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6.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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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댁 며느리는 뭘 낳았는지? 내가 산파를 해주고 싶었는데...!
아들의 삶이 새경 없는 머슴살이처럼 여겨져 안절부절 못하는 것
하소연도 할 겸 아들을 불러다가 앉힌 후 “어떻게 된 거냐?”하고 물었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달랑 세 사람이 사는 집에 인적이 끊어진지가 언제부터였든가?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니 할아버지 사후로부터 사오년은 족히 되어 보였다. 그 사오년 동안 일 년에 딱 두 번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의 집에 발걸음을 했다. 그 첫 번째가 초가 지붕을 이는 날이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이엉을 엮어 지붕을 얹어 주는 날로 공식적으로 할머니가 동네 사람을 만나보는 날이다. 그 날은 동네 사람들이 귀신이 산다고 등을 돌려버린, 마녀가 산다고 꺼려오던 집에 마지못한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아들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보니 내키지 않은 걸음을 제비뽑기로 결정하여 조심스럽게 찾아드는 것이다. 거뭇거뭇한 지난 세월을 노란 새 이불로 갈아 덮을 때 품앗이로 나선 이웃을 할머니가 만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반갑다고, 반갑다고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짓지만 이웃한 사람들은 쌀쌀맞게 등을 돌려 대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윽고 지붕이 노란 색깔로 단장을 끝내고 나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돌아가 버린다. 새참도 인사 따위도 필요 없다며 눈조차 마주치기 싫은지 외면하여 고개를 숙여 가버린다.

그런 날은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듯 유난히 저녁노을이 불게 물드는 날이기도 했다. 이윽고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둠이 사위를 덮어올 때면 할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축대 끝에 맥을 놓은 듯 주저앉아

“지붕아! 지붕아! 너는 좋겠다. 산뜻하게 단장해서 너는 좋겠다. 쭈그렁방티 같은 내 삶도 너처럼 연년이, 때때로 새롭고 산뜻하게 단장하고 살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다리미로 다려 말갛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까맣게 탄 밥도 나누어 먹고, 멀건 나물죽도 나누고, 인정도 나누고, 궂은 일도 나누고, 기쁜 일도 나누고, 슬픈 일을 서로 서로 보듬어 위로하고, 그리, 그렇게 살면 오죽이나 좋을까? 내 살아 생전 그런 날이 다시 있을까? 그런 날이 진정 올라나”하며 중얼거리더니 폐부 저 밑으로부터 끌어올린 한숨을 ‘휴~’하고 씽크홀이라도 만들 듯 길게 토하더니 “감골댁아~ 감골댁아~ 예쁘장한 감골댁아~ 너는 내가 그렇게 밉든, 안 죽이고는 못 살듯 그렇게 밉던”하더니 세상에 다시없을 슬픈 눈으로 저 먼 산, 앞산을 일별하고는 “청솔댁 며느리는 뭘 낳았는지? 내가 산파를 해주고 싶었는데...! 꼭 내 손으로 애기를 받아주고 싶었는데! 토실토실한 고추를 단 왕자님인지! 조갑지 공주님인지...!”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신세 한탄처럼, 처연한 읊조림처럼 집안에서 사람보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 만치 귀한 지경이다. 이마저도 있는 듯 없는 듯 일에 빠져 사는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이 있어서 그나마 사람 사는 구색을 갖추고 사는 것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도를 닦는 듯,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말건 관심이 없다는 듯 아들은 오늘도 “어머니! 들에 갔다 오겠습니다”하는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두엄 한 짐을 지고 삽짝을 나선다.

아버지, 즉 아들은 늘 할머니를 ‘어머니’라 깍듯이 호칭을 써서 부른다. ‘어머니’하고, 할머니를 ‘어머니’라 깍듯하게 부르는 아들을 두고 귀동냥으로 동네 사람들은 예의 바른 자식을 두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저 마녀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어떻게 저렇게 듬직하고 착한 아들이 나왔을까? 씨 도둑질을 했나?”하고 수군거린다는 것이었다. 칭찬인지 아니면 부러움인지, 그런 말이 암암리에 귀에 들릴 때면 뭔가 모를 뿌듯함을 가슴으로 느끼는 할머니다. 모처럼만에 이마에 아로새긴 굵은 주름살이 펴지고 만면에 웃음기가 도는 할머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입장에선 볼 때 아버지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은 장막이 암암리 쳐진 듯 여기고 있었다. 남들의 아들 대다수가 “엄~마”아니면 “언~”, 그도 아니면 기분 내키는 대로 “야~”하고 부르는데 반해 유독 아들 만은 “어머니”한다. 꼬박꼬박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태어날 적에 저를 버린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 싶어 지레짐작으로 조바심이 이는 것이다. 스스로 제 발이 저린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여긴 할머니가 어느 날은 작심이라도 한 듯 아버지를 불러 앉힌 후 엄마와 자식, 모자지간은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로 그 무엇보다 가까운 관계다. 격이 없어야 한다고, 허물이 있을 수 없다고, 설령 살인을 했다 치더라도 감싸야 한다고, 어떤 경우에라도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고 귀 뜸을 해도 여전히 “어머니”다. 저러다가 머리가 재대로 굵으면

