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9)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7.0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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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콩도 혓바닥을 굴려가며 기어이 찾아내었고
불 꺼진 방에서 할머니는 어둠을 벗 삼아 청승맞게 흐느끼고 있었다
부모자식지간이라 해도 먼저 저승길에 든 이가 상전이라 절을 올리고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배~탈! 배탈이라! 내 밥통이 철 밥통이다. 없이 사는 것들이 밥통이든 똥창지든 몸뚱이라도 튼튼해야지! 그게 살림밑천인데 그것마저 부실하면 인생 종치는 것이야! 글~구~ 탈이 나면 또 무슨 걱정이람! 걱정도 팔자네! 내 집에 약재가 얼만데 배 좀 아픈 걸 걱정해! 그리고 아무렴 어때! 들어간 구렁이알 같은 돈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맛난 음식들을 정낭(뒷간의 방언)에 던져 구더기 밥으로 삼을까? 아니면 거름더미에 버려 토룡(지렁이)들이 잔치를 열어 배가 터져라 포식 시킬까? 아깝고 원통해서 내 그리는 못 한다. 설사 썩었다고 해도 우야든지 먹을 거다. 암만 하나라도 버리면 안 되지”하는 할머니는 음식을 하나하나 찾아서 씹고 있었다. 원한에 가득 찬 눈은 작은 좁쌀알맹이도 피해가지 못했고, 딱딱한 콩도 혓바닥을 굴려가며 기어이 찾아내었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빨사이를 요리조리 팽글팽글 굴러서 피해 다니는 것들을 모조리 찾아 맷돌이 돌아가듯 으깨어 버리는 것이다. 자연히 식사 시간이 평소보다 두 세배 길어진다.

그런 할머니를 끈덕지게 바라다보며 밥상머리에 앉아있는 아버지다. 남들은 그것을 예(禮)라고 또 자식의 도(道)라며 치켜세웠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생활신조이기도 했다. 눈코 뜰 새 없어 고양이 발이라도 빌려오고 싶은 농번기라도 그것만은 철두철미하게 지키고 있었다. 어떤 경우라도 할머니가 수저를 놓기 전까지는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뻘쭘하게 밥상머리에 앉은 아버지를 향해서 “너는 정이 먹기 싫고 땔감이 바쁘면 젓가락을 놓던가? 나는 우야든지 먹을 거다. 가루가 되도록 콩콩 찢어서 먹고, 뽀작뽀작 씹어서 먹고, 솥에 넣어 푹푹 쪄서 먹고, 쇠죽솥 불에 던져 부지깽이로 후지적거려 구워도 먹고, 다 먹을 거다.”하고는 뚫어져라 상을 노려보는데 칼바람이 ‘싸~’하고 인다. 한 점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진념으로 철천지원수를 대하는 듯 연신 젓가락질이다.

시원찮은 어금니와 앞니로 딱딱하게 굳고, 고래 힘줄처럼 질긴 오징어 다리를, 뽀얗게 서리가 내리듯 살얼음이 ‘사르르’깃든 음식을 ‘빠작빠작’소리 내어 씹고 있었다. 외로움을 먹고, 서러움을 먹고, 삶에 지친 한을 아작아작 씹어서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평소 술이라면 손사래로 물리던 반주를 한 대접이나 상에 올려 맛있다면 홀짝거리는 것이다. 그날 수에 삭고 삭아서 초가 된 듯 식초냄새를 풍기는 막걸리가 뭐에 맛있다고 젓가락장단에 노랫가락까지 곁들여

“노새~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니란~다~ 얼~씨구나 절~씨구나! 차~차차”하고 가락을 집어가지만 심란하고 원통한 마음이 은연중 베여 하모니가 뒤죽박죽 헝클어지고 있다. 늘어지고 늘어지는 젓가락장단으로 스미는 노랫가락을 어눌하게 흥얼거리는 할머니는 아닌 게 아니라 한 서린 눈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는 것이다. 지신밟기 음식에 고수레는 했다지만 이 신(神), 저(神), 조왕신, 성주신의 운감이 없다보니 할머니가 신들 중 최고의 신이 된 입장이라 더욱 맛나단다. 그렇게 정월 대보름의 음식이 끝을 보인 날의 오밤중이었다. 봄을 손짓하는 바람은 여전히 소매 끝에서 앙칼진데 아버지가 소피를 마려워 마당에 내려섰다가 할머니의 북풍한설보다 더 차가운 울음소리를 들었다. 쏴~쏴~ 불어대는 바람결을 동무로 삼고 사위를 검은 휘장으로 둘러친 어둠을 빌어 귀신을 부르는 듯 흐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그날 밤의 구슬픈 읍(泣)의 울음소리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불 꺼진 방에서 할머니는 어둠을 벗 삼아 청승맞게 흐느끼고 있었다. 자식들을 앞세운 날, 그날 밤의 슬퍼서 울던 울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너무 기가 막히다보니 목구멍에 걸려 꺼이꺼이 새어난 울음이었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는 흐느낌이었으며, 가슴 저 밑에 쌓인 앙금을 훑어 내는 듯 실타래처럼 흐트러진 세상을 원망하고 하늘을 탓하고 팔자를 저주하는 그런 슬픔 울음이었다. 그 울음소리 속으로 고모의 끊어질 듯 가느다란 말소리도 간간히 섞여서 들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왜 울고 있는지 왜 울어야하는지 까닭을 모르는 고모는

