 빼고는 꼭 내 애비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구나”며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후 첫째의 삶이 가져다준 단장의 아픔처럼 그렇게 셋째, 넷째, 다섯째를 연달아 잃고 만다. 그때마다 옹이처럼 가슴 한 복판으로 틀어박히는 무덤들이 모여 할머니의 가슴에는 나란히 네 개란다. 그 설음을 하늘마저 가엽게 여겼는지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삼신할머니로부터 고모를 점지 받는다. 그때 할머니는 젊음을 잃어가는 시기로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순산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심해야할 시점이기도 했다. 주위의 우려스러운 염려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뒤늦게 찾아든 고귀한 생명인 만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선물을 하늘로부터 전해 받았다 여긴 것이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여동생이든 남동생이든 큰 선물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동생이라도 태어나면 덜 외로울 거라 생각한 것이다.

노산이든 뭐든 상관이 없었다. 설사 난산 끝에 죽는다 해도 두렵지가 않은 것이다. 그 즈음 할머니는 여자가 아닌 철저하게 어머니이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할머니는 고귀한 선물을 애지중지하여 지켜냈고 어느 날 목숨을 담보로 늘어지고 지친 산고 끝에 축복처럼 고모를 전해 받는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앞길에 탄탄대로의 행복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산인 만큼 고모는 태생부터 몸이 부실했다. 부실하기는 아버지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고모가 아버지와 다른 점은 아버지는 최단시간에 체력을 극복했다면 고모의 병약함은 무려 14세까지나 이어졌다. 그때까지 고모는 늘 크고 작은 병마를 친구하여 살았다. 연약한 고모로 인해 할머니의 속은 늘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때 썩은 속은 썩은 속이고, 이 생명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고 여겼다. 선물처럼 하늘이 마지막으로 내준 생명, 눈에 넣어도 아프지가 않을 것 같은 생명인 만큼 끝까지 잡아야한다는 뜻에서 집에서의 예명도 ‘끝순’이라 지었다고 했다.

늘 기름이 다한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생명줄 앞에 할머니가 할 수 일은 거의 없었다. 귀동냥으로 배운 얄팍한 지식을 토대로 틈틈이 약초를 캐는 정도로 초라하기만 했다. 삽주를 캔다. 민들레를 캔다. 질경이를 캔다. 어쩌다 천궁을 캐는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그 와중에 어느 날은 용감하게 살모사와 한 판을 벌이기도 했고 돌담을 뒤져 지네를 잡기도 했다. 따라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몸에 좋다는 것을 찾는 등등 이외에 천지신명을 찾는 것이 유일했다.

성황당을 앞을 지날 때면 돌 하나를 더하고 당산나무 아래서는 사과 한 알, 땅콩 한 줌 등 가진 전부를 받쳐 꺼져가는 생명줄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걸복걸하는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 까닭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은 살만한 나이에 벌써 노망기 있다는 등 극성스럽다고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할머니의 알 수 없는 기도는 아마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서는 마른버짐이 떠날 날이 없고 잔기침을 동무처럼 달고 사는 고모를 어떻게든 살려보려 지극정성을 보인 것이다. 할머니의 정성이 마침내 하늘에 닿았는지 철석간장의 돌부처인 칠성님의 마음을 움직여 돌아앉게 한 것이다.

그래선지 할머니는 또래의 친구들이 모여 앉아 이러쿵저러쿵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라도 펼칠라치면 “어릴 때 무던하게 큰 자식이 자라서도 무던하고, 이속저속 다 태워 애를 달군 자슥은 커서도 애를 먹이기는 마찬가지여”라며 자식에 대한 평가를 내린 끝에 “자슥들은 네 집, 내 집 할 것 없이 마큼 다 애물단지여”하며 돌아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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