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2.20 2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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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내 정신머리하고는! 늙으면 깜박깜박 다 이런가 봐요!
다들 핫바지에서 방귀 새듯 소리소문없이 난옥을 떠나갔다
어디서 주워들은 약방문인지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해간다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어딘데요! 까막눈의 이년에게는 못 오를 하늘만 같아요! 그리고 마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차차로 부쩍부쩍 나아지실 거예요!” 화들짝 놀라서는

“애그머니나! 내가 뭘 안다고 아는 척은, 시방 요놈의 맹랑한 주뎅이가 대고마고(‘아무렇게나’의 방언), 터진 입이라고 나오는 데로 무어라 지껄이는지 모르겠네요! 마님! 한쪽 귀로 듣고는 한쪽 귀로는 흘러 맘에 두지 말아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혀

“그건 그렇고 이 일을 안방마님께서 아시면 집안 경사라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거예요! 그런 뜻에서 이대로 맹숭맹숭 넘어가기는 섭섭잖아요? 안방마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려 책거리 겸, 겸사겸사해서 지난 늦가을 따 놓은 늙은 호박 속일랑은 숟가락으로 썩썩 파내고, 참나무 굴피같은 껍데길랑은 물을 뿌린 숫돌에 정지(‘부엌’의 방언)칼을 싹싹 갈아 단칼에 홀랑홀랑 벗겨서는 듬성듬성 썰고, 대추, 밤, 은행(銀杏)에 서리태를 듬뿍 넣은 마구-설기, 아니면 콩고물에 노란 시루떡이라도 시루 시루 쪄서는 동네를 돌며 골고루 돌리고,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엄지를 치켜세워서 최고란다.

“아서요! 어멈은! 내가 뭐 여남은 살 먹은 꼬맹이도 아니고! 다 늦은 부엌데기에 무슨 자랑거리고! 낯가죽 간지럽게 왜 그러세요! 근데 이 시간에 어멈이 제 방에는 어쩐 일로?”

“아~참~ 내 정신머리하고는! 늙으면 깜박깜박 다 이런가 봐요! 다름이 아니라 요 아래 사는, 거~ 있잖아요! 꼭두쇠를 사부로 모셔 노랫가락은 배웠다는 덕배 아낙이 실하게 익은 돌배가 있다며 맛이나 보라고 몇 알 가져 왔기에!” 쑥스럽게 웃으며 누렇게 농익어 단내가 물씬 풍기는 배 서너 개가 담긴 쟁반을 고모 앞으로 내려놓는다.

“내 듣기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 두 내외도 먹고살기가 버거울 텐데! 소작농이라고 상전도 상전 같잖은 내게 번번이 미안하게!” 속으로 읊조리는 고모는 비로써 글을 몰라 병신 같은 삶은 살다간 난옥의 신세는 간신히 면했다 여겼다.

난옥은 김주영의 ‘겨울새’란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소설 속에서 새마댁으로 불리는 그녀는 일자무식의 까막눈이다. 처녀 시절 내내 이 사내 저 사내를 전전하다 27살에 들어서야 소장수로 닳아빠진 장수에게로 시집을 갔다. 하지만 난옥에게 신혼의 달콤한 꿈은 언감생심으로 화적떼 같은 장수 놈에게 매일같이 두들겨 맞으며 살았다. 맞는 데 이유 따위는 없어 때리면 그저 맞을 뿐이다. 어떤 날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관자놀이 부근을 어떻게 어루만졌는지 신음 한마디 못 내지르고 자지러지는 난옥이다.

난옥이 까무러져 죽은 듯 윗목으로 나동그라지건만 장수란 놈은 다짜고짜 이불속으로 끌어들여 제풀에 겨워 어이어이 깔끄막(’벼랑‘의 방언)을 기운차게 오른다. 첫 번을 지나 두 번째 고개를 넘을 즈음에 이르러 정신을 차린 난옥이 올려다보는 장수는 시커먼 구레나룻마다 이슬을 매달아 헐떡인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시집살이 3년째가 되던 해를 맞아 장수는 7살로 보이는 파리한 모습의 아이를 아들이라며 데리고 왔다. 애꾸눈인 듯 한쪽 눈으로 백태가 허옇게 끼고, 정수리로는 비 맞은 백목련 꽃잎과도 같은 마른버짐이 허옇게 도진 아이를 보는데 난옥은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 길로 난옥은 보따리를 챙겨서 집을 나서는데 마당 가에 엉거주춤하게 섰던 아이가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기어드는 목소리로

“어무이~!” 입술을 달싹달싹 애절한 눈길로 빤히 올려다본다.

