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3)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1.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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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옆에 나란히 눕더니 이번에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불 아래서 헤실헤실 웃는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내를 꼽으라면 마누라 귀한 줄 모르고 손찌검하는 무식한 놈이라고
가산을 전부 처분한다고 해도 겨우 두세 마리 정도는 어떻게 장만해 보겠지만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앞날을 예측하여 짐작한다는 것이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온몸으로 매질 견디는 여인의 얼굴이 의외로 환하다. 이미 매질의 끝을 알고나 있는 듯 헤죽헤죽 웃는다. 매질 아래 새실새실 웃고 있는 마누라를 보는 남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습관처럼 매를 맞다 보니 이력이 붙는 것을 너머서 정신 줄을 놓았나 싶었다. 머리를 잘못 맞아 실성하여 온전치 못한 듯도 보였다. 실없이 웃는 마누라가 한순간 음침하게 느껴진다. 죽음을 재촉하는 저승사자만 같다. 머리채를 산발, 칙칙한 어둠 아래 무덤을 뚫고 나온 처녀 귀신만 같다. 술기운이 싹 가시는 기분이다. 정신이 들자 손목에서 힘이 빠진다. 아닌 밤중에 귀신이라도 봤을까? 무지막지 휘두르던 싸리비를 마당으로 내던진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누워버린다. 곧장 뒤를 따라 들어온 여인은 남편 옆에 나란히 눕더니 이번에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실헤실 웃는다.

그렇다고 습관처럼 행해오던 매질이 하루 이틀 만에 고쳐질 수는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남편의 매질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기세가 한풀 꺾이어 점차로 약해진다. 매질의 횟수도 하루걸러 하루. 사흘 걸러서 하루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여인은 무지막지한 매질 아래 연신 웃고 섰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방실방실 웃는다. 이불 밑에 들어서는 손가락으로 하나둘을 꼽아가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마누라의 뜻밖의 모습을 대하는 남편의 걱정이 나날이 두껍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생활고가 천근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마누라가 이유 없는 매질 아래 여차여차해서 사고라도 나면 밥은 누가 하고 빨래는 누가 하는가? 기약 없는 앞날이 암담하기 그지없다. 한창 손이 가는 아이들은 또 누가 있어 보살펴야 하는가? 그 와중에도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마누라는 무얼 계산하는지 손가락을 하나둘 꼽아가며 연신 혼잣말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저녁 내내 주워섬기는 마누라를 보는데 치미는 분노는 간곳없다. 긴 한숨에 천장이 날아가리라 내려다보는 마누라의 파리하게 야윈 어깨가 그저 눈물겹다.

