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3.01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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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날을 맞아 음악과 어울림이 없이 어찌 그냥 보낼 수가 있을까?
“야~ 이놈아 눈썹이고 뭐고 간에 세수나 해라”
사발이 철철 넘치도록 채우고는, 권주가인 듯 한마디 거든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정월대보름(2월 26일)을 만 하루 넘긴 27일(음력 1월 16일), 밤의 달이 대구 범어동 아파트 숲 위로 둥실 떠올랐다. 컴퍼스를 돌려 도화지를 오려낸 듯 정월대보름 달보다 완벽하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하늘 가장자리에는 심술궂게도 솜털같이 희미한 구름무리가 마천루 같은 아파트꼭대기 위에 넓게 퍼져며 고느적한 달빛을 흐린다.

정월대보름 달보다 더 동그란 음력 16일 밤의 달, 과학자들의 이를 두고 빛이 달에서부터 지구까지 와 닿는 속도와 거리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작년에 이어 금년도 ‘코로나19’로 인해 한산한 정월대보름이다. 이를 대변하듯 시장상인들은 정월대보름을 맞아 오곡밥을 좌판 위에다 쌀을 비롯한 온 갖가지 곡물을 잔뜩 늘여놓았건만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저마다 울상이다. 이는 곡물상만이 겪는 설음이자 슬픔이 아니다. 부럼(음력 정월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깨무는 밤·호두·잣·은행 등 껍질이 단단한 과실)을 준비한 상점은 물론 시장자체를 찾는 사람들이 없다며 상인들 마다 허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비단 시장상인들만 그럴까?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겪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 마당에 결코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2022년이자 임인년(壬寅年)에는 ‘코로나19’의 발생 이전과 같은 정월대보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2019년에 이어 2020년까지 딱 두해, 2018년 정월대보름 때만 해도 너나없이 달에게 소원을 비는 정월대보름은 더 없이 흥이 넘치고 신명나는 하루였다. 이 좋은 날을 맞아 집집마다에는 오곡밥 그리고 떡과 삶은 돼지고기, 갖가지의 전 종류 등을 포함한 먹거리와 안주거리를 분에 넘치도록 준비했다. 누구나 풍족하게 먹고 배가 부를 수 있도록 말이다. 나아가 이렇게 좋은 날을 맞아 음악과 어울림이 없이 어찌 그냥 보낼 수가 있을까?

그 첫 번째의 서막은 안날 저녁부터다. 학교를 다녀온 초등학생 또래를 불러 앉힌 막내고모가 “에~또 오늘 저녁은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니까 자면 안 된다”며 짐직 근엄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는다. 이 말에 일치감치 저녁상을 물린 녀석은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병든 달구새끼 마냥 꼬박꼬박 존다. 그도 그럴 것이 하교를 파하기가 무섭게 득달같이 녀석들은 연날리기다 어름지치기로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된 상태다. 어디엔들 코만 박으면 잠이 쏟아진다. 아무리 막내고모가 눈썹이 센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쏟아지는 잠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 같다.

사정을 모르는 엄마는 “야~가 왜 여서 싸이나 묵은 삥아리 멘크로 자불고 앉았노”며 이불을 깔고 베개를 머리에 받히기가 무섭게 꿈나라를 찾아든다. 불식간 잠에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막내고모가 녀석의 눈썹에 밀가루를 하얗게 칠하고는 얼굴만연에 고소를 띠운다. 막내고모의 심술로 인해 졸지에 눈썹을 일어버린 녀석이 잠을 깬 다음날 아침은 거울을 들여다보기가 무섭게 울음보를 터트리는 것은 당년지사, “엄마~ 내 눈썹이 내 눈썹이 하얗다. 내 눈썹 찾아 줘요”하며 엉엉 울어 생떼를 쓰기 시작한다. 그런 녀석의 보며 배꼽을 잡고 웃던 막내고모와 어머니는 “야~ 이놈아 눈썹이고 뭐고 간에 세수나 해라”하는 말을 따라 결국 세수를 하고 나서야 작은 소동의 막이 내리다.

그런 심술궂은 막내고모는 안날 저녁 체를 벽에다 걸어둔다. 이는 신발귀신을 막는다는 벽사의 한 방편이다. 정월대보름 안날 저녁은 신발귀신이 득세를 하는 날이다. 그때 벽에다 체를 걸어두면 신발을 훔치려 왔던 신발귀신이 벽에 걸린 체의 구멍을 일일이 세다가 날이 세어 신발을 훔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신발귀신의 행동을 듣고 있을라치면 절로 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본무대는 역시 정월대보름 당일 날이다.

