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3.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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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아들을 둔 어미로, 며느리를 들인 보람을 마음껏 누리는 것 같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달아 고모를 찾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문맹인 때와 마찬가지다. 당최 글씨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간다
지난해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지난해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무지렁이에 농투성이의 한미한 집안 출신에 편모 슬하에서의 병치레라 밥상머리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못 배운 것들은 어디를 가든 안 좋은 표시가 낭중지추처럼 난다며, 마님을 만날 때마다 아녀자로서의 부덕(婦德)을 따지고 행실머리 지적질로 솜씨가 메주라며 미주알고주알 개거품을 문다. 불 조절이 시원찮아 뜸이 들기도 전에 밥을 태웠다며 억울하다고 울먹인다. 조리질이 서툴러서 쌀을 일궈도, 까불어서 일궈도 돌은 여전하여 두벌 일로 성가시단다. 본래 웬만한 생채기는 가만두면 저절로 아문다. 스스로 가피(痂皮:상처가 나거나 헐었을 때 생기는 부스럼 딱지)가 내려앉는 등 자연회복력에 의해 원상태로 돌아간다. 한데 자꾸만 손을 타고, 건드리고, 헐뜯으면 낫기는커녕 상처 부위는 커지고 골은 깊어만 간다. 그 결과 종래에는 웬만한 치료로는 불가항력으로 낫더라도 흔적이 남는다. 이는 아무리 듣기 좋은 꽃 노래라도 자주 들으면 식상(食傷)하여 귀를 닫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행랑어멈이 작정하여 고모를 두고 헐뜯어 조잘거리는 말이 어느 날부터 진실이 되어 끝을 알 수 없는 나락(奈落)으로 몰고 간다. 원래도 미움살이 도지고 도져 마님의 마음속에서 옹이로 단단히 박힌 고모다. 그 결과 고모는 마님의 귀에 쓸모없고 귀찮은 인간으로 가스라이팅, 일거에 부엌 출입을 끊는다. 고모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행랑어멈은 소리장도(笑裏藏刀), 겉으로는 안쓰러운 척, 속으로 미소지으며 자기 합리화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뺨을 맞는다면 이처럼 황당할까? 호숫가서 한가롭게 놀던 개구리가 하늘에 떨어지는 돌멩이에 맞은들 이토록 뼈 아플까? 그 바람에 고모는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손끝으로 조물조물, 양념장에 나물을 버무리던 그 시간이 한동안 꿈길처럼 눈앞에서 떠나질 않는다. 며느리로서 시부모님의 진지를 차린다는 자부심에 난생 처음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던 시간이 허망했다. 하고자 하는 의욕 때문인지 할머니의 신부수업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그 시간 만큼은 혼자 끌어안은 외로움을 오롯이 삭이는 데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언반구 이유 설명도 없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건데 고모의 친정 나들이에 행랑어멈도 한 몫 단단히 거든 셈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축계망리(逐鷄望籬),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으로 고모는 망연자실인데 행랑어멈은 승자의 여유로 환하게 웃는다. 홀가분하다는 듯 못 본 척 고소를 지으며 딴전을 피워 외면이다.

그 지독한 세월 속에서 돈과 새경 알기를 돌처럼, 뜬구름처럼 살아온 정 씨가 슬며시 돈을 챙겨 품 안으로 가져가는 모습에 마님은 분명 마을을 들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후일 행랑어멈을 불러 차근차근 물어보리라 잠시 접어두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와중에도 동네에서 어려운 이웃이 생겨나면 거짓말처럼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즈음 고모는 옛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아침상만은 시어머니의 방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껏 식구마다 제각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밥상을 받았다면 고모의 의견에 따라,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고모로부터 처음 그러한 결정을 들었을 때 시어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맹랑한 것, 나야 쌍수로 환영이지만 덜떨어진 꼬락서니에 작심삼일이라고, 며칠이나 갈려고?” 반신반의, 늙은 시어미를 욕보이려는 수작이란 생각에 뚱한 표정으로 돌아앉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그간의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이제야 아들 둔 어미로, 며느리를 들인 보람을 마음껏 누리는 것 같아 절로 입이 벙긋벙긋한다. 뒷방늙은이로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는데 저승길을 눈앞에 두고 웬 복인가 싶었다.

