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2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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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니 천만 다행이다. 살아서 복덩이다.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솜이불에 팍 엎어버리지!
할머니는 이웃들이 뭐라고 비웃듯 개의치 않았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어떻게 된 삶이 이렇게도 모질고 힘이 드는 걸까? 보지도 듣지도 겪지도 못한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날이면 날마다 뼈를 깎는 고통을 줄줄이 엮어서 가져다주는 걸까? 만수산 드렁 칡이 어우러지듯,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렇게 어우러져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면 좀 좋을까? 옆에서 지켜보자니까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니라서 내 딸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들썩이는 어깻죽지가 애처롭고 가엽다. 지나가는 비를 쫄딱 맞은 새처럼 할머니의 치맛폭에 엎어진 고모가 파르르 떤다. 부처님도 자식 앞에서는 돌아 앉는다고, 부처님처럼 무심과 무정을 가장하여 돌아앉을 수만 있다면 좀 좋으련만, 농투성이 시골아낙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 같다. 흐느끼는 오열에 따라 가볍게 들썩이는 어깨를 안쓰럽게 내려다보던 할머니가

“에고 불쌍한 내 새끼! 그란께 우짜겠노! 인자 와서 우짜겠노! 빌어먹을 서방인지 남방인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야든지 참고 살아야 한 데이! 절데 딴 맘 먹으면 안 된 데이! 니가 우짜우짜 되면 그때는 나도 못 산 데이! 이 에미도 죽고 못 산 데이! 시집살이가 어째 내 집 같을까?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제! 시어미가 아무리 친딸처럼 여긴다지만 오십 보 백 보, 거기서 거기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태어날 자슥새끼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제! 꿈을 갖고 살아야제! 이게다 까막눈에 없이 사는 이 어미 죄다. 그렇더라도 우짜든지 살아야한 데이 그래그래 참고 살다보면 너도 옛말할 때가 있을끼라”며 딸의 등을 거친 손으로 하염없이 쓸어내릴 적에 양 볼을 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얼마나 등을 쓸었을까? 문득문득 딸의 등판에서 두툼한 살집이 물컹물컹 손에 잡힌다. 가슴 저 밑으로부터 까닭모를 희열이 오르고 입 꼬리가 귀에 걸린다. 죽일 년 살릴 년하고 티격태격, 눈을 부라리던 돈타령은 온데간데없고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처럼 허허하여 부실한 몸이지만 네 몸에 아기라도 들어서면 얼마나 좋을까? 내 딸이 낳은 애기 한번 안아봤으며 소원이 없겠다. 내 생전에 그런 복된 날이 과연 있을까?”하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이만하니 천만 다행이다. 살아서 복덩이다. 그래도 네가 효녀다. 암 효녀지”하며 또 중얼중얼하더니 처절했던 지난 과거를 은연중에 거스르기 시작한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 없이 평범하게 사는 생은 어떤 삶일까? 일반적으로 흔하게 사는 생은 또 어떤 삶일까? 누구나 특별한 삶은 원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삶이 그 삶처럼 특별한 삶을 구분하기란 싶지가 않다. 결국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다. 내 집이 옆집에 비해서 좀 좁으면 가진 돈이 좀 많다던가? 돈이 좀 없으면 옆집에 비해 내 집이 좀 넓다던가? 아들이 일을 더 잘한다던가? 딸의 미모가 남들에 비해 좀 빼어 난다던가? 자식의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한다던가? 전답이 좀 많다던가? 남들 일할 때 나도 일하고, 남들 고기 먹을 때 나도 고기 먹고, 남들 잘 때 나도 자는 것처럼 말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이 꽃을 피워 여름에 열매를 맺고, 가을 빛에 여물어 수확을 가져다주는 식물처럼 말이다. 그런 가운데 음지와 양지를 번갈아 드는 태양빛은 늘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울 물에는 용이나 이무기 대신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 가재 등등이 살고 있듯이 갓 태어난 아이가 말을 좀 일찍 배운다고 해서 천재도 아니고, 걸음마를 남들에 비해 빠르고 몸통을 일찍이 뒤집는다고 남보다 건강하다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삶 중에도 도드라진 삶이 영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원래부터 그럴 수도 있고 중간에서 일이 잘못되어 그럴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당하는 사람과 주변의 가족 중 누군가는 본인의 삶 일부를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모를 출산함으로써 할머니의 삶이 보통과 평범한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고모는 태생부터 여느 아기와 달랐다. 남매지간인 아버지의 태생과 비슷하게 보였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결코 그렇치가 않았다. 아버지의 경우 태어 날 때의 몸은 좀 부실했지만 먹는 것 하나는 옹골 찾다. 그에 비해 고모는 부실하게 태어난 것도 모자라 먹는 것조차 시원찮았다. 거의 먹지를 않았다. 딸애라 치부하기에도 너무한다 싶은 것이다. 깨작깨작, 찔끔찔끔 먹는 모습은 할머니의 속을 뒤집고 남았다. 그 여파로 할머니의 튼실했던 젖은 빈 쭉정이로 가슴에 찰싹 달라 붙어버렸다.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어진 것이다. 부실한 입이 아예 쪽박까지 깨뜨려 버린 것이다. 내 집 식량 창고는 털리고 이웃집 젖 동량으로 겨우겨우 연명을 해야 하는 지경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고모를 낳자 이웃한 아낙네들이 아기구경을 왔다.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가 입에 번지르르한 인사치례가 전부였다. 귀엽다. 예쁘다. 맏딸이라 살림 밑천이다. 등등의 알랑방귀 같은 말끝에 “첩첩산중이라 거친 나물반찬이 전부, 임신기간 동안 먹는 것이 부실해서 그럴 겁니다. 차차 낳아지겠지요!”하고 다들 그렇게 할머니를 위로했다.

