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6.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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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소복은 어느 집 빨랫줄에서 훔쳐 입고 춤을 춘다고 여긴 것이다
몰려든 산짐승들이나 새를 위해서 아낌없이 모아 둔 것이다
내가 저년, 저 되바라진 년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 즈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사남매가 잠든 무덤가를 자주 찾았다. 무덤은 할아버지가 평소 명당이라 자랑할 만치 평평하고 넓었다. 산중에 이런 자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늑했다. 굳이 봄이 아니더라도 복숭아꽃만 지천으로 흐드러져 붉게 핀다면 아닌 게 아니라 산속의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흥선대원군이 2대 천자지지로 충청도 가야산 아래에 남연군(대원군 이하응의 부 이구)의 묘를 쓰고 고종과 순종을 발복(發福)받았다. 이에 못지않게 할아버지가 잡은 터는 당대로부터 그럴싸한 자손이 있을 거란 말이 참이라 여길 정도였다.

동네 사람들의 입에 꿀처럼 달짝지근한 아들이 이 묘 터로 인해 거북이처럼 꾸역꾸역 집에 붙어사는가 싶고, 용케도 이런 터를 잡아 암암리 집안을 지켜주는 할아버지가 더 없이 고마워 꾸역꾸역 찾은 자리였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그리고 배산임수’란 명당의 이론을 떠나 고모가 지금껏 목숨을 연명해온 것도 다 이 묘 터 때문이라 여기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산야를 뒤덮은 눈이 그 어느 곳보다 일찍 녹고, 자글자글 잦아드는 햇살이 마냥 따뜻해서 노루, 멧돼지 그리고 고라니랑 토끼가 등이 즐겨 찾을 만한 자리였다. 할머니조차 무덤가에 앉고 보니 가족이 두런두런 마주앉아 있는 것이나 진배없어 보였다. 그러다보니 즐겨 찾았고 그때마다 목욕재계를 한 후 한얀 소복으로 갈아입고 무덤가에 앉았는데 그게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사남매가 든 자리는 이제 흔적조차 희미했다. 뼛조각까지 진토가 된 듯 낮은 봉분 위로 다복솔 몇 그루가 어깨를 맞대어 동무하여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에 다복솔 안에 깃들어 쉬고 있던 토끼 두어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 토끼가 떠난 그 자리에 소복차림의 할머니가 살포시 앉았다. 그때 발아래로 펼쳐진 올망졸망한 동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게딱지처럼 어깨를 맞대 오밀조밀 정겨워 보이는 초가지붕이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런 가운데 청솔댁으로, 성주댁의 키 낮은 굴뚝에서 가끔씩 흰 연기라도 모락모락 오르면 동화속의 세상에 든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일자 자리를 털고 일어난 할머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헌데 동네 사람들도 할머니가 소복차림으로 산 중턱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아름다운 춤사위였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미 할머니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 머리가 돌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분명히 한 마리 흰나비가 나풀거리는 듯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고 있음에도 미친년이 널뛰는 형상이라고 우기고 있었다. 고정관념이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하얀 소복은 어느 집 빨랫줄에서 훔쳐 입고 춤을 춘다고 여긴 것이다. 속곳치마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결에 들썩여 허벅지가 허옇게 들어나고 적삼의 옷고름이 풀어져 뽀얀 젖가슴이 물결처럼 출렁거려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덩실덩실, 제 풀에 겨워 팽그르르 돌아간다고 여긴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 발이라도 가까이서 보고 즐기고 싶은 심정이다.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할머니의 마냥 흐트러진 춤사위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이는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아쉬움에 “에~잇! 거~참”하는 헛기침으로 쓰린 속을 달리는 것이다. 좋은 구경거리를 먼발치에 보는 안타까움을 애써 참는 것이다.

그렇다고 궁금증을 영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몰래몰래 동네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찾았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찾아 든 것이다. 그때 그들은 무얼 보았을까? 두세 명이 날짜를 달리하여 따로따로 찾은 것이다. 그들은 그 자리를 찾은 뒤 하는 말이 한 결 같아 사람이라면 그런 자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잔솔가지는 부러지고 땅은 군데군데 패여 흡사 땅 두더지 가족이 놀고, 멧돼지 가족이 잔치라도 벌린 듯 독장을 친 그런 자리 같다는 것이다. 그런 자리는 낮도깨비나 미친 사람만이 ‘덩~더~쿵’놀 때 가능하다고 했다. 과연 그들은 그런 자리를 보았을까?

