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6.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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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인사로, 허리를 굽신굽신 드나들어야 하고
뛰어난 희극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뱀의 유혹 같은 두꺼운 솜이불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숲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숲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방안은 낮임에도 불구 저승사자의 검은 망토 같은 어둠이 낮게 깔려있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자 밀려든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씻김굿의 저승길 같은 춤사위 같고 먹이를 눈앞에 둔 살모사의 검붉은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 옷고름을 풀어 버드나무의 잔가지처럼 낭창거리는 딸의 목을 칭칭 감아 동여맨 것 같았다. 사형대 위에서 깃대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형 집행관처럼 대들보에 걸어서 힘을 다잡을 기세다. 그 아래로 깔리 듯 누운 딸은 저항은커녕 바람이 잔 풀잎처럼 희미한 미동도 없다. 개구쟁이가 손아귀에 든 개구리를 땅바닥에 패대기 치듯 사지를 쭉 뻗어서 늘어졌다. 그럴 리야 없지만 혹시나 싶어서 방안에 든 할머니가 조심스레 이불을 들친다.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하는 가운데 언제 잠을 깼는지 고모가 맑은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할머니와 눈을 맞추어 방그레 웃는다. “휴~”하고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이 절로 방 구들을 두드린다. 고모의 삶은 확인한 할머니가 좌우를 두 리 번하다가 무언가 잊은 듯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제야 할머니는 가시덩굴 아래로 난 실낱같은 돌 자갈 길을 찾아낸 듯 움직이기 시작하다. 불현 듯 아픈 딸을 둔 어머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맨 먼저 미음을 먹이고 그 다음으로 묵은 때를 말끔히 씻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이 들락거린 삽짝으로 일찌감치 소금 한 바가지를 뿌렸지만 무언가 꺼림칙하다 생각한 것이다. 집안 어딘가에 몹쓸 귀신이 찰거머리처럼, 껌 딱지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생각한 것이다. 모녀가 공히 몸을 정갈하게 하고 의복을 정제하여 치성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생각한 것이다.

가마솥에 불을 지피랴! 쌀을 씻으랴! 예복을 준비하랴! 갑자기 바빠진 것이다. 오던 잠이 확 달아난 것이다. 아픈 딸을 위해서는 여전히 일을 해야 하고 또 약초를 캐고, 의원을, 무당 집을 배꼽인사로, 허리를 굽신굽신 드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딸을 위한 일이라면 고달픔도, 외로움도 그리고 뼈를 녹여 내는 가슴앓이 정도는 즐기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아낌없는 보호와 정성아래 고모는 키만 수수깡처럼 껑충하게 자라 솜이불에 쌓여 지냈다. 언제 끝날지, 언제 사람 구실을 하여 일어설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낮과 밤이 교차하고, 해와 달이 번갈아 뜨고 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 했다. 고모가 태어나고 만 3년 만의 일이었다. 병명도 모르는 체 보름을 시름시름 앓다가 회광반조, 마지막 힘을 모아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는

“임자 고생이 많네! 저 불쌍한 딸 자슥을 위한 돈 한 푼 안 남기고, 짐짝처럼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듯 나만 훌쩍 떠나가네! 나 혼자 편하자고 저승사자의 손을 덜컥 잡았네! 내가 이래 무책임하내! 그런다고 어쩌겠나!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잘 부탁 하네! 하지만 온전치 못한 저것이 지금은 저 모양 저런 꼬락서니지만, 끝순이 저것도 인젠가는 인간 구실 할 걸세! 좋은 서방 만나 한 가정을 꾸려 아들딸 놓고 옛이야기 하며 사람같이 살 걸쎄! 나는 장담 함~쎄! 세월이 말해 줄 걸~쎄! 힘들고 고된 세월이 지난하겠지만 꼭 그런 날이 올 걸~쎄”하는 알쏭달쏭한 말을 유언인 듯, 당부인 듯 남기곤 홀연히 생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러자 입바른 소리 잘하는 이웃들은 고모가 재앙을 몰고 오는 딸이라고 모이기만하면 하나같이 입방아를 찧어 쫑알거렸다.

그것도 모자라 할머니의 집을 향해서 손가락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꼴도 그 꼬락서니에 마녀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 모양 그 꼴에 아비를 잡아먹고도 남는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어미도 필히 잡아먹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이웃이야 무슨 말을 하던 할머니는 큰 바위얼굴이라도 된 듯 눈, 코, 귀, 입을 막고 있었다.