하지만 문지방을 넘어서기가 무섭게 이구동성으로 “저 사람 같지도 않는, 해골바가지 같은 저런 딸애를 왜 키우려고 마음을 먹을까?”하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금방, 아니 오늘 낼 중으로 죽을 것 같구먼”하고는 ‘쯔쯔쯔’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날 당시 고모의 몸매는 피노키오를 연상케 했으며 머리라곤 덜 여물어 찌그러진 수박 통 하나 올려놓은 것 같았다. 피부색 조차 아프리카 마사이족처럼 까만 것이 배란 것은 바람이 잔뜩 들어찬 개구리 배처럼 둥글게 부풀어 올랐고 흰자위가 가득한 눈만 말똥말똥 했다. TV에서 보는 아프리카의 병들어 피폐해진 기아의 모습과 흡사해 보였다. 게다가 다른 아기들에 비해 1.Kg정도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몸무게로 태어났다. 그런 고모의 몰골을 보는 이웃의 눈매는 따뜻함 보다는 싸늘함이 더했다.

딸이 흔해 빠진 세상에 저렇게 부실한 여아를 왜 키우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면전에서는 다들 쉬쉬하다가 돌아서서는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솜이불에 팍 엎어버리지! 그게 신상에 편할 건데”하는 표정이 더 진하게 우러나고 있었다.

솜이불에 아기를 뒤엎는다는 것은 생 목숨을 뺏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관에 고발이나 발고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정당한 살인으로 여겨 마을 사람들은 불문에 붙이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애거사 크리스트 원작 오리에트특급 살인사건의 13명의 용의자처럼 말이다. 13명이 일사분란하게 부재자 증명을 하듯이 마을 사람들이 공동체로 나서서 입을 맞추는 것이다. 애당초 애기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는 당시 극심한 남녀의 불균형으로 인해 여자들이 푸대접 받는 시기였다. 조선시대의 남존여비 사상이 아닌 시대적인 비극이었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농사일, 일손이 모자라는 시기라 남아들은 태어나는 순간 일꾼하나로 취급을 받았지만 여아들은 애물단지에 짐 덩어리로 여기는 때였다. 애지중지 곱게, 곱게 키워 놓으면 훌쩍 시집을 가버린다. 그냥 홀몸으로 가면 다행이지만 얼마간의 재물을 축내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살림살이에 전여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집안 어른들의 결정이나 부부의 논의에 따라 애당초 목숨을 앗아버리는 것이다. 아예 없었던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시대 상황이 그랬기에 일말의 죄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이웃한 아낙네들이 사람 같지도 않은 고모의 몰골을 두고 이러 저런 의견을 내세워 쑥덕거리는 것이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고, 벽에도 귀가 있다고, 이웃한 아낙네들이 다들 그렇게 쉬쉬하여 뒤에서만 수군거린다 해도 할머니의 귀에 바람처럼 지나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웃들이 뭐라고 비웃듯 개의치 않았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귀엽다고 할머니는 겨우 숨만 쉬는 고모를 귀엽다며 애지중지 품에 안아 어르는 중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여겼다. 남은 생을 다 바쳐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할머니의 남은 생을 고모에게 떼어주고 당장이라도 죽으라면 죽을 만치 고모의 생명을 지킬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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