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이 있고 꽃양귀비가 반발한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꽃구경 오세요!
작약꽃이 있고 꽃양귀비가 반발한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꽃구경 오세요!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5.14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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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대숲을 보존할 수 있었음은 천만다행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쩌면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노래가사 같다.
두 분의 모습에서 부부는 늘 함께하는 것을 실감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부부가 나란히 작약꽃 감상 중이다. 이원선 기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부부가 나란히 작약꽃 감상 중이다. 이원선 기자

봄꽃이 제 할 일을 마친 빈 공간으로 여름을 알리는 꽃소식이 한창이다. 그 중 꽃양귀비가 지천으로 널렸다는 울산 태화강 십리대밭 길 옆 태화강 국가정원을 찾았다.

울산 태화강 십리대밭 길은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에서 중구 태화동에 걸쳐 태화강을 따라 펼쳐진 대나무 숲을 말한다. 대숲이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약 십리(4km)에 거쳐 있어서 '십리대숲'라 부른다. 역사서를 근거로 하면 적어도 고려시대 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이곳 주민들이 백사장 위에 대나무를 심어 잦은 홍수의 범람을 막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산업화 과정에서 개발될 수도 있었으나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대숲을 보존할 수 있었음은 천만다행이다.

이후 2000년에 시작한 태화강 수질개선사업으로 2006년 태화강이 1급수로 수질이 개선되자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연어가 돌아오는 것을 개기로 울산광역시는 남구 삼호동과 중구 태화동 십리대밭 일대를 공원화하게 되었다. 2004년부터 2010년 5월까지 총사업비 1천196억 원(사유지 매입비 1천억 원, 공사비 196억 원)을 투입,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2011년 5월 태화강대공원(太和江大公園)으로 문을 열었다.

흐드러지게 핀 꽃양귀비를 감상 중인 할머니. 이원선 기자
한 할머니가 흐드러지게 핀 꽃양귀비를 감상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일출 시간대를 노렸으나 겨울철과는 달리 오전 5시 30분경에 얼굴을 내미는 태양의 부지런함에는 조금 못 미쳐 앞동산으로부터 한 발이나 올랐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들이 펼치는 향연에 초대되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자 만개한 꽃양귀비로 인해 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하다. 바람이 공기를 움직이자 이번에는 붉은 비단천이 태화강 둔치를 뒤덮어 너풀거린다. 그 경이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한참이나 움직이질 못한다.

그 중 벌써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다. 인근 주민이거나 아니면 자연을 만끽하고자 밤새 차를 몰아온 사람인지도 모른다. 두툼한 외투 밑으로 한 눈에 보아도 예쁘게 보이는 원피스 끝자락의 하얀 레이스가 하늘거린다. 꽃과 자연을 배경으로 멋진 작품을 구상하고 왔었나 보다. “아침 빛이 너무 이뻐요!” 만족을 표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쩌면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노래가사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어필하는 것 같다.

꽃밭 속에서 담소 중인 관광객. 이원선 기자
관광객들이 꽃밭 속에서 담소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언제 나왔는지 꽃양귀비 밭 언저리에 있는 평상 위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파파할머니가 조용히 앉아 계신다. 바람이 머릿결을 빗질하고 햇빛이 가만가만 어깨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세파를 초월한 듯 여유롭다. 말이라도 붙여볼까 싶지만 사색을 방해할까 싶어서 느릿하게 발길을 돌린다. 또 한 곳에서는 친구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김이 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홀짝이며 소곤소곤 담소 중이다. 무슨 이야기가 저리도 재미날까 실례가 아니라면 엿듣고 싶은 충동마저 인다. ‘코로나19’로 인해 각박한 현실 속에서 보는 한갓진 풍경이다.

정원에는 꽃양귀비 외에도 작약, 허브를 비롯하여 고유의 이름 지닌 꽃들이 지척에서 만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태화강 줄기를 벗어나 작은 지류로 변한 내에는 커다란 몸집을 물아래로 숨긴 채, 검은 등판을 삐죽이 내민 잉어 무리가 물장구질로 퍼덕거리고, 오리 부부는 뭉툭한 주둥이로 수초를 헤치며 나란히 아침을 즐긴다. 물닭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밤새 허허로웠던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 사이를 2인용 자전거의 페달을 여유로운 호흡에 맞추어 밟으며 지나가는 부부가 보인다. 비록 내가 아니지만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행복감을 느낀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듯이. 문득 저 두 분을 모델로 했으면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기도 하다.

밭이 비좁도록 만개한 작약꽃. 이원선 기자
작약꽃이 밭이 비좁도록 만개해 있다. 이원선 기자

그런 마음이 통했을까? 지척에 있는 작약꽃밭에서 다시 만났다. 무작정 명함을 내밀고는 용기를 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어렵게 부탁하느냐는 듯 흔쾌히 허락한다. 다시 한 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도 하다. 사람 향기에 취하고 꽃 향기에 취하는 이래저래 행복한 아침이다. 인근에 살고 있다며 “우리 두 사람 사진이 저 태화루에도 걸려 있어요!”라며 떠나는 두 분의 모습에서 부부는 늘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부부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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