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3.1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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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빠져버린 쥐불놀이에 거칠 것이 없다. 어머니는 미주알고주알 또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만난 듯 하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 모습이 어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지극히 염려스럽다. 노파심일어 쥐불놀이에 정신이 팔려 들까부는 아이들을 향해 “핵교 선상님께서 오매불망 불조심 하라꼬 불조심 강조는 안 터나 하여튼 불조심하고 그리고 너거들 불통 들고 질레 그케사믄 올 밤에 오줌 싼다”고 엄포를 놓아도 소 귀에 경 읽기다. 이미 빠져버린 쥐불놀이에 거칠 것이 없다. 아버지의 꾸중도 평소에 그 무서워하던 회초리 사례도 요단강을 건넌지 오래다.

다음 날 아침 “한두 살 먼 얼라도 아니고 내 이넘의 자슥을 어짜불꼬 엊저녁 불통 들고 까부락거릴 때 알아봤다. 다 큰 기 남사스럽게 이 뭔 꼬라진고”하는 어머니의 손에는 장마 끝에 초가집추녀 끝으로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지지랑물이라도 벤 듯 누리끼리 얼룩진 이불뭉치가 들렸다. 그래도 속이 덜 풀리는지 “이~넘의 솜이불은 무겁기는 왜~ 또 이리 무겁노”하고 중얼거리다가 우물가에서 세수를 하는 아들을 도끼눈으로 째려보다 같잖다는 듯 희미하게 웃더니 못 볼 것 본 모양 뜨악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줌싸개 한 번에 그동안 안든 철이 한꺼번에 들었을까 싶어서다. 전날 같으면 아침마다 깨우기가 고래심줄 같이 질겨 등짝 한 가운데에 빨갛게 물든 단풍잎 한 잎이 불식간 떨어지고 나서야 “아이~참 엄마는 식전부터 때리기는 왜 때리노 아프단 말이야”하고 양손을 아래위로 젖혀 등을 슬슬 문지르며 마지못해 어기적거려 일어날 참이다. 헌데 오늘 아침은 알알서 척척 제 힘으로 일어났다. 해가 서쪽에서 뜰만치 별스럽다 싶다. 게다가 ‘어푸어푸’세수하는 모양세도 전날과는 영 딴판이다.

늘 봐오지만 세수라고 하는 것이 남이 볼까 부끄러울 정도로 가관이다. 생각 같아서는 “야~ 이늠 새끼야 그것도 세수랐꼬 하는 거냐”며 부지깽이로 등판 한가운데를 원 없이 패주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닐 게다. 꼼지락거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굼벵이다. 게다가 물이라도 한 방울 몸에 튀면 아주 죽는 줄 아는 모양이니. 고양이도 아닌 것이 너무한다 싶다. 손가락 끝으로 간을 보듯 세숫대야 속의 물을 살짝 찍은 뒤 콧잔등만 살살 문질려 분바르듯 하던 세수다. 속에서 절로 천불이 일 지경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비누를 북북 발라서는 검은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옇게 거품을 일군다. 게다가 세숫대야 속에 있는 데로 머리를 처박아 ‘북적북적’감는다. 살다 살다, 보고 보다가 별스런 꼬락서니를 다 본다싶어 멍하니 서 있는 것이다.

