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2.27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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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줄에 들어선 미구(‘여우’의 방언) 같은 여자가 어찌 남녀의 운우지정을 모를까?
품 안으로 들어가는 돈다발을 보는 난옥은 이제 이 인연도 끝장이다 싶었다
재산을 물려줄 바에는 차라리 글을 가르쳐 주었으면 싶었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악몽의 거사를 치르고 나자 돌석은 앉아서 소변을 보는 여자나 마찬가지인지라 과부인 난옥도 이런저런 구설에 휘말릴 일이 없다 싶어 선뜻 받아들였다. 나이도 50줄에 얼추 엇비슷하여 늘그막에 말동무로 안성맞춤이라 여겨 얼씨구나 했다. 마누라도 도망간 홀아비 신세에 자식새끼랑 밥숟갈이라도 한층 수월하게 뜨라고 품삯도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한데 앉아서 소변을 보든 말든, 오줌작대기가 있든 말든 돌석도 남자는 남자였던 모양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난옥의 방에 죽치고는 횡설수설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하지만 한때 갈보 년에 화냥년 소리를 수월찮게 듣고, 날이면 날마다 사추리(’샅‘의 방언) 안쪽이 북풍한설이 지나는 듯 찬바람이 ‘싸~’하게 돌았지만 돌석과는 한 이불을 덮을 수 없다 여기는 난옥이다.

난옥의 생각과는 달리 돌석의 마음은 콩밭에 마음을 둔 황소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일자무식의 까막눈이라도 남자 보는 눈은 있다고, 느끼는 감정은 매한가지라고 난옥은 돌석에게서 몸을 도사린다. 그렇다고 연민의 정이 영 없지는 않아 난옥도 어지간하면 응해주고 싶었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알고, 과부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망문과부(望門寡婦)도 아닐 진데 초저녁부터 수시로 마른 침을 삼켜가며 끙끙 앓은 돌석의 애타는 그 심정을 어찌 모를까? 설령 백치의 망문과부라 할지라도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겪어가며 50줄에 들어선 미구(‘여우’의 방언) 같은 여자가 어찌 남녀의 운우지정을 모를까? 초저녁부터 얼굴은 불콰하게,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안절부절 못 하는 돌석의 행동에서 이미 난옥은 짐작을 하고도 남았다.

“이~ 이 일을 어찌할거나?” 속으로 읊조리는 난옥도 칠 년 대(大) 가뭄에 단비를 내리듯,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쯤이야!, 못 이기는 척 치마끈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밤새껏 닭똥 냄새가 일도록 살을 부대껴 비벼보았자 활화산 같은 클라이맥스가 없는지라 가슴이 허전하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에 철갑을 두른 듯 몸짓으로 거부다.

난옥이 재차 치맛자락을 가슴께로 꼭꼭 잡아당겨 몸 갈무리를 할 적에 뒷산 산새가 눈치 없이 울었다. 때를 같이하여 지금껏 딴전을 피워 시간을 헤아리던 돌석이 부지불식간 난옥을 방바닥에 자빠트리더니 두루뭉수리 아랫배를 말안장에 오르듯 덩그렇게 올라서 탄다. 이미 작정을 한 듯 왼팔로 난옥의 옆구리를 거쳐 목덜미를 후려잡아 와락 껴안는다. 농사일로 단련된 우악스러운 오른손으로 난옥의 속적삼을 들쳐 불문곡직 집어넣는다. 눈치도 염치도 없이 뭉클, 난옥의 젖무덤을 와락 움켜잡는다. 깜짝 놀란 난옥이 돌석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밀치며 내뱉는 말이 서릿발처럼 차갑다.

“이런 ㅆ*, ㅈ*없는 사나 새끼가 어딜 감히! 떡 줄 년은 생각도 없는데 지놈 혼자 김칫국물부터 마신 격으로 넘겨다 볼 걸 넘봐야지 빙신새끼!” 새파랗게 눈을 부라리자

“빙신! 그래 나도 빙신이지만 너는 더 빙신이여!” 저만치로 나가떨어진 돌석이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며 ‘씩씩’거린다.

“사지 멀쩡한 내가 워째 병신이란 거여! 병신이라면 사내새끼가 지집 년 아랫도리 모양 대패로 밀어버려 미끈한 네놈이 빙신이지!”

“그라~ 너나 나나 다 병신이여!” 하는데 이유를 묻자 돌석은 난옥을 두고 씨도 못 받는 아기집이 장식품으로 병신이고, 못 배운 년이 자기 재산이 어떤 놈의 명의로 된 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퍼질러 앉았으니 병신이라는 것이다. 그 일이라면 봇도감(옛날 보‘못’물이나 저수지의 수문 관리를 책임지는 사람) 최주사(석도)에게 물어보면 여축(’깔축없다‘의 방언)이 없단다.

