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3.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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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이 닳아져라 비벼지고 고개는 연신 주억거린다.
어둠을 뚫고 또 부엉이가 ‘부~엉’하고 운다.
할아버지의 구슬픈 읍(泣)이 안개를 뚫어 할머니의 애간장을 쥐어짠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때 무당은 일명 '손풀이' 굿을 펼치고 있었다. 빗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울긋불긋한 무복 위로 허리에는 호수 띠를 둘렀다. 방울을 흔들고, 때로는 칼을 들어 휘두르고, 삼지창을 내지른다. ‘청,백,황,홍,흑’의 오방색 깃발을 들고 눈이 부시도록 뱅글뱅글 돌아간다. 그 와중에도 중간 중간 “어~허 부정타”와 “어~허 정성이 부족타. 정성이 부족해”란 추임새를 넣는 등 흥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대단한 구경거리를 앞에 두고 흥분했던 구경꾼들은 찬물세례를 맞은 듯 조용하게 입을 다물었다. 반면에 할머니는 치맛말기를 뒤적거려 어렵게 찾은 엽전 한 닢을 정성이라며 조심스럽게 제단에 올렸다. 그 때도 무당은 옆 눈으로 일별하고는...

“어~허 정성이 부족타. 정성이 부족해”란 말을 노엽다는 듯 내 뱉는다. 엽전 한 닢 정도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은 굿판을 벌려도 죽고 살 목숨을 어떻게든 살 목숨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앓아누운 아기의 심각한 상태를 볼 때 본인의 신기 정도로는 도저히 살릴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 화타와 편작이 와도 어림없다 여긴 모양이다. 그렇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부모의 애끓는 심정을 목석처럼 모르는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선심을 베풀고 있다 여긴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이미 벌어진 푸닥거리인 만큼 챙겨야할 잇속을 확실하게 챙기고 보자는 심산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급기야 장롱을 뒤진 할머니가 지전 한 장을 더하자 방울소리가 용마루를 뚫어 하늘로 치솟는다. 덩달아 할머니는 손금이 닳아져라 비벼지고 고개는 연신 주억거린다.

좀처럼 끝날 줄 모르던 푸닥거리도 초경(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을 지나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렇다고 잠들 수 있는 밤은 아니다. 한바탕의 푸닥거리가 끝나 무당이 돌아간 뒤에도 촛불은 여전히 밤을 밝혀 꺼질 듯 깜박거린다. 할머니도 이미 무당의 푸닥거리 따위는 소용이 없고 오늘밤이 고비란 걸 직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문풍지를 드나드는 바람결을 따라 깜박거리는 촛불아래 까만 밤을 하얗게 밝히는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의 귓전에 무당의 방울소리가 환청처럼 딸랑거린다. 어둠이 두께를 더해 깊어가는 밤이 하늘 중천에 덩실 뜬 달도, 꼬리를 흔들어 아양을 떨던 삽살개도, 우악스럽게 양 날개를 푸드득거려 홰를 치며 울던 수탉도 일거에 잠재운 가운데 할머니의 기도만이 구구절절 애절함을 더해간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천지분간을 모르는 우리 애가 무신 지이가 있나요! 직일려면 차라리 지이가 많은 이 년을 직이도 좋은께 제발 생떼 같은 내 아들만은 우야든지 살리 주이소”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나무토막처럼 누운 아들의 내리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떠는가 싶더니 바람 잔 호수처럼 고요하다. 마지막을 알리는 회광반조回光返照:태양이 지기 직전에 잠시 빛나다. 죽을 무렵에 잠깐 정신이 맑아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찾았다가 또 소리 소문 없이 꼬리를 사린 것이다. 입이라도 삐죽거려 한번쯤은 어미를 찾을 만도한데 저승사자의 성화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인정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저승사자가 바람처럼 다녀간 모양이다. 할머니가 무당의 말에 따라 문전에 차려낸 미주를 곁들인 진수성찬의 사잣밥도 옥황사제의 엄명 앞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간혹 정성에 감읍하고, 한잔 두잔 마신 술이 취해 본분을 망각한 경우도 더러 있다 들었지만 어린 목숨을 두고 참말 매정타 싶다.

전생인지 이생인지도 알 수 없는 업[業: 전세(前世)에 지은 소행 때문에 현세에서 받는 응보(應報)]을 잔뜩 짊어진 어깨가 천근이다 보니 항상 피곤에 짓눌려 살아온 할머니다. 따라서 평소 밝다고 자랑하던 가엽은 눈마저 일순간 당달봉사가 된 건지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단지 어린 생명을 갈구하는 손만이 연신 기계처럼 비벼지고 고개는 가을바람을 만난 갈대처럼 쉼 없이 흔들린다. 그즈음 어둠속에서 짝을 찾는 귀뚜리미가 쉰 목을 가다듬어 귀뚤귀뚤 울어 옌다. 그리고 어느 땐가 가랑잎 뒹구는 아우성을 뚫고 뒷산의 부엉이가 ‘부~엉! 부~~엉’하고 구슬프게 운다. 무의식중의 할머니가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사람이 죽으면 새가 된다는데! 부엉이가 왔네! 저승 새가 된다는데! 부엉이가 어째 왔을까”가물가리는 촛불 앞에 이마는 방바닥에 박고 양팔을 벌려 엎드린 할머니가 꿈결처럼 중얼거린다. 애끓은 할머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둠을 뚫고 또 부엉이가 ‘부~엉’하고 운다.