투명인간처럼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 여긴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을 철석으로 믿어 고모를 알뜰살뜰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굳이 할아버지의 유언을 따른다기보다 세월에 편승하여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어머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고봉밥을 퍼주고 부뚜막에 돌아앉아 두어 숟갈 누룽지를 긁는 것이 어머니의 숙명이자 사명이라 여기는 것이다. 또 어머니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린 창자를 부여잡더라도 자식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닭다리가 탐나고 맛있지만 엄마이기에 모가지가 맛있다 해야 하는 것이다. 뛰어난 희극 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 천명을 다한 할아버지는 그저 단순하게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었다. 인생은 역부여시(亦復如是)라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다. 그런 이치에 따라 한 생명이 가자 또 한 생명이 태동을 시작한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늘 생명이 득실거린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기에는 미미했고 기약 없는 세월은 요원해 보였다. 가시고기처럼 부모를 잡아먹고 나서야 자라듯이 고모의 희미한 모습이 그랬다. 그랬다기보다는 할머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할아버지 사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간혹 “무~ 우~ 물”또는 “배~에 고~고고~ 고~파”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고모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 “터불터불, 푸르르우~ 푸르르우”하고 터불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그때 고모가 떠듬거리거나 말거나 글자 몇 자를 어눌하게나마 입에 올리는 것도 기뻤고 특히 먹을 것을 달라는 데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듯이 이네 풀이 죽는 할머니다.

급하게 물을 준비하고 미음을 준비하는 등 법석을 떤 끝에 나무토막처럼 누운 고모를 간신히 일으켜 숟가락으로 입에다 흘러 넣어 주면 삼키는 것 반, 내 뱉는 것 반이다. 그것으로 끝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너무 욕심이 과했는지 또 절반은 토해 버리고도 연이은 구역질에 대장에 든 똥물까지 토해낼 지경이다. 울대에 좁쌀알맹이라도 걸린 듯 “컥~컥”하는 긴 사레 끝에 고개를 쳐드는 고모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하고 숨은 끊어질 듯 가쁘다. 급기야 할머니는 그런 고모를 품 안에 끌어안고는

“하이고 이것아 좁쌀 한 톨, 콩알도 아니고 작은 것 그것하나 재대로 못 삼키느냐! 남들은 잘도 삼키드라마는, 보릿고개라 없어서 못 먹드라만은! 너는 어쩌자고 이 어미의 애간장을 있는 데로 녹이려 드노, 언제까지 이럴 것이고? 너도 이제는 자리를 훌훌 털어 일어나야지! 주는 대로 꿀떡꿀떡, 받는 대로 넙죽넙죽, 두꺼비 파리 잡 듯 삼키고 일어나야지! 이 엄마하고 꽃놀이도 가고 머리도 빗고, 곱창처럼 꼬불꼬불 땋은 머리에 붉은 댕기, 노란 댕기, 색색으로 달아 들판을 뛰어야지! 다른 집 딸자슥은 하나같이 나물 캐고 밥 짓고, 그러다가 짝짝이 서방 만나 시집가서 아들딸 쑥쑥 낳아 잘도 사 누만 너는 어쩌자고 주구장창 누워만 지내 노! 일어날 줄 모르노!”하고 울부짖는 것이었다.

그때 할머니의 품에 안겨 등 뒤로 얼굴을 내민 고모의 얼굴 위로 수박껍질처럼 얼룩덜룩한 눈물자국이 양 볼 가득히 펴지고 있었다. 고모라고 가을, 겨울, 봄을 모르고 여름을 어찌 모를까? 발에 밝힌 지렁이도 꿈틀거려 살고 싶은데 고모라고 어찌 그런 마음이 없을까? 그저 살고 싶은 것이다. 원나라 공주를 칭칭 감는 상사뱀의 유혹 같은 두꺼운 솜이불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꿈결에서 맞이하는 저승사자의 검은 유혹을 훌훌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자고 삼키지도 못하는 밥알을 젓가락으로 세고, 세어서 씹어보는 것이다. 잘근잘근 씹고 또 씹어 물로 만들어 조심스레 목구멍으로 넘겨보는 것이다. 그런대 늘 마음만 앞서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께 희망을 드리고 싶은데 늘 절망으로 끝을 맺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혀를 깨물어 죽어버렸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배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웃음을 짓고 또 밥을 청해 한 알, 한 알씩 고르고 골라 곧장 먹을 것처럼 젓가락으로 굴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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