시집올 때만 해도 해설피 곧잘 웃던 마누라다. 환하게 웃을 땐 달덩이같이 예쁘다며 사내마다 부러워했던 인물이다. 구수한 이야기도 곧잘 많아서

“여보~ 여보 내 말을 좀 들어봐요! 저 아래에 있잖아요! 감나무 집 여편네가 있잖아요! 전번에는 누렁이 암소가 배만 오지게 불렀지 암송아지를 낳았다면 투덜거리더니 이번에 수송아지를 낳자 암송아지를 못 낳았다면 입이 한 발이나 불거져 투덜거리잖아요! 축생인 암소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기분은 좋은가? 배추 찌짐을 푸짐하게 구워서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일일이 청해 돌리더니 저래 봐도 저 까칠한 소가 우리 집 보배여! 재산 목록 1호여 엄지를 세우잖아요! 글구 요 위 앵두나무 집 병구 어메는 얼메나 요부(妖婦)인지 신랑 앞에서는 개미 새끼도 무섭다며 벌벌 떨더니 오늘은 있잖아요! 이만하게[손 한 뼘 크기(약 20㎝)] 큰 놈의 지네가 징그럽게도 통마루 위로 구불구불 기어 다니자 식구를 해코지한다며 ‘이~ 겁대가리 없는 요놈! 요~ 독충 좀 보게나’ 고무신을 대뜸 벗더니 단매에 때려잡더니 보란 듯 맨손으로 덥석 집어 거름태미(‘거름더미’의 방언)에 훌훌 집어 던지잖아요! 참말 웃기잖아요! 그치요? 그리고 나~ 있지요! 여~ 여뽕! 나 꽃신 한 켤레 사주면 안 되나요? 뒷집 신애 어만가 신랑이 사 줬다며 요래조래 신고는 뻐기는데 눈꼴시래서 원, 그 자리에서는 ‘흥~ 그까이 것이 뭐에 이쁘다고’ 퇴박을 줬지만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이쁘기는 참말 이쁘데요! 다음 장날에는 어떻게! 그라면 올여름 재 너머 사래 긴 콩밭일랑은 내가 다 멜까 봐요!” 긴긴밤을 딱지 접듯 차곡차곡 접어가며 품에 안긴다. 일기를 쓰듯 코맹맹이 소리로 낮 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주워섬길 땐 여간 사랑스럽지가 않았다. 아이를 놓고는 부끄럽다 않고서 허옇게 부풀어 오른 젖무덤을 스스럼없이 내놓아 물린 땐 성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늘날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뒤란으로 숨은 들 피할 수 있을까? 부엌이라 도피처가 될까? 한 지붕 아래라 그런지 숨소리조차 천둥소리로 멀쩡한 봉창이 벌벌 떤다. 오가는 중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성난 늑대를 만난 듯 슬금슬금 피하기 바쁘다. 핏발 선 눈가로 독기 서린 모습이 이웃 보기에 부끄럽다. 아수라 앞 인양 벌벌 떨기만 한다. 떨어진 동전을 찾는 것도 아니고 검푸른 눈두덩이로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는 듯 땅만 굽어보며 걷는다. 지옥 나찰을 만난 듯 겁부터 집어먹는다. 그 때문인가? 어느 때부터 몸매가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얼굴에서 화사한 분위기가 사라지기 시작이다. 화사함이 사라진 위로 푸르죽죽한 광대뼈가 불거지기 시작이다.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내를 꼽으라면 마누라 귀한 줄 모르고 손찌검하는 무식한 놈이라고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든다. 맞은 기억을 그새 잊었는지 은근하게 허리에 손을 올리자 가만가만 엉덩이를 사타구니 깊숙이 밀어 넣는다. 이불 속으로 머리를 파묻어 파리한 몸매를 가슴팍으로 밀착이다. 못된 짐승을 대하는 듯 순종을 마다했다간 매타작이 두려운지 은은한 떨림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바늘 끝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 짜릿한 아픔이 전신으로 번져나간다. 어떻게 한다. 망설임도 잠시 부지불식간 앙가슴으로 손을 밀어 넣자 기다렸다는 듯 무너진다. 사리마다(팬티의 방언)를 들쳐 사타구니 깊숙이 손길이 미끄러져도 당연하다는 듯 순종이다.

세상 어떤 여인이 있어 이처럼 순종적일까? 오만방자함에 치를 떨지 않을까? 무례한 손모가지를 분지르고 싶지 않을까? 헤프게 웃음 짓는 술집 마담이 이렇듯 순종적일까? 삼패 기생(三牌 妓生:일반 평민을 상대하는 기생으로 노래와 춤, 매춘을 병행하는 기생)으로 술잔을 채워 권주가를 부르는 작부들이 이러할까? 안주 한 접시를 더 팔면 헤픈 웃음이나 한 번 더 지어줄 뿐 어림없는 소리다. 한데 마누라는 그렇지가 않다. 줄 주사(酒邪)에, 손찌검에, 빗자루로 매타작이지만 늘 순종적이다. 가끔 끼니가 떨어졌다며 어렵게 말을 꺼낼 뿐 밥상을 차리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 마누라가 매를 견디다 못해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한마디로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희멀건 손모가지가 원흉이라 흉물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날을 세운 작두에 얹고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스스 머리채는 헝클어지고 때 국물이 까맣게 흐르는 치마가 찢어져 희뿌연 허벅지살이 여실히 드러나도 부끄러움이 없다. 어디로 끌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먹는 것만 아귀가 되어 바구미처럼 밝힌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미래의 마누라가 기가 막힌다. 오던 잠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다.

미우나 고우나 내 마누라고 내 아이 엄마다.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아직은 어려서 철이 없다지만 차차 머리가 굵어져 제 몫을 한다며 어미를 찾을 때 그때는 무어라 말할까? 아비가 일삼아 때리는 통에 미쳐 날뛰다가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어졌다고 변명일까?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와중에도 마누라는 품 안에 안겨 연신 손을 꼽아가며 웃고 있다. 미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몇 대를 거스른 선조 때의 일이다. 어느 때 상(喪)을 맞아 묘를 쓸 때였다. 스님으로부터 향후 제왕이 날 명당자리로 묘터를 잡았건만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묘터를 잡은 스님이 후일 제왕의 발복(發福)을 원한다면 ‘백우(百牛)’를 제물로 장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산을 전부 처분한다 해도 겨우 한두 마리 정도는 어떻게 장만이 되겠지만 ‘백우’의 제물에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스님에게 다른 방도가 없습니까? 몇 번을 거듭해서 물어도 ‘백우’ 외에는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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