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달항아리는 보름달인가 며느리인가?
(5) 달항아리는 보름달인가 며느리인가?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3.23 09:1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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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와 보물인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바로 '달항아리'
달항아리를 사랑했던 사람들...
세계도 인정한 달항아리의 가치

▶국보와 보물인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바로 달항아리

달을 닮은 항아리, 백자 달항아리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달(月)과 닮았다.

둥글고 큰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던 우리 민족은 달을 신비하고 영험한 존재로 여겼으며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빌었다. 달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큰 나머지 달을 닮은 백자를 만들어 집에 두기도 했는데, 둥글고 큰 달을 닮은 항아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백자 큰 항아리 백자대호(白磁大壺)가 바로 ‘백자 달항아리’이며 달항아리로 인정받으려면 지름과 높이가 대략 40cm 이상은 되어야 한다.

보름달을 닮은 달항아리. 문화재청 자료 사진
보름달을 닮은 달항아리. 문화재청 자료 사진

7세기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한 이 백자는 생긴 모양이 달덩이처럼 둥그렇고 원만하다고 하여 달항아리로 불린다. 몸체는 완전히 둥글지도 않고 한쪽이 일그러진 부드럽고 여유 있는 둥근 모양이다. 큰 항아리는 형태를 만들거나 구워내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물레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시켜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똑바르게 동그란 모양이 아니고, 짱구처럼 삐뚤게 생겼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도자기다.

현재 조선 시대의 달항아리는 국내에 20여 점 있으며 그중에서 7점의 달항아리가 국보(3점)와 보물(4점)로 지정되어 있다.

국보 3점은 국보 제262호(용인대학교 소장), 국보 제309호(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국보 제310호(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등이고,

1. 국보 제262호(용인대박물관) 2. 국보 제309호(리움미술관) 3. 국보 제310호(국립고궁박물관). 문화재청 자료사진
1. 국보 제262호(용인대박물관) 2. 국보 제309호(리움미술관) 3. 국보 제310호(국립고궁박물관). 문화재청 자료 사진

보물 4점은 보물 제1437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1438호(서울 종로구 소재), 보물 제1439호(서울 영등포구 소재), 보물 제1441호(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장) 등이다.

좌에서부터 보물 제1437호, 보물 제1438호, 보물 제1439호, 보물 제1441호 달항아리, 문화재청 자료 사진
좌에서부터 보물 제1437호, 보물 제1438호, 보물 제1439호, 보물 제1441호 달항아리, 문화재청 자료 사진

▶ 달항아리를 사랑했던 사람들

달항아리 하면 첫손에 꼽히는 화가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1913~1974) 화백이다. 김환기의 달항아리 예찬은 끝이 없었다. 김환기의 그림에 달항아리가 처음 등장한 건 1949년이며, 그 뒤 6·25 전쟁으로 몇 년의 공백을 거쳐 1956년부터 집중적으로 달항아리 그림을 쏟아냈다. 화풍에 변화가 생기는 1959년까지 김환기 그림의 주제는 줄곧 달항아리였다. 그는 “어쩌면 사람이 이러한 백자항아리를 만들었을꼬…… 한 아름 되는 백자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나의 예술은 모두 백자항아리에서 나왔다."고 극찬한 바 있다.

김환기 그림 '달과 항아리' .환기미술관 제공
김환기 그림 '달과 항아리'. 환기미술관 제공

달항아리 이야기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쓴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이다. 우리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뼛속까지 느끼고 상찬해 마지 않았던 분이다. 달항아리가 이만한 대접을 받게 된 건 전적으로 최순우 선생의 공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선생은 그의 수필에서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낸 백자 항아리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을 우리는 어느 나라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대견함을 느낀다."고 했다.

또 혜곡 최순우 선생은 달항아리를 ‘잘생긴 며느리’에 비유했고, 달항아리를 일러 ‘중국 항아리처럼 거만스럽다거나 일본 항아리처럼 신경질적인 데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기열(1952~) 작가는 그의 저서 <조선 예술에 미치다>에서 "달항아리는 지극히 평범하게 생겼다. 우리는 이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선이든 때깔이든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평범함'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달항아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략) 달항아리는 도공이 ‘하나의 마음’을 표현한 형상이다. 분별심 없는 세계, 집착심 없는 세계가 평범한 세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새삼 우리 자신들의 삶을 재확인하게 된다

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 선생은 백자대호를 '달항아리'라고 부르면서 잘생긴 며느리 같다고 했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 최순우 선생은 백자대호를 '달항아리'라고 부르면서 잘생긴 며느리 같다고 했다. 문화재청 자료 사진

▶ 세계가 인정한 달항아리의 가치

2019년 9월에는 높이 45.5cm의 조선 시대 달항아리가 ‘서울옥션 제152회 미술품 경매’에서 31억 원에 낙찰돼 국내 도자기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2018년 3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달항아리 그림이 2천 900만 홍콩달러(약 39억 3천만 원)에 팔려 달항아리를 소재로 다룬 그림으로는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김환기 그림 '달항아리'. 환기미술관 제공
김환기 그림 '달항아리'. 환기미술관 제공

또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에서 올림픽 행사 기간 내내 타오른 성화대 형상을 달항아리에서 착안하여 만들었으며,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기간 중 성화를 밝혔던 성화대는 달항아리를 디자인하여 제작되었다. SBS 자료화면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기간 중 성화를 밝혔던 성화대는 달항아리를 디자인하여 제작되었다. SBS 자료 화면

2017년 가을에는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며 국민타자인 이승엽 선수의 은퇴 투어 경기에서 두산베어스 구단은 이승엽의 좌우명인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인 달항아리를 선물했다.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은퇴경기에서 두산베어스 야구팀이 이승엽 선수 좌우명을 쓴 달항아리를 선물하였다. 삼성라이온스 야구단 자료사진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은퇴경기에서 두산베어스 야구팀이 이승엽 선수 좌우명을 쓴 달항아리를 선물하였다. 삼성라이온스 야구단 자료 사진

달은 만인을 비춘다. 같은 달이지만,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달을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비로운 달항아리를 보면서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절제와 담백함으로 빚어낸 오묘한 순백의 세계가 담긴 달항아리는 조선 시대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조선미의 정수이다. 또한 달항아리는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새로운 영감과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또 다른 문이다.

우리가 달을 좋아하고 달항아리를 사랑하는 이유다.

기자가 달항아리를 친견하고 있다. 오주석 기자
기자가 달항아리를 친견하고 있다. 오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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