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6)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8.2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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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며느리에게 흉을 잡히는 게 시어미 노릇 아이가?
억지를 부려서라도 잡숫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 우리 며느리가 금이고 옥이라며 공주처럼 떠 받든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애가 뭘 안다고요?”시어머니께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다. 마음만 그럴 뿐 입 한번 뻥긋 못한다. 그건 자살 행위란 생각이 앞선다. 막 싹을 틔운 새싹을 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신이 난 사람은 시어머니 뿐이었다. 배가 부르다는 김천댁을 억지로 옆에 끌어다 앉히고는 일일이 반찬을 가려가며 먹기를 권한다. 남편과 아들을 대하기가 민망스럽다. 배가 부르기도 하거니와 쑥스러워 “어머님”하고 사정을 해도 “애~야~ 우야든지 많이 먹어야 한다. 밥 심이 곧 진짜 힘인 기라!”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다.

달포 전까지만 해도 밥상머리에 앉기 바쁘게 싱겁다. 짜다. 물에 물탄 맛이라며 사사건건 간섭에 트집을 잡아 나무라시던 시어머니가 맞나 싶다. 밥숟갈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시어머니가 반찬이 싱거우면 “늙은이들은 싱겁게 먹는 것이 좋다는 걸 어찌 알았니!”했고, 음식이 짜면 “입에 간간한 게 밥도둑이다”하며 좋은 쪽으로만 이 현령 비 현령이다. 게다가 너는 동네에서 왜 그렇게 말이 없다니! 이 시어미 흉도 보고 그래라! 나는 암-시롱도 않다. 그래야 이 시어미도 동네에서 살아 있제! 네가 그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시에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동네 사람들이 우짜 알꼬! 가끔 며느리에게 흉을 잡히는 게 시어미 노릇 아이가? 시어미란 며느리 입에서 살고 죽는 기라! 난 암-시롱도 않다. 나도 옛날에는 그렇게 살았다며 전날 여자가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아냥개처럼 군다고 불러다가 혼을 내던 때와는 정반대다. 그러고 보니 시어머니는 당신 사후를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시어머니가 보기에 술꾼에 주사가 있는 아들은 마누라 알기를 동네에서 발길에 차이는 똥개 정도로 알고, 손자란 녀석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지 어미 알기를 발톱에 낀 때 정도로 여긴다. 이래 가지고는 집안이 온전하게 보존치 못할 조짐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한 것이다. 당신께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덜컥 저승사자를 따르면 며칠을 못 가 집안은 풍비박산으로 흩어지고 식구는 있는 수대로 쪽박을 차 비럭질로 길바닥에 내쳐질 것만 같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며느리의 기를 살려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 모양이다. 집안 살림을 꾸리는데 남녀 구별이 따로 없겠지만 풍전등화처럼 위태한 집안을 건사하는 데는 아무래도 며느리가 더 적격으로 마음속에 들어앉는 모양이다.

이후로도 시어머니는 아들이고 손자고 간에 눈에 거슬린다 싶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를 일으켰다. 그냥 지나가도 될 만한 일도 손 풍로를 돌려 불씨를 일으키듯 일을 키웠다. 시어머니의 집안을 건사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였다. 그 결과 남편과 아들의 생활이 서서히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아들은 함부로 대하던 어미 앞에 할머니의 눈치를 힐끔거려 한층 고분고분 해졌다. 남편 또한 시어머니의 사내 남(男)자를 들어 모름지기 남자고 진정한 사내라면 열 사람의 입을 능히 책임질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일을 나가는 날들이 점차 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일련의 과정에서 김천댁도 몸이 먼저 알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시어머니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한 김천댁이다. 때로는 대나무처럼 모질고 때로는 수양버들의 가지처럼 유순하게 살리라 마음먹는다. 현실에 맞게 처신함은 물론 가족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강해지리라 마음을 다독인다. 비록 머리에 든 지식은 모자랄지라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게 살리라 다짐한다.

