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9)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3.09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간신히 치부만 가린 듯 누더기를 걸쳐서 숨결이 가늘다
펄펄 오르는, 삶은 빨래를 맨손으로 떡 주무르듯
다 늙은 것이 주제도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요!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어느 해다. 그해 겨울 추위는 예년에 비해 별스럽게 춥고 매웠다. 섣달도 중순으로 접어든 겨울 날씨는 때를 만난 메뚜기처럼 그야말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밤새 내린 눈이 발목을 뒤덮는 것은 예사고 대지는 온통 동토(凍土)로 변해 버린 어느 날이었다.

아침 일찍 볼일 차 대문간을 나서던 영감은 뜻밖의 모습에 아연실색 놀랐다. 거적때기로 두리두리 둘러싸맨 거지 부부가 대문간을 보금자리로 곤하게 잠이 든 모습을 본 것이다. 피골이 상접한 것은 물론 간신히 치부만 가린 듯 누더기를 걸친 채 숨결이 가늘다. 체온을 나누려 그랬는지 둘은 꼭 껴안고 죽은 듯 미동이 없다. 다른 때 같으면 죽든 살든 못 본 척 내버려 두었을 영감이 그날 만은 이상했다. 아마도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

당장에 안으로 기별을 넣어 방으로 옮겼다. 미음을 쑤고 군불을 지피고 한참을 부산 떨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부부다. 그렇다고 쉬 떠나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인정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세상이 쩡쩡 얼어붙는 엄동설한에 등을 떠밀어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 해동이나 한 후 살 방도를 마련해보라는 말에 내외는 방바닥에 이마를 붙여 고맙고도 감사한 마음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린다. 그렇다고 염치없이 손님을 자처하여 방구석에 눌러앉아 꼬박꼬박 밥상을 받지는 않았다.

고향이 예천 금당실 마을이라 금당실댁이라 불러 달라는 아낙은 갈대 같은 몸매, 그 어디서 그런 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엌일은 물론 집안 안팎을 들어 구석구석 청소를 도맡는다. 첫닭이 울기도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키지도 않았건만 몸을 굴리기 시작한다. 함부로 몸을 굴려 부지런을 피우는 모습이 조선 시대 관노(官奴)는 저리로 가라다. 일각도 채 못 미쳐 살얼음 서걱거리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는 세숫대야에 걸레 빨기를 미지근한 물을 대하듯 한다. 김이 펄펄 오르는, 삶은 빨래를 맨손으로 떡 주무르듯 매만진다. 그러기를 며칠을 못가 집안이 먼지 한 톨 편안하게 앉아 쉴 참이 없다 보니 윤기로 반질거리고 햇빛이 들 참이면 반사되어 반짝인다.

금당실어른, 정 씨라고 별반 다르지가 않았다. 땔감으로 나뭇집이 집채만 한 것은 물론 가지런하게 장작을 패고 집안 곳곳을 손보는데 도편수(都邊首)가 울고 갈 지경이다. 밤낮으로 내외가 부지런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영감과 마님이 한순간에 홀딱 빠져버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처음과는 달리 내보내기가 아쉽다. 그렇다고 아무런 연고나 언질도 없는데 무작정 잡아두기도 뭣하다. 마침내 결단을 내리라는 듯 남동풍이 앞산을 넘고 내(川)를 거슬러서 불어온다. 봄을 손짓하여 동토를 녹이려 든다.

“이보시게 어떻게 이제는 해동을 지나 봄이라 떠나갈 때가 얼추 되었지 싶은데 자네들 의향은 어떠한가?”

“...!”

“내 그동안 자네들이 집안을 알뜰살뜰 돌봐준 성의를 보아 노자에 보태라고 몇 푼 넣었네!” 몇 장의 지전을 내미는데

“영감마님! 마~님” 내외가 방바닥에 이마를 붙여서는 불문곡직 어깨를 흔들흔들 흐느끼기 시작이다.

“아니 이 사람들아 길 떠날 채비는 하지 않고 어찌 울고불고 이러는가? 울지만 말고 연유를 말 해보게! 그래야만 차선책으로 방법을 찾아도 찾아볼 게 아닌가?”

