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1)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7.1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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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앞니 빠진 갈가지 맨크로, 이빨 빠진 할망구 맨크로 그기 먼교?
참새 떼가 모인 맨 치로 그만치 떠들고 나불거렸는데 안 고프면 오히려 이상하제
하지감자와 애호박, 풋고추가 노글노글하게 익어가고 있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아린 할머니의 마을을 헤아려서일까? 아침나절 햇빛으로 팽팽하던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급기야 빗방울이 추적거린다. 그러자 무언가 머리에 떠오는 영감이 있는지 “이런 날은! 이런 날은...!”하고 중얼중얼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축대 끝에 허물어지듯 앉은 할머니다. 그리고는 눈가로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모를 축축한 물기를 소매 끝으로 씻는 할머니의 눈에 대청마루가 복잡하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그 중앙으로 ‘잼~잼 곤지곤지’하며 돌을 갓 지난 애기가 채롱을 피우고 있다. 앙증맞고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취한 할머니가

“요 깨물어 주고 싶은 것”하고 갓난 애기를 끌어안아 “아르르 깍~꿍”하며 얼린다. 그 와중에 집 주인이 군입을 다시라며 삶은 감자와 삶은 옥수수를 내온다. 삶은 감자를 손이 가는대로 집어 먹다가 삶은 옥수수도 한 자루 집어 든다. 큼지막하고 토실토실 영근 옥수수를 어떻게 먹을까 생각하다 하모니카를 만들어 간다. 어쩌다가 가지런하게 이랑을 지어가던 옥수수자루에서 움푹하게 두서개의 이빨이 빠졌다. 그러자 낭패한 표정의 할머니를 두고 “에~게 앞니 빠진 갈가지 맨크로, 이빨 빠진 할망구 맨크로 그기 먼교? 나처럼 요렇게 얌전한 색시처럼 먹어야지요”하다가 무안을 잠재우듯 “꼭 청솔댁 입을 닮았다”며 가가대소 웃던 때가 할머니의 눈앞으로 펼쳐진 것이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화폭이 무주공산처럼 적적한 할머니에게 뼈저린 슬픔을 안긴다.

할머니의 상념을 깨우는 듯 어느 순간 ‘후드득’하고 빗소리가 거세지는가 싶더니 초가의 추녀 끝에서 빗방울이 두서없이 떨어진다. 들쑥날쑥 튀어나온 지푸라기 끝을 따라서 피아노 건반을 때리 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검은 휘장을 둘러친 저녁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다. 심술궂은 낮도깨비가 할머니의 태양만 야금야금 갉아 먹어 칙칙한 어둠이 온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어둠속에 오도카니 홀로 내쳐진 할머니의 지독하게 외로운 세월, 조용히 지난날을 돌아보니 미운정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리움만 한아름 남아 그때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수가 없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잡다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싶었다. 온갖 궂은 일, 성가신 일 등을 따질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정도라면 몸종이라도 좋고 노비라도 좋아 능히 웃으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다시 그런 날이 돌아올거나? 같이 웃고 같이 입을 맞추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다 감내할 수 있고, 또 그만한 행복이 세상에는 다시없다고 여긴 것이다.

목이라도 타는지 뽀얗게 빈 입에 입맛을 다시는 할머니의 눈에 재차 지나간 초여름의 어느 날이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도 지나고 모내기도 얼추 끝나고 보니 아무리 농사일이 바쁘다고 해도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그날도 오늘처럼 우중충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비치는가 싶더니 곧장 비가 내렸다. 게으른 사람이 핑계를 달아 놀기에는 안성맞춤도 그런 안성맞춤이 없는 날이었다. 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을 맞아 할머니 집으로 기별도 없이 동네아낙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었다. 빗속을 헤집느라 도롱이를 걸치고, 헌 비닐이나, 합판 쪼가리나, 누리끼리한 신문지를 머리에 이고 그도 아니면 머리 위로 손을 차양처럼 받쳐 헐레벌떡 날아든다. 어느새 봉당마루는 쾌쾌한 물비린내를 풍기는 아낙들로 자리가 비좁다. 하지만 그 정도에 발걸음을 돌릴 아낙은 아무도 없다. 어느새 봉당마루에 올라선 성주댁이 “김천댁아~ 김천댁아! 저리 저리로 엉덩이 좀 치워봐라! 나도 앉자! 얼굴은 조막만한 게 방댕이는 또 왜 이리도 큰 겨! 조금만 비켜봐라! 나도 좀 앉아보자! 언~ 김천댁아”하며 기어코 틈새를 비집어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 그렇게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 이번에는 초가의 용마루가 들썩일 정도로 찌질-한 신랑들의 흉이 등장하고 팔푼이 같은 아들을 자랑하는지 하소연하는지도 모를 수다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다.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입이 아플 지경이다. 내남없이 마냥 신이 나서 한마디라도 거들지 못하면 큰 손해라도 본다는 듯 언성을 높인다. 흡사 두더지잡기처럼 불쑥불쑥 중구난방으로 끼어든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어느 한순간 이야기가 숨을 고르느라 잠시 주춤하는 사이를 못 참아 큰골댁의 배속에서 ‘꼬르륵’하는 방정맞은 파열음이 인다.