그런 가운데 고모는 천자문도 어느 정도 깨달아 익혔다. 이를 계기로 동네 아낙네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달아 고모를 찾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처로 나간 가족들이 보내온 편지라며, 알 수 없는 문서들을 잔뜩 들고 와서는 해석은 물론 읽어 달라며 나이 고하를 불문, 비음(鼻音:입안의 통로를 막고 코로 공기를 내보내면서 내는 소리로 일명 코맹맹이 소리)을 간간이 섞어가며 애원에 애교를 피운다. 남편을 청해 읽어 달라고 했건만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다며 입이 댓발이다. 기쁜 소식이야 숨김이 없겠지만 슬프고, 송사에 휘말리고, 병들고, 끼니를 굶어가며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연들은 좋을 게 없다고 엄벙덤벙 넘어가는 수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은 아니건만 알 것 없다며 어물쩍 넘어가는 데는 가족이란 말 뿐으로 소외감마저 느낀다며 자세하게 알려 달란다. 고모가 볼 때 남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사연도 가감없이 세세하게 알려준다. 그래야만 차후를 대비하고, 대책이라도 세우고,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동네의 아녀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대문을 무시로 들락거리자 고모의 방은 자연스럽게 동네 사랑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명색이 작은 마님이지만 실권이 없다 보니 고모가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를 엄호하려는지 동네 아낙네들은 대문을 넘어서 마당으로 들어설 때면

“마님 저희가 또 놀려 왔어요! 그간 편안하셨어요?” 한결같이 안부를 묻는다. 그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시어머니는 미닫이문을 밀어제치고는 덧문을 열어

“그래 자네들 왔는가? 어서들 오게! 그간 별고 없었고, 어~여! 가서 천천히 놀다가 때 되면 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게!” 전날과는 달리 일일이 챙겨서 답례다. 이는 전에 없던 일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행랑어멈을 시켜 다과상까지 내어주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어리둥절하기는 고모도 동네 아낙네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알고는 뜸했던 사이가 점점 각별해진다.

그런 가운데 고모는 어느 한갓진 가을날을 맞아 다시금 할머니의 유품을 마주하고 앉았다. 보물단지를 꺼내듯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꺼낸 고모가 그간 쌓인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고는 쿵덕거리는 가슴을 긴 호흡으로 진정시킨다. 그런 다음 천천히 매듭을 풀었다.

여전히 맨 위로는 할머니의 낡은 옷가지 두 벌이 가지런하고 그 아래로 문제의 종이뭉치가 수줍은 듯 일목요연하게 똬리를 틀었다. 근 이년 반 만에 대하는데 처음 보는 듯 생경하다. 꼭꼭 숨겨두었던 남모르는 비밀을 가만히 들추어보는 기분으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행여 방문 뒤에서 누군가가 엿볼까 싶어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는 고모다. 바람에 떠는 문풍지 소리에 뒤가 켕기는 기분이다. 안 되겠다는 듯 고모가 방문을 열어 주위를 휘둘러 일일이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종이뭉치를 쓰다듬는다.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천천히 펼쳐가기 시작이다.

맨 위장을 보는데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가운데 무언가를 가르쳐 설명하는 듯하다. 다시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럽게 들쳐서 밑으로 내려가는데 예나 지금이나 알아보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으로 치부하여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맨 밑 장을 대하는데 여전히 문맹인 때와 마찬가지다. 당최 글씨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 간다. 도형 같기도 하고 낙서 같기도 하다. 순간 고모는 당황했다. 글을 배울 당시를 틈틈이 기억을 떠올려 생각에 빠진 적도 있었건만 실제 마주하고 보니 실로 암담하다. 칙칙한 어둠이 짙게 깔린 길고 긴 터널을 홀로 지나는 듯 눈앞이 캄캄하다. 얼마 동안 멍한 기분으로 넋을 놓아 퍼질러 앉은 고모다. 주인의 암담한 기분을 눈치껏 알아채었을까? 침묵마저 기가 죽었다. 길게 허리를 펴는 볕뉘 속으로 먼지 알갱이마저 조심스럽게 떠다니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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