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4.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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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엿소리가 자장가처럼 꿈결인양 아련하다.
“주머니가 없으면 입에라도 물고 가면 되지”
“오냐 그래! 니 잘났다 이년아~”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인제 가면 언제 오나, 오는 날짜나 알려주게/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북망산이 멀다 더니, 대문 밖이 북망산 일세/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이 세상에 올 적에는 천 년 만년 살자 더니/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하는 구슬픈 상엿소리를 흘리며 꽃상여가 정든 집을 떠나간다. 산허리를 돌아서 가뭇없이 사라진다. 무심한 거울바람이 눈보라를 흩날리며 불어온다.

금은보화가 언덕을 이루면 무엇하고, 가솔들이 삼밭을 이루면 또 무엇 하리! 홀로 외로이 죽어 이승을 떠나는 이치는 태고 적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데...! 생명이라고 붙은 것은 어쩔 수 없는데...! 피할 수도 또 피한다고 피해갈 수도 없는데...! 장풍득수(藏風得水:풍수지리에서 바람을 피하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의 길지에 배년해로하자 굳게 언약한 낭군님이 들어앉았고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남매가 일구월심 기다리고 있는데...! 어서 빨라오라 재촉하는데...! 뒤돌아보면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이승에 대한 미련이 없잖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얀 겨울이 내려놓는 햇볕아래에 드넓게 펼쳐진 눈밭으로 윤슬이 반작인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바람이 어서가자 손짓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데 상두꾼들마저 촌각을 다투어 바쁘다며 시시각각 재촉이다. 뒤돌아보니 아들내외가 눈물을 뿌려 울고 애물단지 같은 딸이 머리를 풀어 얼음장 같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머리 없는 손자도 오늘만큼은 비척비척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쳐 대문간을 나서는데! 인정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저승사자만이 어서 빨리 가자며 등을 떠밀어 성화가 대단타. 이제 혼백이 되어 이승을 떠나고자 하려마는 한 많은 지난 생이 가슴 저미도록 서럽다. 상엿소리가 자장가처럼 꿈결인양 아련하다.

상두꾼들이 뽀드득 뽀드득 새하얀 눈길을 밟아 흔적을 남기며 꽃상여가 떠날 적에 고모는

“불쌍하고 불쌍타 우리엄마! 지지리도 궁상이제! 어디가면 이만 못살까? 츱츱산중, 산골짝에 시집이라고 와서 보니 부귀영화는 애당초 글렀고, 아들딸 줄줄이 낳아 줄줄이 가슴에 묻어 피멍이 들도록 쥐어뜯고, 밥상이라곤 개다리소반도 오감아 부뚜막에 쪼그려 앉아 바가지를 밥상으로 꽁보리밥에 간장 한 종지, 철지난 나물반찬 하나, 쌀밥 한 그릇 원 없이 못 묵는 삶도 이승의 찰진 삶이라고 삽짭거리만 나서면 떠들고 다녔제!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일이라곤 포원지게 많아, 맨날 천 날 풀 한포기 조차 모질은 때때 말라비틀어진 자갈밭으로, 호미자루 하나들고 그놈의 농사짓는다고 쌩 고생만 죽도록 하고...! 우리엄마 이제가면 언제오노! 옛말 하나 틀린 게 없제! 저승길이 멀다더니 문지방 저승길이고 삽짝거리가 저승일세...!”며 눈물콧물바람에 “울 엄마 이제가면 어제 올라나? 병풍에 그린 닭이 ‘꼬꼬꼬’우는 날에 다시올라나”하며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라도 꺼진 듯 통곡이다.

그렇다고 할머니와 고모가 여느 모녀지간처럼 평소 알뜰살뜰 죽고 못 살 것처럼 좋았던 사이는 아니다. 넘어지면 밟아가고, 입안에 든 사탕도 뺏을 만큼, 견원지간처럼, 원수지간이라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주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어 보였다. 잊어버릴만하면 친정나들이에 나선 고모는 딸을 무기로 삼아 할머니를 들 쑤셨다. 숫제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를 마친 듯, 손금을 보듯

“엄마 며칠 전에 누구누구가 왔다갔다며! 용채(용돈의 방언)라고 좀 안 주디”하며 호시탐탐 할머니의 쌈지를 노렸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눈을 홉뜨고서 알랑방귀에 여념이 없는 딸을 노려보는데 불이 이는 듯했다. 한참이나 딸을 노려보던 할머니가 급기야

“이 잡것아 촌구석 처박혀 죽지 못해 사는 무지렁이 갈부(褐婦)가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또 있으면 얼매나 있다고 칼 안든 강도 맨치로 만나기만 하면 돈타령이고! 너 그 칼라 카면 친정이라꼬는 발걸음도 말거라! 하여간에 못 땐 년 같으니! 어디 알길(조금씩 갉아 내거나 빼내 가지다)데가 없어 지에미 쌈지를 알기 갈라 캐 쌓노! 보태주고 가도 시원찮을 판에”하며 부르르 떤다.

