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5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1.08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영감님! 내 영감님을 모시고 묫자리를 본다고 이 산 저 산을 기웃거리는데 전날과는 달리 빤히 보이던 터가 자꾸만 안개에 휩싸인 듯 꼬리를 사립니다”

“그거야 자네도 이제 나이가 들어 총기가 떨어져서 그런가 보이!”

“그런가요? 한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 듯합니다. 비록 말 없는 땅이 건만 알고 보면 다 임자가 정해져 있지요! 살아오면서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적선을 많이 하여 덕(德)을 분에 넘치게 쌓거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바치거나,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땅이 절로 알아서 명당자리를 내어주겠지만 악업을 많이 짓거나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많이 했다면 땅이 알아서 지기를 갈무리하지요! 옛날 참수나 효수에 해당하는 대역죄인은 그 시신조차 수습을 불허한 것도 이와는 무관치 않지요! 돌아가 누울 한두 평의 땅도 아까워서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세상사 이치며 진리지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영감님의 덕적을 논할 때 명당을 고집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라 보입니다. 하여 땅이 스스로 연막을 쳐서 갈무리하는 게지요! 해서 말입니다. 영감님! 주야장천 명당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늦은 날이 하루라도 빠른 날이라고 오늘부터라도 성심으로 덕적을 쌓아보심이 어떠할런지요? 혹시 또 압니까? 뒤늦게 하늘이 그 정성을 알아 명당이 그 실체를 보일런지요!” 조언이다,

“그래~ 그럼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묻자 지관이 이르기를 불우한 이웃을 만나면 성심성의껏 베풀고 도와주란다. 그 길만이 저승 창고를 빨리 채우는 방법이란다. 창고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 양에 따라 자연히 터가 보일 거란다. 지관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영감은 그날 이후 동네를 돌며 불우한 이웃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온정을 베풀고자 노력이다. 그러던 중 그들 두 처녀를 알게 되었고 남녀의 이성 관계를 떠나 여린 소녀들이라 보다 세심하게 보살 핀다는 것이 발 없는 말이 소문으로 와전되어 중도에서 일그러져 버린 것이다. 후일 그러한 사실을 마님이 알았을 때는 늦어도 한참이나 늦어 일이 벌어지고 난 후였다. 엎질러진 물로 뒤늦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끝에 마님은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오로지 잘 살기를 성심으로 축원해온 터였다. 한데 날아든 소문은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의 암담한 소식뿐이다.

그런데 이제 또 며느리에게 몹쓸 짓을 구실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 지금껏 다잡은 마음이 절로 섬뜩해진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이마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측하여 영감도, 무당도 공이 참으라 경고 한 듯싶었다. 그런 한편으로 생각해 보는데 며느리인 고모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어 보였다. 다른 집 며느리보다 친정 나들이가 잦다는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안사돈인 할머니 앞에서 낯선 사내와 배꼽만 마주치지 않는다면 소박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하지 않았던가? 그런 마당에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란 말인가? 달리 생각해 보니 며느리의 집에서 욕심을 부려 혼담을 넣은 것도, 청혼한 것도 아니다. 일방통행 격으로 사주단자를 보내고 낚아채듯 결혼을 서두른 것도 아들로 핑계로 한 자신이었다. 한데 지금에 이르러 성에 차지 않는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 칠 생각부터 하다니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을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시어머니는 모든 것을 단념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꾸역꾸역 밥만 축내는, 식충이의 고모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영감님의 십수 년에 걸친 숙원을 한순간에 해결했다. 한량처럼 싸돌아다니기만 좋아하던 고모부의 역마살을 점차로 잠재우고 있다. 파락호(破落戶) 생활 때는 서너 달포씩이나 일자 무소식이었던 아들이 술에 취하든 아니 취하든 꼬박꼬박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일 년을 가도 어미라곤 본체만체, 남남으로 터부시하던 아들이 틈틈이 찾아와서는 얼굴을 내밀고 있다. 더 신통방통한 것은 한평생을 한량으로 살 것 같았던 아들이 나라에서 내리는 녹봉을 받는 재미로 제 앞가림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일로 슬하에 거느린 아들 하나는 잘 건사했다고, 자식 교육을 잘했다고, 낯짝 간지럽게도 장한 어머니란 칭찬까지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런저런 핑계로 고모를 내친다면 그러면, 그럼 내 아들은? 이제야 겨우 인간 구실로 마음을 다잡아가는 내 아들은? 마님이 찬찬히 현실을 돌이켜서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절대 소박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차이일까? 어느 한순간 며느리인 고모가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보이기 시작이다.

