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불
(4)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불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3.1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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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에 새겨진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불의 ‘발견 아닌 발견'
서산 마애불의 미술사적 해석

▶ 바위에 새겨진 백제의 미소

우리나라의 마애불 중 최고로 꼽힌다는 국보 84호 서산 마애불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가야산 계곡의 절벽 인바위(印岩)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 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의 미소’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은 서산 마애불(또는 서산 마애여래삼존불상)은 부처님 얼굴에 독특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세계 불교 미술사에서도 특기할만한 뛰어난 조각 예술이다.

세 분 부처님이 인자한 웃음을 띠고 있는 입가를 보니 서산 마애불이 왜 ‘백제의 미소’라고 불렸는지 느낌이 온다. 백제인 들은 어떻게 단단한 화강암에 원만하고 따뜻하며 환한 미소를 새겨 넣었을까?

중후한 느낌의 본존은 높이가 무려 280cm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 또 햇빛의 방향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정면에서 바라본 얼굴은 친근하다 못해 귀엽기까지 한 정겨운 얼굴이었다. 양쪽에 새겨진 관음과 반가상도 높이가 170㎝가량 된다. 오른쪽에 새겨진 관음보살의 얼굴에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웃음이 보인다.

국보 84호 서산 마애불. 오주석 기자
국보 84호 서산 마애불. 오주석 기자

▶ 서산 마애불의 ‘발견 아닌 발견’

서산 마애불의 발견 아닌 발견은 실로 위대한 발견이었다. 서산 마애불의 등장으로 우리는 비로소 백제 불상의 참모습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서산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 안쪽 보원사 터에 있는 석조물들은 일찍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가까운 거리에 마애불이 있다는 사실을 인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문화재 관계자에게 마애불은 오랜 세월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1959년 4월, 당시 부여박물관장 홍사준과 미술사학자 황수영 박사 등이 용현리 계곡 위쪽에 있는 보원사지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우연히 만난 나무꾼이 아니었으면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숨어 있을지도 모르고, 이제는 산림이 우거지고 나무꾼도 사라져서 아예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 홍사준 부여박물관장과 나무꾼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전해온다.

홍사준: “이 근처에 탑이나 불상 또는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

나무꾼: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짱돌을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이 말을 들은 홍사준이 직감적으로 “뭔가가 있다.”라고 느끼고 나무꾼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이 마애불을 보고 사진을 찍어 문화재청에 보고하여 본격 조사에 착수함으로써 그 아름다운 미소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불은 세분의 부처님 미소가 각각 디르다. 오주석 기자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불은 세 분의 부처님 미소가 각각 다르다. 오주석 기자

▶ 서산 마애불의 미술사적 해석

서산 마애불은 미술사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불상의 양식적 특징이자 매력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나는 삼존불 형식이면서도 협시보살이 독특하게 배치된 점이며, 또 하나는 저 신비한 미소의 표현이다.

먼저 삼존불 형식은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불상에도 많이 나오는 6~7세기 동북아시아의 보편적 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 삼존불 형식이라고 하면 석가여래상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협시보살상이 배치되는 것으로 석가여래에는 문수와 보현보살, 아미타여래에는 관음과 세지보살, 약사여래에는 일광과 월광보살 등이 배치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서산 마애불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구성으로 본존불의 왼쪽에는 반가상의 보살, 오른쪽에는 보주를 받들고 있는 이른바 봉주보살이 선명하게 조각되었기 때문에 이 삼존불의 배치가 매우 흥미로운 과제가 되었다. 반가상의 경우는 미륵보살로 보는 데 별 이론이 없지만 봉주보살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서산 마애불 부처님의 미소. 오주석 기자
서산 마애불 부처님의 미소. 오주석 기자

또 다른 특징이자 큰 매력은 저 환한 미소에 있다.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은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는데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고 한 이후에 어느 누구도 이의 없이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고 있다.

30년 넘게 서산 마애삼존불 관리인으로 일해 온 정장옥 씨는 “마애불의 미소는 조석으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아침에 보이는 미소는 밝은 가운데 평화롭고, 저녁에 보이는 미소는 은은한 가운데 자비롭다.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 해가 서산을 넘어간 어두운 녘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이다.”라고 표현했다.

발견 당시의 상황을 보면, 서산 마애불은 주변의 자연경관과 혼연히 어울리면서 인공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과학적 계산에 따라 위치와 방향도 결정되었다. 서산 마애불이 향하고 있는 방위는 동동남 30도(동짓날 해 뜨는 방향)로 1년의 시작을 의미하며, 일조량을 가장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이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석불이 향하고 있는 방향과 같다.

1965년에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집 모양의 보호각을 설치했는데, 오히려 보호각 때문에 습기가 차서 석불상을 손상한다는 의견에 따라 2005년에는 앞문과 벽면을, 2007년 12월에는 보호각 전체를 철거하여 관리하고 있다.

서산 마애불을 답사하고 있는 기자. 오주석 기자
서산 마애불을 답사하고 있는 기자도 '백제의 미소' 앞에서 미소 띤 모습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오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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