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4)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2.0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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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리 소,백우(百牛)와 흰 소, 백우(白牛)는 뜻은 달라도 발음은 같다
마누라를 부인이 아닌 한낱 분풀이 상대로 여겼을까?
이유를 떠나 고모부는 고모의 무릎 아래 당장에 항복이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지난해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백우, 사자(死者)에 대한 예(禮)를 다하고 싶건만 장삿날이 기약 없다. 죄송스럽지만 후손에 대한 제왕의 꿈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가문의 결정이다. 따라서 백우란 재물이 해결될 때까지는 당분간 미룰 수밖에 없다. 그저 제물이나 모으고 벼슬길이나 트일 정도의 묫자리라면 터부시할 수도 있겠거니와 향후 제왕이 날 자리란다. 대를 이은 가문의 영광과 집안의 번영을 위해서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눈앞으로 닥친 난국을 무슨 비책을 써서 해결하면 좋을까? 나날이 고민 중에 문득 처가 쪽으로 흰 소가 있다는 소문을 언뜻 들은 것도 같다. 그제야 ‘흰~ 소!’ 무릎을 친 선조는 그 길로 처가로 달려갔다. 소말뚝에서 흰 소를 본 선조는 사정사정 끝에 몰고 와 정성스럽게 장사를 지냈다. 그 결과 스님 예언대로 후손인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개국하고 태조가 된다. 이로써 태조 왕건이 935년 개국 이래 34대를 거친 고려는 공양왕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 행이다.

당시 스님이 말한 ‘백우’란 백 마리의 소를 두고 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흰 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을까? 좌우간 백 마리 소의 백우(百牛)와 흰 소의 백우(白牛)는 뜻은 달라도 발음은 같다. 즉 여인은 발길질이나 주먹, 손바닥 등으로 한 대 두 대를 맞는 매나 싸리비로 한꺼번에 20~30대를 맞는 매나 숫자는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번에 이삼십 대라면 일만 대는 금방이라고 생각했다. 여인이 이불 밑에서 손으로 꼽은 것은 오늘은 몇 대나 맞을까? 기억을 더듬어가며 계산 중이었다. 한데 마구잡이로 휘두른 통에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15대, 20대 세는데 절로 즐겁다. 또박또박 한 대, 두 대에서 하룻밤에 400~600대를 듬뿍듬뿍 감하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행복이 저만치로 생각만 해도 절로 즐거워서 홀로 웃음지은 것이다. 한데 남편은 매를 맞는 마누라가 죽겠다는 악다구니는 고사하고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이니 미쳤다고 넘겨짚은 것이다. 한데 그것이 가슴에서 응어리로 쌓여 옹이가 되었을까? 날이 갈수록 남편은 주막이나 홍등가(紅燈街) 등지에서 마주하는 술자리가 꺼림칙하다. 술에 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까닭없이 매를 들까 싶어서다. 마누라에게 이유없는 매질일까 겁부터 나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날이 1만 대의 매질에 딱 맞게 이르렀는지? 9천999대로 1대가 미달인지?, 아니면 1만에 1대를 넘어섰는지 귀신이나 행여 알까? 여인의 계산상으로는 불가한 날이었다. 하여간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마누라는 대문간에서 싸리비를 들고 섰다. 그 모습에 남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불 밑에서 손가락을 꼽으며 웃던 마누라 얼굴이 싸리비를 든 마누라와 겹쳐진다. 술에 취한 탓일까? 취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대문간에서 털썩 무릎을 꿇어 엎어진다. 썩은 짚단처럼 쓰러진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는 매를, 손찌검을 않겠다고 두 손 싹싹 빌어 맹세다. 마누라와 북어(北魚:말린 명태)는 3일 걸러 한 번씩 오뉴월 개 패듯 패야만 한다고 어느 미친놈이 실없이 말했던가? 실로 원망스러웠다.

행복이란 마음에서 멀어져야만 아쉬움으로 남고 후회로 점철되는가? 나아가 행복이란 깨어지기 쉬운 유리잔과도 같고, 가녀린 새싹과도 같아서 항시 조심하고 정성으로 보살펴야 하거늘 옆에 있다면 뒤통배기(‘뒤통수’의 방언)를 눈이 빠지도록 오지게 패주고 싶은 심정이다. 혈서를 쓰는 심정으로 마누라의 까칠한 손을 잡아 정성으로 쓰다듬으며 용서를 이야기한다. 제발 이불 밑에서 손가락을 꼽으며 웃지 말고 예전처럼 마주 보며 웃어달라며 하소연이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감싸고 가슴에 묻혀 흐느낀다. 미안과 용서를 입에 담아가며 주저리주저리 눈물방울이다. 그때 남편은 기왕에 깨어진 유리잔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꺾어진 새싹만은 정성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하다. 집을 팔아서라도 마누라가 꿈에도 그리는 꽃신을 사리라 오일장날을 손가락에 꼽는다. 뒤늦은 어느 날에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예쁜 꽃으로 피우리라 의지를 불태운다.