“그래 아무것도 한 것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해도 제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었구나!” 시어머니는 그길로 행랑어멈을 불러서는 고모에 대해 각별하게 신경을 써 달며 애원 조로 부탁이다.

“이보게 행랑어멈! 우리 새아가! 저기~ 저~ 저 새아가를 자네에게 부탁하네!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알뜰살뜰 보살펴 주게! 마른자리 진자리를 가려가며 불편함이 없게 미리미리 챙겨주고, 가슴 따뜻하게 부탁하네! 내가 나서고 싶지만 그러면 저 아이가! 저 아이가 어렵고 두려워하기에, 시집이라 온 이후 단정하게 말 한번 건넨 적 없고 늘 까재비(‘애꾸’의 방언) 눈으로 노려보던 내가 덮어놓고 나서면 독이 될까 싶어 그러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앞에 자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그래 내 자네라면 안심이라 저 애를 간절하게 부탁해도 미더워서 그러네! 정 뭣하면 자네가 자네 며느리로 여겨도 무방하네!” 특히 입고 먹는 것에 대해서는 값의 고하에 상관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마음을 접었다. 며느리가 결코 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썩은 배는 줄지언정 썩은 밤은 주지 않으리라! 가을볕에는 내보내도 봄볕에는 내보내지 않으리라! 다짐이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읊조리며 돌아앉아 면벽을 친구 삼는다.

“예~, 예~” 방문을 나오는 행랑어멈은 마님의 눈매에서 그동안 뜨문뜨문 보이던 매서움은 씻은 듯 사라지고 인자하고 후덕함만 보이더란다.

마님이 고모에 대해서 미운 마음을 접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모의 친정 나들이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고모의 친정 나들이는 해를 넘겨 겨울이 한창일 때에 할머니의 죽음을 맞아 거짓말처럼 끝난다. 비수로 종이를 베듯 깨끗하게 끝을 낸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희망이 사라져서일까? 그도 아니면 슬픔에 겨워서일까? 밭둑 끄트머리에서 할머니의 옷가지를 태운 다음 날로 시집으로 들어온 고모는 무슨 생각에선지 두문불출이다.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꼼짝달싹 않는다.

마님은 고모의 뜻밖의 모습에 한편으로 걱정이 없잖아 있었건만 그때 참은 것은 천행으로 여겼다. 조선 시대 때 미움 살이 깃든 며느리들을 두고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들어서 내쫓는 중에 돌아갈 친정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라 했다. 저 가엾은 아이를 그때 내쫓았더라면 안사돈의 상심은 오죽했을까? 저승길을 눈앞에 둔 가여운 노인을 두고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이라 여겼다. 차차 본인의 자리를 찾아갈 기회조차 주지 않고 얼마나 야박하다 원망했을까 싶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그때 참은 것은 조상님의 돌봄이라 여겼다.

옛날 어떤 청년이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에 찾아서는 향후 자신의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다.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지만 실상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기도 했다. 점쟁이가 청년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후

“어떻게 살인자의 모습도 보이고, 정승의 모습도 보이는 데 무슨 내력인지 모르겠습니다”

“살인자도 정승도 된다니요! 그럼 살인자가 먼저입니까? 정승이 먼저입니까?”

“글쎄요 아마도 살인자가 먼저인 것 같은데 그러면 정승 자리는 없는 게지요!”

“그래요! 그럼 살인자를 면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네요!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그 악업을 피해갈 수 있습니까? 비책이라도 있으면 좀 알려 주십시오!” 청년은 자신의 앞날에 걸린 문제인지라 머리를 조아려 간곡히 청하자 점쟁이가 하는 말이

“그야 댁이 마음먹기 나름이죠!”

“마음이야 어떻게 먹든 알려만 주십시오! 내 그럼 그 비책을 금과옥조로 여겨 기필코 정승의 반열에 오르겠소!”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