“진즉에 저 캤으면 지한테도 좋고 남 보기에도 얼마나 보기 좋을 꼬! 미욱한 놈 같으니 세계지도나 대한민국지도는 도화지에나 그리면 또 월매나 좋노! 지 에비 좋은 점은 안 닮고 꼭 못된 점만 쏙 빼닮아 속을 썩이는 건지” 하면서도 여전히 속이 부글부글 끓는지 “지리기는 와 이캐 지리노 찌렁내가 아주 사기등천이네”며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린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체념이라도 한 듯 양손가득 세계지도가 어설프게 그려진 이불을 마당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는 빨랫줄 위로 바지랑대가 휘청거릴 정도로 내다건다. 그때 뭉쳐진 이불의 양쪽 귀를 쭉쭉 당겨 가지런하게 펴고는 돌아서다 말고 무언가 잊은 듯 이불 한복판을 손으로 툭툭 치자 뿌연 먼지가 풀썩 일어 손에 감긴다. 그 모습이 흡사 오줌싸개 아들이 “인제 안 그럴게 엄마 미안해 한번만”하며 치마꼬리를 잡아 흔드는 듯하다. 어이가 없는 중에 “하긴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들인데 내가 안 이뼈하면 누가 이뼈할까”며 가슴을 양손으로 쓸어내려 고무신을 질질 끌다시피 부엌으로 향했고 잠시 뒤 부엌문 여는 소리가 ‘삐그덕’하더니 된장이 끓는 냄새에 섞여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고등어 굽는 냄새가 솔~솔솔 풍겨 나온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생신 때가 아니면 맡아볼 수 없는 진귀한 냄새다. 콧구멍이 벌렁벌렁 하는데 개 코가 아니랄까? 마당에 드러누웠던 황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왈왈’운다. 아마 살집은 모르겠거니와 가시만은 내 것이라 미리미리 점을 찍는 것 같다. 헌데 먼데 개는 여우가 울 듯 하울링도 길게 운다. 같이 나누어 먹자고 애원하는 것 같다. “안 돼! 뭔 개소리야 내 먹을 것도 모자랄 판에”어림없다고 황구가 화답으로 신경질적으로 ‘컹컹’하고 운다. 개들마저 이럴진대 이웃끼리 뭘 숨기겠나! 벌써 온 동네에 자자하게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어머니는 오늘 동네아주머니들은 만나 때마다 적잖이 시달릴 것이다. “철수엄마는 오늘 아침반찬으로 고등어를 구웠다면”하고 말이다. 그럴 때면 “그게 말이야...!”어머니는 미주알고주알 또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진정 무슨 날일까? 아버지생신은 음력으로는 5월, 양력으로는 6월경인데! 아무리 통빡(머리)을 굴려도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무려면 어때! 고기반찬에 밥을 먹을 수 있다면야! 헌데 좋은 것은 몸이 먼저 알아본다고 입안에 고인 침이 목 줄기를 타고 꿀떡한다. 하지만 그런 성찬의 아침을 즐기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하나 남아 있다.

또래의 친구들이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비사리(싸리나무)바자를 기웃기웃 “알나리깔나리 오줌 쌌데요 철수는 오줌 쌌데요!”며 놀린다. 심히 귀에 거슬려 “야~ 조용히 안 해! 그 카다 한방씩 맞으면 니만 아프데이”하고 분한 마음으로 윽박지르는데 “이늠의 자슥이 똥 낀 놈이 성낸다고 이불에 오줌 싼 놈이 뭘 잘했다고 식전 댓바람부터 큰소리가”하는 어머니가 “에이 지지리도 못난 놈 같으니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친구들 보기가 부끄럽기는 부끄럽제 이거나 덮어쓰고 영희네 집에 가서 소금이나 한 줌 꾸어오너라”며 손에는 거무튀튀한 바가지를 머리에는 콩을 까불리던 키를 ‘탁~’소리가 나게 씌운다.

집에 소금이 없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서 이처럼 서러운 때가 또 있었던가? 늦가을 된서리를 흠뻑 뒤집어 쓴 고추모양 풀이 죽어 비칠비칠 삽짝을 나서는데 “문디 자슥 아직도 정신 못 차렸제 근께 그 나이에 오줌이나 싸고 그러지”하는 어머니의 저주 섞인 말이 뒤통수를 동무하여 따라 나선다.

그렇다고 나만 겪는 설움만은 아니다. 오줌싸개라면 누구나 다 겪는 설움이다. 하지만 막상 당하고보니 설움이 복받쳐 목구멍에서 울컥한다. 그렇다고 반항이란 있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반항의 기미가 보일시는 멍석말이까지는 아닐지라도 매타작은 당연지사다. 더 어릴 적 어느 날을 빌어 몇 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순순히 덮어쓰고 골목길을 돌 적에 “옛날 같으면 장가가서 아들딸 놀 나이에 여럽(겸연쩍고 쑥스럽다)겠스리 오줌을 다 쌌니”하는 동네아주머니들의 조롱 속에 “다시 오줌만 싸봐라”며 고소를 머금은 얼굴이 순식간에 치우천황으로 변해 손에 든 부지깽이를 휘두른데 뒤집어 쓴 키 위로 떨어지는 공매의 요란한소리가 여름철 함석지붕을 때리는 소낙비 같고 또 맵기는 가을 한낮 콩 타작 같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한 바였다. 문제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오는 영희다. 어제만 해도 제 손에든 호두는 제쳐두고 기어이 호주머니에 든 호두를 내 놓으라 생떼를 쓰는 통에 구렁이 알 같이 애지중지하던 후두를 두 알이나 뺏겼다. 그러고 보면 비록 내 물건이지만 영희를 만나는 순간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이 더러운 기분을 누가 있어 알아줄까? 그럴 때 영희를 만난다는 자체가 사막에서 전갈을 만난 것 같고 정글에서 코브라를 만난 것과 같은 것이다. 하여간 만나기만하면 울어 보채듯 손톱으로 할퀴든 차태현이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만난 듯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는 막무가내다. 어느 때는 책보가 무겁다는 등 생떼를 쓰다 안 되겠다 싶은지 하굣길에서 아예 주저앉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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