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3)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3)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8.0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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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애비를 닮아 시원찮은 놈 같으니!
집안의 대들보라며, 보석이라며 한껏 떠받칠 때는 당황스럽기가 한량없다.
여편네하고 북어는 사흘 도리로 개 패듯 패야 한다고 요즈음 좀 풀어 났더니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이웃아낙의 지적에 속이 뜨끔하여 근질거리던 입을 꾹 다문다. 속 좁은 인간이 또 무슨 트집을 잡을까 싶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멍한 김천댁을 보고 성주댁이

“아~ 뭣 하나 이 여편네야”하자 그제야 꿈을 깬 듯 김천댁이 주위를 둘러보니 아들과 또래의 꼬마들은 불쑥불쑥 손을 내밀었고 남편은 객쩍은 듯 하늘을 쳐다보며 뒷짐을 졌다.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이웃이고 식구들이라 찢은 배추 전(煎)을 크기와 상관없이 “엣~ 다. 옛~ 소!”차례차례 손에다 쥐어 준다. 그러자 지금껏 입안으로 고이는 군침만 빈 입에 꿀떡꿀떡 삼키다가 얼씨구 좋아 멋모르고 덥석 받아들고 보니 이걸 어째 머리끝이 쭈뼛할 만큼 손이 화끈하다.

자신도 모르게 “엇 뜨거워라!”하는 외마디 비명에 이손저손으로 옮겨 잡는다. 뜨거우면 뜨겁다고 말을 하던지! 다분히 원망스런 눈길이 허공을 오간다. 그렇다고 해서 손에서 놓치는 경우는 없다. 어쭙잖은 배추 적 한 쪼가리지만 목숨 줄 인양 여겨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룬다. 종내는 귀를 잡는 등 호들갑을 떤 끝에 입으로 ‘후후’불어 한입에 냉큼 물고 보니 여전히 뜨거운지라 “어~ 어!”하는 비명을 어물어물 삼켜 입안서 팽이를 굴리듯 한다. 그러기를 잠깐, 어느 정도 식었다고 여겨지자 목젖이 울퉁불퉁 잘도 삼킨다. 얼마나 뜨거운지 눈가로 찔끔한 이슬을 팔뚝으로 훔치던 아이가

“엄~마! 엄마는 안 뜨거?”하는 말에 솥뚜껑으로 부터 건네진 적을 눈대중으로 찢던 김천댁이 아들의 물음에 일별하며

“왜? 많이 뜨거워? 그~기 뭐가 뜨겁다고 그 난리니! 지 애비를 닮아 시원찮은 놈 같으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만, 입천장 벗어질라 천천히 식혀서 먹어라!”하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찢어진 배추 적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다 척척 쥐어준다.

알토란같은 객꾼과 밉상스럽지만 예쁜 객꾼을 비롯한 모두가 떡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하는 통에 정작 주인공들은 입을 보얗게 봉하는 것도 모자라 군입을 막아내기에도 손이 모자란다. 이윽고 남은 밀가루 반죽을 바가지로부터 ‘딸딸’긁어 넣은 마지막 배추전이 노릇노릇 구워진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싶어 노려보지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누구 입으로 들어 간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나면 음식 끝에 아쉬움이 남는지

“준비할 때는 시어매랑 모주꾼에 밉상스런 거시기 맛이나 보일까 싶어 집에 좀 싸갈까 했는데...! 그래도 우짜 알고 웬수덩어리는 입을 다시고 가니 그나마 맴은 편네! 헌데 골물만 치른 우린 이게 뭐여! 뚝딱뚝딱 없어지는 통에 겨우겨우 맛만 쪼게 봤네!”하는 푸념으로 때 아닌 잔치는 끝난다. 이미 끝난 잔치에도 누가 훔쳐갈 집도 아니건만 집안에 들어앉아 구들장을 지고 있는 시어머니가 마음에 걸리는지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고 나만 입을 다시고 나니 빈 입으로 집을 지키는 우리시어머니가 도시 맘에 걸리네!”하는 김천댁의 마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성주댁이

“그 구박, 그 설음을 겪고서도 시어머니가 생각나니! 내 알기로 흘린 눈물만 해도 한 동이가 훌쩍 넘겠구먼! 그 모진 시집살이에 이제는 누가 효부 아니랄까봐 그러네! 우리가 그럴 줄 알고 일찌감치 자리에 안 계시는 동네 어른들에게는 한 쟁반씩 일 빳다로 돌렸다네!”하며 안심하란다. 그 말에 눈시울로 뜨끈뜨끈한 그 무언가를 소맷자락으로 훔치는 김천댁은