하지만 고모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이미 여려 차례 겪은 터라 어지간히 이력이 붙은 것으로 보였다. 연신 생글생글 웃는 고모가

“할마씨 저승 가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 않카든가베! 근깨 어차피 빈손으로 갈 걸데 상속 좀 일찌감치 한다 생각하고 진즉에, 미리미리 좀 나눠주고 가면 될 꺼구먼 별나게도 나대 쌓네”며 전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할머니도 아니다. “주머니가 없으면 입에라도 물고 가면 되지”맞받자 고모는

“엄마가 하마도 아니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입에 물어! 그 카다 입주가리 찢어지지! 글구 저승 가는 입에는 엽전 한 닢에 쌀 한 숟갈도 오감치!”하고 입을 삐쭉거리자!

“에이 고얀 년”하고 일갈을 내지른 할머니는 도끼눈으로 치켜뜨고는 이대로 밀릴 수 없다는 듯 “야~ 이것아 출가외인 한데 무슨 놈의 상속이 다 있노! 무식한 년 같으니라고, 내 저것도 자슥새끼라고 싸질러 놓고 먹은 미역국이 아깝다. 지에미의 살을 발라 먹고도 모자라 뼈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을 년이 저 벼락 맞을 년 일세”한다. 여기까지는 사실 전반전으로 레페토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요리로 치자면 레시피 중 물이 끓어오는 중이라고나 할까?

할머니의 모진 말에도 마냥 즐겁다는 듯 생글거리던 고모가

“엄마 그러지 말고 거기 허리춤에 달랑거리는 쌈지의 배가 ‘툭툭’불거진 것이 산달이 오늘 낼만큼 부르다마는 함 끌러보소! 내가 얼매나 들었는지 샘이나 해보게”하며 막무가내 할머니의 허리춤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할머니가

“내 저 화적 같은 년하고 전생에 무신 업보가 그리도 많아 이 모진 년의 뱃속을 빌어 딸이라 나왔을꼬! 내 진즉에 이럴 줄 알고 부처님 전을 찾을 때마다 곡삭이면 곡삭, 돈이라면 돈을 있는 데로 공양하여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건만 전생의 업이 어쩜 이리도 질기고 질기단 말인고? 에라 이 오살 맞아 되질 년 같으니! 그래 예 있다”며 항복이라는 듯 허리춤으로부터 쌈지를 글러 방바닥에 패대기쳐 버린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고모는

“엄마는 진작 그럴 것이 제! 그리고 줄라면 좀 곱게 주면 좀 좋나! 꼭 이렇게 방바닥에 패대기를 쳐야 직성이 풀리나! 하여간 이거 나 줄 라꼬 모아둔거 다 안다 뭐! 엄마 고마워 잘 쓸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다 공부 안 시켜주고 또 부잣집에 시집 안 보낸 엄마 죄다 뭐”하며 사족처럼 처지를 하소연하는 고모다.

그 말에 움찔한 할머니는 “하이고 이 잡것아! 내가 그 만큼 말리 때는 들은 척도 않더니 그 놈의 시집이 뭐가 그리 좋다고 좋아 죽을 듯 뒤도 안돌아보고 갈 때는 언제고...! 그리고 이 빌어먹을 년아! 아직도 그 타령이가! 언제까지 써 먹을 거고”하는데 한 풀 기가 죽어 보인다. 이때다 싶었는지 고모가

“언제까지는 언제까지야 할마씨 죽을 때 까지지”하며 또 약을 올린다.

“오냐 그래! 니 잘났다 이년아~”하는데 고모가 마지막 쐐기를 박는다.

“그럼 핵교 문턱을 못가 일자무식 꾼에 글 모르지, 가진 것이라곤 쥐뿔도 없지, 서방인지 남방인지 술만 쳐 묵으면 돈 내라는 고함도 모자라 손찌검 끝에 몇 안 남은 세간살이마저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치 그런 지옥 같은 시집살이에 엄마마저 괄시하면 나는 어찌 살라고”하는 신세타령 끝에 눈자위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어깨는 모진 파도를 만난 일엽편주처럼 출렁거린다. 급기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할머니를 쳐다보다 할머니의 치마폭에 풀썩 얼굴을 묻어가는 고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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