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4)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8.0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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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긴 어딜 가? 다 먹고 가야지! 시어머니 엄명이 잖아!”
정지칼(부엌칼)을 입에 물어 자진하라는 쪽이 훨씬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늙은 할머니를 부려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새치름한 눈초리로 힐끔 거린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가만 가만 어디보자!”하는 시어머니가 치맛자락을 들쳐 찾은 것은 꽁꽁 묶어서 싼 무명천보자기였다. 보물을 싼 듯 어떻게나 단단하게 묶었던지 한참이나 끙끙거린 끝에 간신히 풀고 보니 고만고만한 고깃덩이가 보인다. 돔배기도 있고 익은 소고기도 있다. 또 아래로 삶은 돼지고기와 굵은소금도 언뜻언뜻 보인다. 아마도 상가(喪家)에서 음복을 핑계로 훔치듯 싼 제사음식으로 보였다. 비록 제사음식일지라도 평소에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귀한 고기다. 당장 손을 뻗고 싶지만 맞잡은 손을 치마폭에 감싸서 우물쭈물 하는데 시어머니는

“애~야! 맛이 어떤지 모르겠다. 입에 싱거우면 소금에 찍어 어서 먹어보아라!”하며 손으로 소고기 한 점을 집어 건네 온다. 하지만 평소의 시어머니의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벌써부터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뒷걸음질로 비틀비틀 물러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데

“어~여 먹으라니깐 뒷걸음질은 왜? 설마 이 시에미가 독이라도 넣었을까봐 그리니!”하며 손에든 소고기를 코밑으로 들이밀며 하는 말이

“그렇지 내가 있으면 마음이 쓰여서 못 먹지! 또 긴장한 탓에 먹다가 체할라! 내 자리를 비워 줄 테니 꼭꼭 씹어서 다 먹어야 한다. 애비랑 니 새끼 따위는 생각 말고, 늦은 저녁일랑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더 더욱 신경 쓰지 말고! 하여튼 다 먹기 전에는 부엌으론 얼씬도 하지 말거라”하며 억지로 입에 넣어주고는 황급히 자리는 뜬다.

시집이라고 와서 이유가 있든 이유가 없든 내내 꾸중만 들었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가 그지없다. 서산으로 기우는 태양이 뉘엿뉘엿 검은 그림자를 끌어오는 모양새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바쁜 마음을 재촉하는데 장독 위에 올려 진 고깃덩이가 오도카니 앉아서

“가긴 어딜 가? 다 먹고 가야지! 시어머니 엄명이 잖아!”하며 발목을 잡는다. 이것이 진정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또 얼마 만에 맛보는 고기인가? 눈을 비비고 바라보는데 주린 뱃속이 어서어서 재촉이다. 어디서 고기냄새를 맡았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저만치에 쭈그려 앉아 “나도 좀”하며 화등잔만한 눈알을 떼굴떼굴 굴리고 있다. 그렇다고 냉큼 고기를 내 줄 수는 없다. 잘못하여 들키는 날엔 시어머니 등살에 뼈도 못 추릴 지경이다. 어쨌든 다 먹어야 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시어머니가 말하고 원하는 것이 곧 이 집안의 주먹다짐과 같은 법이다. 바람이 이마를 스쳐가며 마음 놓고 먹으라며 유혹이다. 어둠이 은근슬쩍 내려앉아 숨겨 준다며 빨리 먹으란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란다. 시어머니가 저녁밥을 짓는지 부엌 쪽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인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들린다. 먼데서 개가 짖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다.

그렇지 저녁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탓인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씹는데 목이 칵칵 잠겨 온다. 맛은 있지만 평양냉면의 밍밍한 육수처럼 맛이 없는 것이 진짜 맛이라고 맛을 못 느낀다. 이는 고기보다는 한 모금의 물이 더 그리운 탓일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엄명이라 꾹꾹 눌러 참으며 어금니와 송곳니로 씹고 또 씹는다. 하지만 목이 꼭꼭 메이다보니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만만치 않다. 여자란 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누가 만든 시집살이인지는 몰라도 시집살이가 원망스럽다. 고기를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먹으라는 것과 매한가지다. 한 점도 이러할 진데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 너무 기가 차다보니 울음을 잊어버려 눈물조차 매 말랐다. 문득 머릿속으로 간접살인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이대로 죽어 없어지라는 뜻을 이렇게 표현하는가 싶었다. 먹다가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적선하듯 고기를 먹다가 죽으라는 것만 같았다. 결과는 뻔하다. 식구들 몰래 훔친 고기를 꾸역꾸역 먹다가 메간지가 맥혀서 죽었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되바라진 며느리의 최후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것만 같다. 못된 것 잘 죽었다고 쾌재를 부를 것이다.

시집오기 전에는 어느 누구네 집보다 귀한 딸로 자랐지만 여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 싶다.