거기에 비하면 고모부는 약과였다. 고모가 고모부 올 시간에 맞추어 대문간에 나가 싸리비를 들고 있으니 고모부가 깜짝 놀랐다. 단단하고 여문 것이 애당초 고모가 만든 싸리비는 결코 아니었다. 깐충하게 간추려서 칡덩굴로 야무지게도 묶었다. 뒤편으로는 작두로 잘랐는지 어느 소녀의 단발머리처럼 깡총하다. 나무로 깎은 쐐기를 박아선지 단단하기가 흡사 차돌멩이 같다. 손에 들고 보니 가뿐한 것이 절로 마당을, 대문 앞을 쓸고 싶다. 마음속에 든 번뇌의 찌꺼기를 씻어내듯 깨끗하게 쓸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인다. 마당을 쓸 듯이 허공을 휘저어보는 고모는 아닌 게 아니라 내일 식전(食前)에는 마당을 쓸어보리라 작정이다.

한데 누가 있어 어설프게 만든 싸리비를 손보아 두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는데 부끄러운 마음이 한량없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이다. 재차 사방을 둘러 보지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윽고 고모부가 저만치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보이자 쪼르르 달려간 고모는 싸리비를 고모부 앞으로 불쑥 내밀며 퉁명스럽다.

“이제부터 때릴 량이면 이것으로 때려 주이소!” 뜻밖의 싸리비를 보는 고모부가 기가 차다. 사실 고모부가 고모에게 가한 손찌검은 손찌검이라 할 수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고모부 눈으로 들어온 고모는 여전히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이다. 불 때마다 깨물어 주고 싶다 보니 사랑이 시샘했나 보다.

“요 맹추 같은 것!” 머리에 꿀밤 두어 방, 안아본다고 어깨를 감싸는 중에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길 서너 차례! 한데 고모는 고모부의 애정어린 손길을 때린다고 오해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할머니가 고모에게 어디를 어떻게 맞았냐고 물어도 묵묵부답으로 침묵을 지킨 것도 그 때문이다. 고모가 자신을 타박하는 할머니 앞에서 친정 나들이 변명 겸 하소연으로

“어제도 맞았어!” 울먹울먹 눈물을 보일 때

“그래 그럼 어디를 어떻게 맞았어? 머리야 아니면 등떠리(등때기의 비표준어)야!” 속적삼을 들쳐가며 일일이 확인하려 들 때면 없는 흔적을 감추려 몸을 옹송그려 반항은 필연적이었다. 머리를 살짝 쥐어박는다고 혹뿔(‘혹’의 방언)이 도드라지는 것도, 어깨를 감싸 두드린다고 가을철의 붉은 단풍잎이 내려앉는 것도 아니다. 그 일로 고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마지막 친정 나들이 때 머리를 조아려 이실직고했다. 고모가 비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할 때 할머니는

“내 뱃속으로 낳은 딸년이라는 것이 멀쩡한 장모와 사위를 이간질해도 유분수지, 못 땐 년 같으니!” 이미 짐작했다는 듯 눈을 흘겼다.

고모부는 고모 무릎 아래 당장 항복이다. 앞으로 절대 손을 안 대겠다고 두 손 모아 싹싹 빈다.

“뭘 손도 안 댄다고 그래요! 그럼 청춘이 구만리 같은 부부가 벌써 각방을 써요! 따로따로 잠을 자요! 그렇게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살려면 보쌈하듯 결혼은 왜 했어요? 그렇게 무성의해서야 어떻게 어머님이 일삼아 기다리는, 당신을 쏙 빼다 밖은 아기는 언제?” 고모부를 향해 눈을 곱게 흘기는 고모는 이미 마음속으로 예상했던 바라는 듯 쑥스럽게 미소다. 하지만 고모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 길로 방안으로 들어온 고모는 고모부에게 문방사우는 아니더라도 필기도구가 필요하다며 만사를 제쳐 구해 오라고 했다. 이유는 구해 오면 말해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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