“어머니가 내가 애기 적에 죽이려 했지요! 그 꼴 난 젖이 아까워서 죽이려 했지요”하는 말을 내뱉고는 훌훌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다. 할아버지로 인해 앞길이 막힌 김삿갓(김병연)이 미련 없이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듯 말이다. 설령 아들이 그런 마음을 먹고 있지 않더라도 모진 결정을 한 부모이기에, 천륜을 저버린 엄마이기에 견디고 참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한편으로는 늘 두려운 것이다. 마음 어느 한구석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한 것이다. 가슴 저 깊은 곳에 지난날의 과오가 화인처럼 찍혀 지워 지지가 않는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병들어 오늘내일하는 동생과 젖줄을 끊어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두고 미련 없이 떠날 것 같은 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난날의 모진 결정이 늘 머릿속에서 ‘뱅뱅’도는 것이다. 그런 부모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아들이기 이전에 눈치 것 알아서 처신을 하고 제대로 된 밥값을 하려 드는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아들의 삶이 새경 없는 머슴살이처럼 여겨져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 농사일을 알고부터는 집안에 재대로 궁둥이를 붙여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어쩌다 밤 기도가 늦어져 봉창으로 희끔한 여명이 밝아 올 즘이면 ‘삐그덕’하는 방문 여닫는 소리에 이어 신발 끄는 소리를 여운으로 삽짝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걸 싶은 것이다. 삽짝에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히 들을라치면 칠거지악을 들어 소박을 놓은 서방님의 야속한 발걸음만 같아 지옥불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날이면 당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눈비가 오거나 명절은 맞는다고 쉬는 법이 없었다. 날이 궂거나 명절을 맞으면 농사일로 날이 무디어진 호미나 삽을 벼루던가? 그도 아니면 방구석에 들어앉아 새끼를 꼬는 것으로 몸을 부리고 있었다. 딴에는 병든 동생의 약 값에 보탬이 되고자 쉴 틈이 없다고 했지만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 같아 안쓰러운 것이다.

게다가 어느 날인가? 컴컴해 가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어머니 밤은 왜 생겼나요?”하며 물어 올적에는 그저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기만 했다. 가슴팍에 돌을 얹는 압슬형을 당하는 죄수 모양 가슴이 터질 듯 했다. 친구들을 만나 천방지축으로 한창 뛰 놀 나이에 소년가장으로 한 집안을 책임지고자 노력하는 아들을 둔 어미로써 못할 짓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런 아들마저 없었다면 일 년을 들어 몇 사람이나 집을 찾을까? 늦가을 초가지붕을 얹을 때나, 정월 대보름날 지신 밟기를 할 때나, 헤아려보니 다섯 손가락에도 두셋이 남는다. 그나마 작년에는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건너 뛴 건지 정월 대보름을 맞아 지신 밟기조차 없었다. 할머니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모처럼 동네 사람들이 찾아온다 싶어서 막걸리랑, 동동주는 물론 안주거리로 닭도 잡고, 부침개로 배추, 파, 게다가 없는 시간을 쪼개서 대목장까지 다녀왔다. 고쟁이 안에 꽁꽁 싸서 묵었던 쌈지까지 아낌없이 풀었다. 그렇게 비싸다는 문어를 사고, 고등어를 사고, 명태랑 마른오징어는 사다가 물에 불려 푸짐하게 준비를 하고보니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일 년에 동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두 번째 날을 맞아 장보기 공도 없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다. 하소연도 할 겸 아들을 불러다가 앉힌 후 “어떻게 된 거냐?”하고 묻자 이 모든 것이 어머니 때문이라며 오히려 힐책이다.

“나 때문이라니! 내가 뭘 어쨌게?”하며 이유를 추궁하자 아들은 “그게 말이죠! 어머니”하며 이유를 설명하는데 기가 막혔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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