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
(2)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3.07 10:2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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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3호,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일본 국보 1호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쌍둥이인가?

한 사내아이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머리엔 보관을 썼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걸친 ‘반가(半跏)’ 자세로 둥근 의자에 걸터앉았다. 왼쪽 다리는 내리고 그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로,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에 놓고 손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표현한 보살상으로 소위 말하는 ‘금동반가사유상’이며 대표적인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도의 간다라나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불전 부조 중에서 종종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는 6~7세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일반적으로 미륵(미래의 부처)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이후 일본의 아스카, 하쿠호시대 반가사유상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로 보는 인식은 신라에서 특히 성행하였는데, 당시 신라에 미륵신앙이 유행하면서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로 만들어졌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이처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가사유상을 미륵보살로 단정 지어 부르는 것은 문헌적 근거가 많이 약하여 ‘반가사유상’으로 칭하는 것이 더욱 무난하다고 하겠다.

▶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 사진 오주석 기자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오주석 기자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크기가 약 1m 정도이며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걸치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다. 머리에는 삼산관 또는 연화관으로 불리는 낮은 관을 쓰고 있으며 상반신에는 옷을 전혀 걸치지 않고 단순한 목걸이만 착용했다. 다리를 감싸며 대좌를 덮은 치맛자락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가는 눈매와 양 눈썹에서 콧마루로 내려진 선의 흐름이 시원하고 날카로우며 양 입가엔 고졸한 미소가 어려 있다. 전체적으로 상 전체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였고 신체의 간결한 곡선과 입체감을 강조한 반면 다리와 대좌를 감싼 군의의 곡선은 유려하다. 이 반가사유상은 일정한 얇은 두께로 제작되어 뛰어난 주조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1912년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인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당시 돈 2,600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당시 돈 2,600원을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30억 원에 불과하지만, 당시 이왕가박물관에서 구입한 유물로는 단연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뛰어난 작품성으로 구입 당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2년 뒤에 한 골동품상으로부터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압수한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구입금액을 기준으로 하여 4,000원으로 평가, 보상하였다고 한다.

▶ 국보 78호 금동보살반가사유상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 사진 오주석 기자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 오주석 기자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높이 83cm 크기이며 청동에 도금을 하여 만든 삼국시대의 보살상이다.

대좌에 앉아 왼쪽 무릎 위에 오른발을 걸치고 오른쪽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명상에 잠긴 반가사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머리에 쓰고 있는 화려한 보관이 눈에 띈다. 보관에는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장식이 있으며 앞 옆에 달린 드리개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신체와 옷의 주름을 곡선으로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다소 과장된 손이나 발도 전체적인 형태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국시대인 6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일본 국보 1호 코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의 비교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 / 코류지 안내 책자 제공 사진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 코류지 안내 책자 제공

일본 교토 코류지(廣隆寺)에 있는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매우 흡사한 조각상이다. 상을 만든 재료가 청동이 아닌 나무(적송)라는 사실만 다를 뿐 보관형태, 얼굴표정, 앉은 자세 등 전체작인 이미지가 엇비슷하여 쌍둥이 상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코류지 반가사유상의 제작지에 대해서는 백제와 신라의 두 가지 설이 있으나 코류지를 창건한 진하승(秦何勝)이 신라계의 도래인이었다는 사실이나 ‘신라에서 온 불상을 이 절에 모셨다’고 하는 〈일본서기〉의 기록은 이 상이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코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은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적송으로 만들어졌다. 일본의 고대 목조불상은 대부분 녹나무나 비자나무로 만들었고, 중세 이후엔 노송나무를 사용했다. 적송은 우리나라의 동남쪽, 즉 옛 신라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수종이기에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전해졌음을 시사한다.

▶반가사유상은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로댕(1840~1917)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하는 반가사유상은 반가(半跏)로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와 고개를 약간 숙이고 손을 뺨에 댄 사유(思惟)의 동작이 결합해 탄생한 가장 아름다운 조각예술이다.

그러나 반가사유상이 인간적 고뇌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로, 종교적 승화를 통해 신격화가 이루어 졌다. 미륵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깊은 사색에 잠김과 동시에 도솔천으로 인도할 방법을 찾았기에 조용히 웃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유는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이며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고 크게는 해탈의 경지까지 오르게 사유를 조각품으로 완벽하게 승화시킨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며 고단한 삶에 지친 영혼을 치유하고, 나아가 인류 구원의 해법을 찾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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