“내가 어째 네 에미여!” 눈을 홉떠서 애써 아이의 눈길을 외면하는데 재차

“어무이!” 부르고는 고개를 주억거릴 때 난옥이

"내가 언제 이런 한쪽 눈깔에 백태 낀 자식을 내질렀단 말이고?" 매정하게 돌아서서 친정으로 돌아와 버린다. 친정으로 돌아온 난옥은 그래도 정을 준 남편인데 싶어 길 끄트머리를 내다보며 내내 기다렸다. 하지만 장수는 끝내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

졸지에 생과부나 마찬가지인 난옥은 밤이면 밤마다 치솟는 욕정을 잠재울 길 없어 소장수, 늙은 우체부, 뜨내기 장돌뱅이 등과 난잡하게 몸을 섞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만나서 그런가? 무당년의 딸이라 그런가? 다들 핫바지에서 방귀 새듯 소리소문없이 난옥을 떠나갔다. 그렇다고 난옥은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허전한 앞날을 위해 일 점의 혈육을 보고자 했건만 애당초 글렀다는 것을 장수를 통해 진즉에 알아버린 난옥이다. 돌덩이와 같은 아기집을 가졌건만 여자라면 사족을 못 써 이놈 저놈이 아무리 삿대질로, 살수청(-守廳:예전에, 관기나 노비가 지방 수령이나 높은 벼슬아치에게 몸을 바치는 일을 이르던 말)을 자청하여 들쑤셔 봐도 소용없다는 사실에 쉽게 포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난옥이 친정으로 돌아온 지도 어언 20여 년, 무당이었던 어머니가 어느 날 논 일곱 마지기와 밭 열 마지기를 유산으로 남기고는 굿판에서 요절해 버린다. 어머니가 죽고 나자 난옥 앞으로 남긴 유산을 두고 외사촌 동생 ‘달구’가 찾아와 문서를 닦는다며 인감도장을 비롯하여 서류 일체를 받아갔다.

서류정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난옥은 앞으로의 농사일이 여간한 걱정이 아니었다. 수소문 끝에 하초(下焦)가 부실한 돌석을 머슴 겸 일꾼으로 들였다. 그가 하초가 부실하게 된 것은 바람난 여편네에게서 매독균을 옮겨 온 때문이다. 남편 몰래 난잡한 성생활 중에 어떤 놈팡이 놈, 어떤 빌어먹을 놈으로부터 여편네를 거쳐 옮겨 온 지도 모르게 어느 날부터 돌석의 오줌 줄기가 뻣뻣하여 아리다.

지독한 매독균을 처음 접했을 때 돌석은 이웃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조약(調藥)으로 치료를 하고자 했다. 세간에 떠도는 민간요법을 좇아 매독에 좋다는 온갖 약재를 찧어 바르고, 끓이고 달여서는 단숨에 마시고는 사탕을 깨물었다. 그것도 모자라 죽자사자 걷고 또 걸었다. 한데 어디서 주워들은 약방문인지도 모르게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결국에 참고 참다가 별수 없이 의사를 찾은 돌석은 말발에 쏘인 듯 퉁퉁 부은 양물(陽物)을 겹겹이 감싼 헝겊을 조심스럽게 풀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피고름이 질척하여 냄새도 고약한 치부를 적나라하니 들어냈다. 평소 커피잔을 핑계로 심심찮게 추파를 던져오던 간호사의 뽀얀 미간으로 때아니게 못 볼 걸 본 듯 주름이 잡힐 때 돌석은 심연의 바다로 깊숙이 빠져드는 듯 눈앞이 아득했다.

수치심에 어금니를 부서지도록 깨무는 돌석은 생이 허무했다. 불알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시절에는 오줌 줄기가 실하다는 소리에는 어깨에 힘깨나 들어갔고, 한창때는 바람난 여편네들이 고아 주는 씨암탉을 뒤적거려 닭 다리깨나 뜯었는데 그에 대한 죄 닦음인가? 늘그막에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사타구니 중앙으로 나 죽었네! 맥없이 늘어진 옥경(玉莖)을 의사가 손가락도 아닌 핀셋으로 장난처럼 두서너 번에 걸쳐 번 툭툭 치는 데는 이곳이 지옥인가 싶다.

“좀 더 일찍 오질 않고, 미련하기가 황소 저리로 가라구만!, 이 지경에 이르도록 여태 뭘 했어요?” 핀셋으로 꾹꾹 찔러가며 고소를 짓는데 뼛속까지 들썩거려 곧장 까무러질 지경이다. 그와는 달리 의사란 작자는 태연하게도 달리 방도가 없다며 단칼에 잘라야 한단다. 당장에 부형[腐刑:예전에, 중국에서 행하던 오형(五刑) 가운데 하나. 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으로 다스려야 한단다. 간호사도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힐끔힐끔 고소를 짓다가는 무심한 표정으로 주사기에 가위, 칼 따위를 재깍 대령이다. 그날로 돌석은 여태껏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음경(陰莖)에 꼼짝없이 날을 세운 칼날을 들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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