난옥이 돌석의 말대로 최주사로부터 전후 사정을 알아본 결과 ‘달구’란 외사촌 동생, 아~ 이놈이 글을 모르는 난옥을 두고 재산 일체를 본인의 명의로 돌려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옥이 불러서 어째서 그랬냐고? 이유를 묻자 어차피 누님(난옥)의 사후에는 자신의 것인데 굳이 이중 삼중 돈을 들여가며 번거롭게 할 것이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깨를 들썩여 잘못을 비는데 난옥은 그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차 등을 토닥이는 난옥이 그럴 수도 있다며, 농을 뒤져 지전 한 다발을 꺼내 ‘달구’앞으로 내놓으며

“우선 이 돈으로 달리 도리를 내봐!” 하는데 ‘달구’란 놈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워째 염치없이 시방 지가 이 돈을 어떻게 받게요?”

“괜찮아 넣어 두어!” 할 적에 못 이기는 척 달구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돈다발을 보는 난옥은 이제 이 인연도 끝이다 싶었다. 난옥은 그날 이후 동네에서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매사에 철두철미하다는 최주사에게 재산관리 일체를 맡기고는 같이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비록 나이는 50줄이지만 과부로 산 덕에 몸매만큼은 40줄에 못지않다며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수세(水稅)를 계산하고자 전답 문서를 살피는 중에 명의가 틀어진 것을 알았다는 최주사는 집안일이라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며 난옥이 건네는 술잔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날 밤과 다음 다음날의 새벽을 들어 최주사의 몸보신을 위해 애꿎은 씨암탉 두 마리만 부질없이 죽어 나갔다. 마지막 남은 씨암탉의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쭉쭉 빨아서 배를 채운 최주사는 일주일 만에 난옥 앞에 나타났다. 문제의 문서 꾸러미를 방바닥에 있는 대로 펼쳐놓고는

“여기 이것 봐! 이게 새마댁 이름으로 ‘난옥’이라 쓴 것이여!” 이제 틀림이 없다며 앞으로 그 누구의 손을 타면 안 된다며 장롱 깊숙이 넣어 갈무리하란다. 난옥이 내려다보니 문서에 쓰인 글자야 토시 하나도 틀림이 없겠지만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낯선 꼬마 하나가 비실비실 삽짝을 들어서는가 싶더니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몸을 배배 꼬더니 난옥을 보고는 ‘작은 어무이!’ 부른다. 듣는 난옥이 이 무슨 소리인가 당황스러워 아이의 손을 잡고는 누구냐고 묻자 아버지가 최주사라며 자신은 막내아들이란다. 그간의 전후 사정이야 알일 없었건만 뜻밖의 ‘작은 어무이’ 란 말에 더 없이 감격한 난옥은 최주사를 들어 더 적극적이다. 늙어 몸을 의지할 곳이 생겼다 싶어 간이고 쓸개고 있는 대로 빼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최주사는 난옥을 만나 자리에서 일찍이 시집간 큰딸의 가난이 걱정이라며 푸념처럼 입에 올린다. 대물림의 가난이 돈 몇 푼에 당장에 해결이 될까만은 사오일을 생각 끝에 난옥은 대서방 하는 김씨를 찾았다. 땅문서를 내놓으며 3필지만 팔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냥 흘려듣기에는 작은어머니가 할 도리가 아니라 여긴 때문이었다. 한데 땅문서를 찬찬히 살펴보던 김씨가 땅의 등기상 명의가 난옥이 아닌 용수(최주사의 막내아들)로 되어있어 이 상태로는 팔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믿을 놈 한 놈 없다고 이런 기막힌 상황을 두고 난옥은 일주일이나 앓아누웠다.

난옥이 머리께로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는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재산을 물려줄 바에는 차라리 글을 가르쳐 주었으면 싶었다. 글을 알았더라면 이토록 서러운 세월은 면했을 것이라 여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50줄에 접어들면서 난옥은 몸보신을 위해 지난겨울 염소를 세 마리나 잡았다. 하지만 살코기라고는 한 점 굽지도 삶지도 못했다. 그놈, 최주사의 감언이설에 속아 멀건 국물만 주야장천 마신 그 세월이 억울했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는데 그들 연놈의 가족들이 작당으로 몸보신에는 뼈 고운 물이 최고라며 난옥에게는 멀건 국물만 내주고 자신들은 굽고 삶고 해서 살코기로 포식을 한 모양이다. 병신 같은 년이라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물고 뜯어가며 희희낙락 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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