그렇게 시나브로 밤이 깊어 사경을 지나 오경(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으로 접어드는 어느 때다.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생때같은 내 아가! 이 에미를 두고 너는 어딜 가느냐”악몽이라도 꾼 듯 화들짝 눈을 뜬 할머니가 급하게 숟가락으로 뜬 물을 입을 벌려 흘려 넣는다. 하지만 백(魄)은 이불 속에 그대로 건만 혼(魂)은 이미 저승 문턱을 넘어섰는지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 물이 입가로 주르르 흐른다. 가슴이 ‘덜컹’내려앉고 ‘떵~그렁’하고 힘이 풀린 손에서 숟가락이 떨어져 방바닥에 나뒹군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아들을 바라다볼 적에 핏기가 가신 얼굴은 납처럼 굳어 백지장 같고 맥이 풀린 사지가 문어발처럼 축축 늘어진다. 불식간 숨어 끊어진 것이다. 새벽닭이 홰를 쳐서 울고 봉창이 훤하게 밝아온다.

할머니는 죽은 아들을 산사람처럼 끌어안아 “니가 죽으면 이 애미는 무슨 낙으로 살꼬~ 아가~ 아가~ 우리아가 제발 눈 좀 떠봐라! 숨 좀 쉬 거라”하는 절규 끝에 까무룩 정신 줄을 놓아 버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봐 임자! 죽은 아는 죽은 아고, 산 사람은 살아 야제! 임자 인자 그만 정신 좀 차리게”하고 할머니의 등을 토닥거리는 할아버지는 죽은 아들로부터 할머니를 떼려한다. 그제야 부시시 얼굴을 들어 죽은 아들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들여다보다 보더니 순순히 품안으로부터 내어놓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숨이 끊어진 아들의 옷을 몽땅 벗긴다. 온몸 구석구석을 물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는다. 입던 옷을 그대로 입힌다. 그렇게 대충 장례절차를 마친 것이다. 제사상도 없고 대감 댁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룬다던 그 흔하디흔한 문상객 한 명이 없다. 종이쪼가리 지방 한 장에 축문 한 줄이 없다. 죽음 앞에는 다 부질없는 것, 어린 생명이 그렇게 스러져 기억에서 잊히기 시작한 것이다.

“북망산이 문 밖이라더니 정말 그 짝 일세! 하이~고 불쌍한 내 자슥아 뭐가 그리 급해 뒤돌아볼 틈 없이 이리도 빨리도 가노”며 땅을 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거적에 둘둘 말아 지게에 얹어 비틀거려 짊어 진 다음 잰걸음으로 삽짝을 나선다. 3일 장례니 5일 장례 같은 것은 애당초 없는 것이다. 거적이 수의를 대신하고 지게가 관을 대신하여 삽짝을 나서는 시각이 장례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자박자박하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짙은 안개가 희미하게 밝히는 길을 따라서 산으로! 산속으로 가물가물 묻히어 간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듯 ‘콩콩’하는 삽질하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구슬픈 읍(泣)이 안개를 뚫어 할머니의 애간장을 쥐어짠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 주위로는 허연 소금기가 부석부석 내려앉고, 목은 꺼이꺼이 쉬었다. 물에라도 잠긴 듯 퉁퉁 부운 눈으로 할머니가 “어떻게 했어요”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할아버지께 묻자 “뭘 어떻게 해! 양지바른 곳에 토닥토닥 잘 묻어주었지! 겨울이면 눈이 녹은 자리로 노루가족이 뛰고, 고라니 가족이 놀던 자리라 명당이제! 장가를 들어 아들이라도 놓을라치면 장관자리를 거뜬할 정도지! 이봐 임자 내가 죽거든 아들이랑 같이 묻어주게! 그데 가슴이 왜 이리 쓰릴꼬? 이렇게 애물단지가 될 바엔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 하기야 지~놈이야 지은 죄가 없어 극락에는 갔을끼라! 암 틀림없을 거야”며 혼자 독백처럼 중얼거린 할아버지가 부스럭부스럭 엽연초를 찾아 장죽 대꼬바리(대통)에 꾹꾹 눌러 넣더란다. 이어 장죽의 물부리를 지그시 입에다 물어 길게 빨아들인 할아버지가 내 품는 아련한 연기 속에서 생시인 듯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 늠의 몹쓸 자슥아”하며 허공을 양손으로 움켜 쥔 할머니 눈에는 또 봇물이 터진다. 세월에 절어 꼬질꼬질한 손수건이 치맛말기로부터 눈물을 마중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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