“그러면 그렇지 이쯤에서 배가 고픈 게 정상이지! 참새 떼가 모인 맨 치로 그만치 떠들고 나불거렸는데 안 고프면 오히려 이상하제! 어때 다들 출출할 텐데 수제비라도 한 그릇?”하는 골안댁의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애당초 약속은 없었지만 그동안의 관례상 또 묵계처럼 이구동성으로 끓여 먹잔다.

할머니의 입도 그날을 오롯이 기억하여 그리운지 “그럼 그렇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누가 뭐래도 뜨끈뜨끈한 수제비가 제격이지”입을 다신다. 아마도 그때 그날이 그림을 그리듯 눈에 환한 모양이다. 어느 누구는 ‘그까짓 수제비’라 할지 모르겠지만 축대에 앉아 그날을 그리는 할머니의 입에 그날의 수제비는 세상의 별미였다. 이웃의 정이 담뿍 들어가서 그런지 설탕물보다도 또 찐득하게 꼬리를 물어 한발이나 늘어지는 토종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파트별로 임무가 나뉜다. 그 모양이 일사불란한 병정놀이 같고 잘 학습된 걸스카우트의 훈련모습 같다. 한패는 돌담을 시퍼렇게 뒤덮은 호박덩굴을 들쳐 애호박을 따다가 도랑물에 ‘뽀드득’소리가 나도록 씻어 ‘송송’채를 썬다. 덤으로 남새밭에 들려 풋고추도 한 움큼이나 딴다. 또 다른 한패는 광에 들려 하지감자 중 씨알이 잔잔한 것들로 고른다. 큰 것에 비해 손이 많이 가지만 팔기도 멋하고 씨감자에도 못 미치는 것들로 고른 것이다. 그렇게 고른 감자는 빼때기(감자 등을 많이 깎다가 보니 닳고 닳아 초승달처럼 그믐달처럼 생긴 숟가락)로 껍질을 깎아 깍두기보다는 얇게 또 납작납작하게 썬다. 또 다른 한패는 밀가루반죽 팀이다. 예나 지금이나 없이 사는 살림살이에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아끼고 아끼다보니 색깔도 누렇게 변하고 갑충이나 쌀도적붙이 따위가 진을 친 밀가루가 상위에 오른다. 하지만 누구하나 못 먹겠다고 버리자는 말이 없다. 삼복더위 중에 복달임으로 끓인 육개장 위로 허옇게 떠오른 고추벌레도 맛만 좋다고, 없어 먹는 판에 이 정도 쯤이야 별일이 아니란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손으로 만져보며 “마판 먹겠구먼! 굼벵이라도 한 마리 들어가 곰실곰실 기면 덕분에 고기 맛도 보고 힘깨나 쓸 것인데! 체는?”하고 체를 찾는다. 기어코 체가 등장하자 청솔댁이 “이리 줘 보게”하고는 벌레가 고물고물하는 밀가루를 촘촘하게 올이 고운 체에다 받쳐 살랑살랑 흔들어 내린다. 다음으로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눈대중으로 물을 가늠하고는 굵은소금으로 흩뿌리듯 뿌린다. 그렇게 소금으로 간간하게 간을 한 후 찐득하게 반죽을 만들 작정으로 조물조물한다. 너무 많이 치대면 반죽이 차져서 수제비가 딱딱하다. 따라서 적당하게 치대야 먹기에 물렁해서 좋다. 특히 이빨이 시원찮은 노인들에게는 그만 인 것이다.

“그건 내게 맡겨요”팔을 걷어붙이는 성주댁의 팔과 손에서 밀가루가 물과 함께 찐득하게 짓이겨진다. 그즈음 마당 가장자리에서 장작불을 한 움큼 입에 문 가마솥에는 두어줌 이루꾸(멸치의 방언)를 넣어 우린 물에 깍둑깍둑 썰어 넣은 하지감자와 애호박, 풋고추가 노글노글하게 익어가고 있다. 누군가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추고는 돌아가며 맛을 보는데 누구는 짜다. 누구는 싱겁다. 또 누구의 입에는 간이 딱 맞아 좋단다. 사람이 여럿이다보니 제각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이를 일거에 평정한 이는 동네에서 최고 연장인 골안댁으로

“에~ 이 뭔 입들이 다들 그 모양이야! 네가 보기엔 좀 싱겁구만! 반 숟갈만 더 넣게”하는 한마디로 구수회의처럼 요란을 떨던 입들이 조용한 휴식에 든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는 데는 골안댁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동네에서는 법과 같기 때문이다. 정글 속 소수부락의 추장과 같은 위엄이 있기 때문이다. 그즈음 성주댁은 여전히 밀가루반죽과 한판 씨름 중이다. 덜커덩덜커덩 몽니를 부리는 대청마루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어 반죽이 얼추 끝나가자 성주댁이 “에~고 힘 들어라!”며 스스로 공치사 끝에 소매 끝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을 때면 “동상아~ 치댄다고 고생 했네! 되지도 묽지도 않은 것이 말랑말랑하게 잘 치댔네”하고 치하를 하는 영천댁이 “그 담은 우리 차질 세”하고는 주위를 둘러 손짓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가마솥전으로 또래의 아낙들 두서넛이 물 찬 제비처럼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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