“아~ 내 인생은 이렇게 한을 남기고 끝나는가?”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다. 누명이라도 어쩔 수 없고 함정이라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집으로 시집을 보낸 아버지가,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서방도 있고 아들도 있는 평범한 여편네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 선지 죽으란다. 임의 정이 사무치게 그리운 수절과부도 아니고 홍살문이 내려질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기왕에 목숨을 요구한다면 고통을 줄여주는 아량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대들보에 광목천을 건다든지 정지칼(부엌칼)을 입에 물어 자진하라는 쪽이 훨씬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아니면 싸이나(청산가리)를 한 숟가락 주던가? 그마져도 내게는 호강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모든 운명은 정해 졌다. 이대로 정이 죽으라면 고통스럽게 죽던, 쉬이 죽던 어떻게든 죽으리라 작정을 하고 보니 오히려 홀가분해진 김천댁이 

“딸내미의 험악한 시집살이의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는가?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없는 마당에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돌아간들 그 누가 살갑게 반겨줄 것인가? 오라버니도 이삼일 정도야 걱정마라 예서 우리랑 같이 살면 되지! 하고 다독이겠지만 그 이상은 어림없을 것이다. 올케언니의 눈칫밥은 시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반겨줄 이 하나 없는 이 몸뚱이에 예서 죽으며 시집귀신이라도 되겠지! 꽃상여는 아니더라도 작으나마 선산에 무덤 하나쯤은 만들어 주겠지! 아들 자슥이 자라 철이 들면 그래도 제 어미 산소라고 물 한 그릇 정도는 떠 놓겠지”하는데 서러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겨우겨우 한 점을 넘기고 또 한 점을 들고 독약인 듯 여겨 추적추적 망설이고 있는데 뒤란을 급하게 돌아드는 시어머니가 언뜻 눈에 들어온다. 허둥지둥 하는 걸음새가 무언가 잊어버린 듯 다급해 보인다. 속으로 죽었나! 살았나! 확인을 하러 오는가 싶어 지켜보는데 어느 새에 눈앞에 당도한 시어머니는

“아~가 아가 새아가 내 정신머리 좀 봐라 늙으며 죽던가 해야지! 고래심줄처럼 목숨 줄은 어째 이리도 질기 드냐! 어째 딸깍 숨은 안 끊어지고...! 남들은 자는 듯 잘도 간다는데...! 주책없이 늙은 시어미가 네 목구멍을 틀어막아 아주 죽일 작정인 갑네!”하며 시어머니가 물이 든 바가지를 내주며

“저녁 걱정일라 머리에서 싹 지워서 아예 생각이랑 말고 우야든지 꼭꼭 씹어서 다 먹어야한다. 다 먹기 전에는 예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다”하고 재차 다 먹기를 강조하고는 급히 자리를 피해 버린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때 아닌 폭염으로 벌겋게 달궈진 대지로 인해 산천초목이 시드럭부드럭 고개를 숙인 날이었다. 점심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여느 때처럼 떼 국물이 자르르한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는 호미를 찾아서 들라 치는데 “애~ 새아가 너는 지금 뭣 하는 짓이고?”하며 시어머니가 묻기에 “예~ 어머니 밭에 지심을 좀”하고 말끝을 흐리자 “아서라 이 염천에 지심은 무슨 지심! 햇살이나 좀 숙져 그렁그렁해 지고나면 그 때나 마음을 내든 동!”하며 가는 발길을 돌려 세운다. 하지만 이전 시어머니의 태도로 보아 이는 그저 마음을 떠보고자 하는 말인가 싶었다. 그러하거나 말거나 귓등으로 흘려 주춤주춤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새아가 너는 내 말이 말 같지 않니! 시어미 말이 그렇게 허투로 들리느냐 말이다”하며 얼굴 가득 노기를 띠운다. 그리고 재차 하는 말이 “아무래도 오늘은 논일이든 밭일이든 도통 안 되겠다. 이렇게 더운 날을 그저 집에서 쉬는 게 상책이다. 지심 그놈이야 선선해지면 나랑 같이 잡던가 하자”하며 말리고 나선다. 정색을 하는 모양새로 보아 그저 건성으로 던지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하여튼 시어머니가 떠다 준 물로 목을 다스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야 뒤란이란 감옥서 풀려날 수가 있었다. 그토록 걱정했던 저녁밥은 시어머니 손에서 말끔히 해결 되었건만 때늦은 저녁밥에 부엌을 들락날락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남편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아들놈까지 다 늙은 할머니를 부려 먹는다고 생각했는지 새치름한 눈초리로 힐끔 거린다. 생각 같아서는 쪼매한 것이 벌써부터 어미알기를 바람 빠진 풍선쯤으로 아는 가 싶어 꿀밤이라도 한 대 옹골차게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속으로 꾹꾹 눌러 참는데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그때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김천댁을 힐끔 돌아보며 노기를 띠워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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