“예~ 그것이” 어렵게 말을 꺼내는 부부는 지금처럼, 노비처럼, 종처럼 살면 안 되겠냐며 애원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새경(私耕:농가에서 해 동안 일을 한 대가로 머슴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은 물론 땡전 한 푼 필요 없단다. 헛간에다 잠자리를 마련하고, 아침저녁 두 끼에 점심으로 감자나 고구마 한 알 등으로 허기를 면할, 요기(療飢:적은 양의 음식으로 겨우 시장기를 면함)만으로 족하단다. 입성 또한 떨어지고 헤져서 버리는 옷을 주면 감지덕지로 바느질로 만들어 입겠단다. 단지 부부 둘 중 먼저 가는 사람을 남은 이가 사후를 책임지겠지만 홀로 남은 이의 죽음을 맞아서는 까마귀밥 신세만 면하게 해준다면 족하단다. 그것만으로 평생을 의지할 수 없냐며 머리를 조아린다.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이다. 그 모습이 보기에도 딱해

“그래도 그렇지! 어째 새경 한 푼 없이, 악덕 지주처럼!” 은근하게 한발 물러나는 영감과 마님을 보고는 기회는 이때다 싶은지
“아~ 아닙니다. 우리에게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엄격하게 따지면 두 분은 우리 내외의 생명을 건사해 주신 은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리 검은 머리의 짐승은 거두질 말라고 했다지만 다 늙은 것이 주제도 모르고 배은망덕, 은혜를 원수로 갚을 일이야 있겠습니까? 암요! 그저 향후 까마귀밥 신세만 면하게 해주신다면 머리카락을 뽑아 미투리를 삼으라면 이 자리에서 삼겠습니다” 옆으로 나란히 엎드린 부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내지르자

“예~ 예~ 이년, 마님이 손가락 끝을 까딱까딱으로 부리는 몸종으로 한평생을! 그러문 입쇼! 이깟 머리칼이 다 뭐라고 당장에 뽑지요! 미투리를 삼지요!”

“한데 자네들 내외는 뜬금없이 예서 왜 이러는가? 슬하에 자식은? 일 점 피붙이도 없는가?”

“예~ 예~” 서럽게 흐느끼는 부부는 전국이 난리 통으로 온통 몸살을 앓을 때 자식도 피붙이도 모조리 소식이 끊어지고, 후일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죄다 죽었다거나 무사하지 못하다는 풍문을 끝으로 소식이 없단다. 결국에 부부의 요구대로 집안일을 돌보는 것을 약조로 행랑채에 보금자리를 튼다. 애당초 약속이 그렇더라도 어느 시점에서 이르면 적든 많든 정산은 필수다. 다음 해의 정월 초순을 맞아 마님은 정 씨 부부를 불러 얼마간의 돈을 헤아려 새경이라 내놓았다. 쌍수로 필요 없다고 했건만 부부가 워낙에 성실하여 용돈에,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마음의 표시라며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의 약속을 들어 부부는 어림없단다. 씨알도 안 먹히게 완강하게 거절이다. 이 새경을 받는 순간 쫓겨나리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것인지 머리를 조아려 거두어 달라며 눈물로 하소연이다. 결국에 없던 일로 도로 거두고야 핼쑥한 얼굴을 희멀겋게 펴는 부부다.

이런 금당실댁에도 한 번의 위기는 있었다. 그것은 고모로 인해 비롯되었다. 시집온 이튿날부터 고모가 부엌에 들면서 알력의 시작이다. 애당초 행랑어멈은 고모를 눈 아래로 여겨 염두에 두질 않았다. 나이는 물론 부엌데기 고참(古參)으로서 작은 마님이지만 대충 머리 위에 군림하면 그만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병석을 14년간으로 천방지축이라는데 터부시로 마음을 놓았다. 이런 마음은 첫날 고모의 어설픈 솜씨를 보고는 더욱 그랬다. 일자무식이 그러면 그렇지. 아니한 마음으로 무시했다. 한데 날이 갈수록 그것이 아니었다. 숨은 솜씨가 언뜻언뜻 엿보였다. 일의 시작 머리를 찾아가는 손끝이 날로 매서워진다. 일자무식과는 달리 번득이는 지혜가 엿보인다.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가는 부엌에서 쫓겨날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위기감에 마음이 불안하다. 향후의 삶이 은근하게 두렵다. 맹하니 손을 놓고 있다가는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어버릴까 조바심이 인다. 마음속으로 우려하는 횡액이 닥치기 전에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결국에 행랑어멈은 고모를 두고 몹쓸 년으로 시시때때로 헐뜯기 시작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