“시집살이는 내가 언제 시집살이했다고 그러세요!”하는 김천댁은 시어머니가 누워 있는 방안 풍경이 그림책을 펼쳐놓은 듯 눈에 들어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 알뜰살뜰 정을 주고받고 싶지만 서로가 한 발씩 물러선 관계다. 한 발 다가들면 반사적으로 한 발을 물러나는 것이 고부관계다, 물과 기름처럼 결코 융합할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오늘도 시어머니는 배추 적을 받아 귀티만 조금 떼어 드시곤 윗목으로 밀쳐놓았을 것이다. 그것도 배춧잎이 없는 밀가루 쪽으로만 조금 떼어서 우물우물 맛만 보았을 것이다. 조금만 떼어 먹는 배추 적에 양념간장은 아예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괜히 눈물이 난다. 갓 시작한 시집살이에 서슬 퍼렇던 기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다. 이런 저런 구박으로 밥상을 타박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세월이 꿈같이 흘러 이제는 이가 부실해서, 배가 불러서, 소화가 안 된다고 손을 내저으신다. 명절을 맞아 별미라고 해봤자 묽고 물렁한 음식 외에는 제대로 못 드시는 시어머니다. 더군다나 고기반찬은 손자를 주라고, 일에 지친 새아가 너나 먹으라고 반찬 접시를 한쪽으로 물려버린다. 다 늙은이가 무슨 삶에 보탬이 된다고, 식충이처럼 식량만 축을 낸다며 먹을 수 없단다. 그렇다고 마냥 지켜 볼 수가 없어 어쩌다가 밥 위에 비린 찬을 얹어드리면 고맙다고, 고맙다고 겨우 한 술 뜨는 것으로 끝이다.

그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일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밥버러지처럼 먹는 것만 귀신같이 밝힌다고 머리를 쥐어박을 때가 그립다. 그런 시어머니가 연세가 들자 급격하게 달라졌다. 저승길을 잡기 전에 마지막으로 베푸는 정이라 생각하니 그저 눈시울이 뜨거울 따름이다. 윗목으로 밀쳐진 배추 적 위로는 자투리헝겊을 덧대어 꿰맨 알록달록한 바뿌제(보자기의 방언)덥혀 있을 것이다.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알록달록한 바뿌재가 예술적이며 멋있다고 칭찬이지만 가난한 산골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들어서 표를 내는 것만 같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그 알록달록한 바뿌재, 그도 아니면 철지난 달력쪼가리나 헌 신문나부랭이가 쟁반위로 살포시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도끼눈으로 째려보면 “요~ 맹추야 같은 것아 너는 친정에서 대체 뭘 배웠니! 어째 그 쉬운 것 하나 제대로 못해 손끝이 야무지지가 않단 말인가?”하는 구박과 지청구 앞에 흘린 눈물은 또 얼마였던가. 그런 시어머니가 일순간 변한 것이다. 입버릇처럼 “며느리는 봄볕에, 딸을 가을볕이야!”하며 며느리 구박에 머리를 쥐어짜던 시어머니가 아니었던가? 그런 시어머니가 근자에 들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어느 날부턴가 집안의 대들보라며, 보석이라며 한껏 떠받칠 때는 당황스럽기가 한량없다.

게다가 어느 날은 어느 집 잔치를 갔다가 오시는지 삽짝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가! 아가야~ 어디 있노!”하고 찾아서 부르더니 불문곡직 손목을 잡아 이끌고는 뒤란으로 돌아간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언제는 잘못해서 꾸중을 들었나! 도살장에 끌러가는 소처럼 뒷걸음질로 버터보지만 다분히 형식적이다. 뒤란으로 돌아들어 오종종한 장독대 앞에 죄수처럼 고개를 숙이는데 서러운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하다. 이제는 경을 칠 일만 남았다. 시어머니는 애당초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조차 ‘남편’이란 단어가 품은 그대로 남의 편, 즉 한 결 같이 시어머니 편이다. 으슥한 뒤란에 끌려오고 보니 그저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설령 남편이란 작자가 방안에 있다고 해도 못보고 못들은 척 속으로

“깨소금 같이 고소한 것! 고년 고 잘 됐다. 누구 말마따나 여편네하고 북어는 사흘 도리로 개 패듯 패야 한다고 요즈음 좀 풀어 났더니 희멀겋게 정신을 못 차리고...! 된장 냄새나 풀풀 풍기는 머저리 같은 년! 엄~마! 이참에 눈물이 쏙 빠지게 혼 구멍을 단디 내이소!”하며 한 술 더 떠서 손아래시누이처럼 불을 지를 것이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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