“엄~마~ 엄마도 아파! 엄마도 나처럼 많이 아파! 가슴이 아파! 머리가 아파! 그래서 우는 거야”하는 고모의 희미한 음성에 이어

“오냐 이것아! 엄마가 아프긴 어딜 아파! 아픈 것이 아니라! 눈에 티가! 아니지 늙기도 서러워라 딸 앞에서 주책없이...! 오늘따라 먼저 간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런 거지”하고는 “어~여 자거라”하며 고모를 다독이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나와 ‘팽’하니 코를 풀고는 치마꼬리를 여미어 쥐고는 뒤란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뒤란 어느 한 구석으로부터 바람도, 별들도 곤히 잠든 밤을 빌어 할머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만이 새벽을 불러 일깨우고 있었다. 아버지도 잠을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날은 일찌감치 뜬 초승달만이 제 할 일을 다 한 듯 서산을 뒤로 날름 넘어가는 날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그런 피눈물 나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할머니는 여전히 동네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산소자리의 춤을 문제 삼아 따따부따 떠들고 있었다. 산 그리고 산소, 그때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짐작한 대로 무당이 말한 그대로 할아버지와 먼저 간 자식, 가슴에 묻은 자식들이 저승에서나마 편안히 살라고 그간 무당집을 드나들며 눈대중으로 배운 살풀이춤을 흉내한 것뿐이었다.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먼저 간 자식들이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자식지간이라 해도 먼저 저승길에 든 이가 상전이라 절을 올리고 단출하나만 격식에 맞추어 주·과·포를 진설하여 크고 작은 산소마다 강신례(降神禮)와 초헌례로 저승길을 열어가는 천도, 천도재를 흉내한 것뿐이었다. 철모르는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한 자식들이 혹여 저승 가는 길을 잃어 구천을 떠돌까 싶어서 나름대로 길을 인도한 것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 인도해 갔겠지만 어미가 된 입장에서도 무언가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헌데 어미로써 단지 그것 밖에 해줄 것이 없어 서러웠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선과 후를 가려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긴 것이다. 이미 등에 아로새긴 주홍글씨다. 할머니가 그나마 집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동네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해코지도, 위해도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때 동네 사람들 간에 마녀사냥이 거론된 적도 있었지만 함께한 세월과 그간의 정을 들었고, 인정상 차마 그럴 수 없다고 유야무야가 된 것이었다. 단지 상종을 말자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악몽 같은 정월 대보름을 지나고 달포를 넘기자 날씨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무심한 세월 속에 따뜻한 봄이 어김없이 찾아온 것이다. 봄으로 접어든 날씨는 화사하기 짝이 없었지만 집안으로 식구들 외엔 제대로 된 생명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할머니의 생각처럼 집안으로 생명이 영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축대를 내려서는데 초가의 썩은 추녀 끝으로부터 굼벵이 한 마리가 마당으로 뚝 떨어진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굼벵이가 숨을 고른 뒤 필사적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봄바람에 마음이 들뜬 성급함이 사지로 떨어지게 한 모양이었다. 제 죽을 자리인줄 모르고 내려앉은 것이다. 사지를 벗어나고자 필사의 노력으로 구불거리는 굼벵이의 처절한 몸부림을 할머니가 징그럽다고 “에그머니”하며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서는데 하늘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까마귀 한 마리가 웬 굴러들어 온 떡인가 싶은지 쏜살같이 내려앉아 냉큼 물어가 버린다. 비호같은 날쌘 동작이었다. 워낙에 창졸지간이라

“저 놈이”하고 팔을 내 지를 겨를조차 없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집안에 식구 외에도 또 다른 생명이 득실거리고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동네 사람들은 도둑고양이처럼 할머니의 집을 바람처럼 스쳐서 드나들고 있었다. 겨울철에는 그 모습들이 더욱 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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