아니다. 할머니는 그때 그 자리에서 가볍게 제를 올렸을 뿐이다. 깍은 과일껍데기는 숲속 한견으로 모아 버렸다. 산신께 받치는 음복은 제법 커다란 소나무 밑에 가지런하게 모아 두었다. 터가 좋아 몰려든 산짐승들이나 새를 위해서 아낌없이 모아 둔 것이다. 물론 부지런한 개미도 한 몫 거들어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 주위로 할머니의 발에 밟힌 풀들이 미쳐 고개를 쳐들지 못해 더러더러 숙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설령 그럴지라도 그저 산보를 나온 가족들이 잠시잠깐 놀다가 돌아간 듯 약간의 표식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헌데 마을 사람들은 무얼 보았는지 할머니를 들어 험담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백(白)을 보고도 흑(黑)을 본 것처럼 이구동성으로 할머니를 공격한 뜻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와 동일 시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할머니처럼 마을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눈으로 본 그대로를 숨기고 자신이 만들어 내는 소설 같은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침을 튀겨가며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 잔뜩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동네 사람들은 손가락을 삿대처럼 할머니를 향해 겨누다가는 다들 제대로 미쳤다고 했다. 고모의 끝을 알 수 없는 병수발 끝에 할머니의 실성기가 도져 종내는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사리분간을 모르는 폐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아비야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 빛도 제대로 못보고 죽은 자식들을 앞에 경사라도 난 듯 춤을 출 수 있냐는 것이다. 게다가 하얀 소복차림으로 춤을 출 수 있냐는 것이다. 제를 지냈더라도 만찬가지라는 것이다. 생각하면 딱하고 안 된 일이지만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앞으로는 찾지도, 말도 섞을 필요도 없이 아예 상종을 말아야 한다고 의견 일치를 본 모양이었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할머니는 틈이 나고 우울한 날이면 즐겨 찾았고 예의 하얀 소복차림으로 춤을 추었던 것이다. 아들로부터 꼬박꼬박 “어머니”란 말을 듣고 홀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날이면 춤사위 더욱 청승맞게 산허리에서 질펀하게 펼쳐졌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할머니가 자주 들리는 무당 집에 발걸음을 했다. 그때 무당은 쭈뼛쭈뼛 방안으로 드는 할머니를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할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자

“초겨울 치고는 꽤나 추운 날씨지요?”하고 먼저 말을 건넨다. 전에 없이 다소곳한 말투다. 왈가닥의 선머슴아를 벗어난 새색시의 고운 자태다. 이는 뜻밖으로

“저 못난 년이 또 내 집에 발걸음인가? 부정을 타도 단디 타지! 천하에 무식한 년이 또 내 집에 발걸음 질이네! 내가 저년 저 되바라진 년 때문에 제명에 못 죽지! 부정을 타 죽고 못 살지”하는 비단 찢어지는 앙칼진 목소리로 한바탕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너무 의외라 그저 빤히 쳐다보는데

“왜? 내 얼굴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거무튀튀한 검불이라도 하나 달라붙었는가?”하며 평소의 근엄한 얼굴을 풀어 빙그레 웃기까지 한다. 진정 전에 없던 일이다. 무당이란 직업이 본래부터 그래선지 위아래가 없는 말투가 전매특허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것이 “야~ 자~ 해라! 네 년이 그 모양 그 꼬락서니다 보니 그 엄마에 그 딸년이라고! 주구장창 이불만 껴안고 살지”하는 막말은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은 화려한 무당복장을 벗고 연분홍치마에 미색저고를 곱게 받쳐 입고는 말투마저 곱상한 것은 물론 자애로운 미소까지 띄우고 앉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단단히 벼루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무섭고 주눅이 들어 할머니가 할 말은 잊어 우물쭈물하는데 무당이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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