날이 훤하게 밝아 오전 새참 시간 때가 되면 마을 어귀를 시작점으로 마을전체가 떠들썩해진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정월대보름날에 즈음하여 신명난 한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올망졸망한 동네꼬마 녀석들이 쪼르르 뒤를 따르고 “농자 천하지대본야”란 깃발이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이 펄럭거린다. 날날이(태평소)가 앞장서고 꽹과리와 북 등이 어우러지는 한판은 더 없이 볼만한 구경거리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일일이 찾아서 방문하는 행렬이거만 내 집에는 언제나 찾아들까? 은근한 조바심이 일어 빼곰히 고샅으로 눈길을 주는 것도 일각 여 쯤, 그새를 못 참아 오천 원, 만원, 오만 원짜리 돈이 듬성듬성 꼽힌 새끼타래를 앞장 세워 골목골목을 돌아든 사물놀이패가 삽짝으로 썩 들어선다. 그 뒤를 마을사람들이 떼로 몰려 우르르 들어서자 불식간 정신을 차릴 틈이 없어 부질없는 손발만 허둥지둥 어지럽다.

정월대보름날의 연래행사인 지신밟기 행렬은 언제 봐도 시끌벅적하다. 그 도떼기 시장판 같은 야단법석 속에 그동안 어여쁘게 마음에 새겨 연습했던 미사여구와 많은 문장들은 총소리에 놀란 새떼처럼 흩어지고, 그저 한다는 말이 “어서 오이소”가 전부다. 하긴 다른 말들은 일절 필요치가 않을 지도 모른다. 그 짧은 문장조차 귓전으로 흘려버려 듣는 둥 마는 둥 ‘삘리리 삘리리’하고 귀가 멍멍하도록 울어 에는 날날이 소리에 묻어 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거들먹거들먹 행렬 앞잡이에 나섰던 칠복아재가 앞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허~ 물렸거라! 객귀신아 물렀거라! 잡귀신아 썩 물렀거라”고 고함을 치듯 내지르고는 거친 숨결을 한 박자 죽인다. 이어 “깨갱 깽”오지게도 꽹과리를 두드려 잡는 상쇠 역을 맡은 영희아비가 활짝 열려진 사립문으로 한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덕담을 빌미로 흡사 빚쟁이 모양 보챈다.

“아따 금년에 이 집은 패 일언 하고 에~또 천복 만복이 넘쳐 운수대통하소”하는 말끝에 “거 뭐라 머시기 좀 없니꺼 지나가는 총각귀신 배고파 죽을씨더 머라도 조은깨 배 좀 채워주소 그라고 나는 가는귀가 좀 있어 이명주는 필히 묵어야 한당께요”하고는 뒷짐에 졌던 꽹과리를 들어 집안이 울리도록 ‘따~당’두드린다. 그 소리가 어떤 소린가? 두엄 옆에서 되새김질로 여유를 부리던 누렁이황소가 놀란 듯 벌떡 일어나고 멀쩡한 세상이 “따~당”하고 자지러진다. 그 찰나지간 부엌문을 나서는 안주인의 손에는 푸짐하게 차린 주안상이 들여 있다. 이어 구겨진 듯 거꾸로 신은 듯 터덜거리는 고무신을 신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안주인의 걸음걸이를 볼 때 얼마나 경황이 없는지 흡사 숯불에 발을 덴 백구(흰색강아지)마냥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 요란한 중에도 안주인은 질수는 없다는 듯.

“뭐라 캐샀는교? 사람 사는 집에 뭐는 없을까? 보채기는 왜 그케 보채샀니꺼”하고는 입을 삐죽거려 개다리소반을 행렬 앞에 떡하니 받친다. 그즈음 “어디보자 어디에 있나 찾아나 볼꺼나”허리춤을 찾는 손길이 양지바른 언덕에서, 이를 잡는 어사모양 일일이 들추어 추스르던 바깥주인이 기어이 찾은 쌈지를 홀라당 뒤집는다. 그러던 중 어렵게 찾아 꺼낸 꼬깃꼬깃한 구렁이 한 마리를 쫙쫙 펴서는 이마에 한번 붙였다가 양손으로 고이고이 잡아 한참을 중얼중얼 주문을 외운 뒤 새끼타래를 더듬어 꼽는다. 때를 같이하여 안주인의 손길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를 두고 누가 부부의 일괄된 행동을 부창부수라 했나? 그때 안주인은 이곳저곳 몸통 한군데 성한 곳 없이 찌그러져 곰보모양에다 색이 바래고 바래다보니 군데군데가 희끗희끗한 누런색주전자를 들어 휘휘 돌린 뒤 개다리소반에 놓인 사발이 철철 넘치도록 채우고는 권주가인 듯 한마디 거든다.

“아따 마큼 다 고상 하니더 전부 일로 와서 한 잔씩 쭉~쭉 드시이소! 글구요 기왕에 이꺼정 어려운 걸음 한 짐에 작년 맨크로 설렁설렁 밟지 말고 올해는 제대로 액땜 치르게 아주 매매 단디 좀 밟아주고 가소 이명주야 여기 쎄고 쎈니더”하고 받아 넘기자 “아따 그기야 이집 양반하고 아지매가 하는 거 봐 감시로 하제”하고는 “와~이리 덥노 한바탕 놀아서 그런지 계절이 개울이데도 여름 맨크로 덥다. 아이구 더버라 뭐 시원한 거 없니꺼”하더니 소매 끝을 들어 땀으로 번들번들한 이마를 깊어진 주름이 훤하게 들어나도록 훔치고는 어정쩡한 자세로 어물쩍거릴 적에 안주인이 한마디 답가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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