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위안, 김천 꽃양귀비 단지
위로와 위안, 김천 꽃양귀비 단지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5.2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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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가 주는 위로와 위안
김천 혁신도시 6천여평 양귀비 꽃밭. 장희자 기자

다가서면 관능이고
물러서면 슬픔이다.
아름다움은 적당한 거리에만 있는 것.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다가서면 눈멀고
물러서면 어두운 사랑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
아름다움은
관능과 슬픔이 태워 올리는
빛이다.

(양귀비꽃, 오세영)

 

꽃양귀비 단지는 경북 김천시 율곡동 1126번지 일대에 있다2021년 5월 초순부터 개화해서 양귀비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김천시는 포토존, 벤치, 조형물을 설치하였다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하여 장수풍뎅이와 무당벌레 조형물, 고추잠자리와 매미채를 든 어린이 조형물, 나비 조형물, 황새 조형물, 하트 조형물이 있다. 

양귀비와 김천역. 장희자 기자

관상용 꽃양귀비는 세계적으로 약 70종이 분포한다. 주로 2년생으로 유럽 남부와 북부, 아시아 등지의 고산지대 초원에서 자생한다. 흰색, 노란색, 주황색 등 매우 다양하다. 국내에는 양귀비, 개양귀비, 두메양귀비, 흰양귀비 등 4종이 자생하거나 재배되고 있다. 우미인, 우미인초, 물감양귀비라고도 부르는 꽃양귀비에는 양귀비와 달리 마약성분이 없다.

 

황새 조형물. 장희자 기자

꽃양귀비는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시대적 상황에 따른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중국 초나라 항우의 애첩 우미인은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포위되자 술자리에서 석별의 정을 읊는 항우의 시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 뒤 목숨을 끊었다. 나중에 우미인의 무덤에서 이 꽃이 피어 그녀의 이름을 따서 우미인초라 불렀다.

 

양귀비와 고속열차. 장희자 기자

서양에서는 1915년 1차 세계대전 중 캐나다 군의관 존 맥크래 중령이 플랑드르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곳은 연합군과 독일군이 대치했던 서부전선의 최전방이자 최대 격전지였다. 그가 전선에 투입된 지 한달 만에 친구이자 부하인 알렉시스 헤엄 중위가 전사하고 말았다.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전우를 땅에 묻었다. 얼마 후에 "플랑드르 들판에서"라는 시를 남겼다. 종전 후에 그가 지은 시는 전쟁의 비극을 담은 대표적인 시가 되었다. 양귀비꽃은 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표지(標識)가 되었다.

우리에게 양귀비꽃은 변영로 시인이 임진왜란 때 논개의 충절을 기린 시에서 상징성을 찾는다. 꽃양귀비의 꽃말은 위로와 위안이다.

운남산 봉우리와 양귀비.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