어두운 방안에서 맨 간으로 드셨을 시어머니를 위해 김천댁은 간장종지에 풋고추도 송송 썰어 넣고, 깨소금도 솔솔 뿌리고, 참기름도 한 방울 살짝 떨어뜨려 어떻게든 드시게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마음에 없는 “드세요! 좀 드십시오!”하고 세치 혓바닥으로 나불거릴게 아니라 젓가락이든 손이든 집어 입어 넣어드리는 억지를 부려서라도 잡숫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동네서 효부로 불리는 만큼 대변이든 소변이든 어머님 노후는 못난 며느리가 다 책임진다고, 많이 잡수셔야 한다고...! 그래야 며느리 된 입장에 맘이 편하다고 또 진짜 어머니 같이 여길 수 있다고...! 그런데 문제는 철딱서니 없는 아들과 웬수덩어리 같은 남편이다. 속으로

“어떻게든 배추 전에 손을 타지는 않아야 할 텐데!”하는 김천댁은 성주댁을 돌아보며

“고맙네! 고마워 난 그런 줄도 여태껏 우리끼리 만 먹은 줄 알고 혼자 속에 애만 태웠네!”하면서도 김천댁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지

“내일도 오늘처럼 ‘쫙쫙’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며 끈적끈적한 미련이 뒷덜미를 낚아 채는지 뒤를 힐끔거리다간 이내 뒤돌아서서

“가실 바심이야 대충 끝났다지만 겨울채비에 마무리 농사는 누가 매조질까?”하며 양념처럼 내 뱉는 말을 냉큼 받은 성주댁이

“그~기 무슨 걱정꺼리라고! 밤낮 주야로 껄떡거리는 웬수덩어리 거시기가 있잖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인자 이녁 말도 고분고분 잘 듣는다며...! 살살 구슬리서 남아도는 힘에 일이나 팍팍 시켜!”하고는 무엇이 우스운지 ‘하하하, 호호’포복절도다, 미쳐 못다 웃은 웃음일랑은 입 가장자리로 뚝뚝 흘리며 저녁이 늦다며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늘그막에 가살궂은 그 늙은이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냈을까? 되짚어 봐도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갓 시집온 김천댁을 정신없이 몰아 칠 땐

“저러다 도망을 가고 말거야! 야반도주를 하고 말거야! 아니야 서까래에 지게꼬리를 걸지도 몰라! 애꿎은 생 목숨 하나 잡지!”하는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천댁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겨 받아 놓은 날로 알고 있었다. 혹 불상사라도 벌어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심으로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김천댁의 시집살이, 이건 시집살이가 아니라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유태인들이 수용되었다는 아우슈비츠와 다를 바 없었다. 가스실과 담장만 없는 아우슈비츠,

무를 썰 때는 크기를 따지고, 파를 썰 때는 길이를 따진다. 부엌일마다 일일이 검사를 받아야하고, 신을 끌면 칠칠 받지 못하다고 잔소리, 그렇다고 뒤꿈치를 들어 달랑달랑 걸으면 방정맞다 꾸중, 마음대로 집 앞을 나설 수가 있나, 이웃과 말 한마디를 나눌 수 있나! 잠자리조차 해시를 한참 넘어서 들면 묘시가 되기도 전에 마른기침이다.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김천댁으로써는 여간한 고통이 아니었다. 잠이 모자란 눈은 실 핏줄이 터진 듯 늘 붉게 충혈 되었다. 모질다. 모질다고 해도 김천댁 같은 시집살이는 세상에 다시 없다고 다들 입을 모을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 그런 그 괴팍한 늙은이가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을 지난 스크루지 영감도 아니고 어느 날인가 부터 180% 달라졌다.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 우리 며느리가 금이고 옥이라며 공주처럼 떠 받든다. 게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 일랑 저승길이 눈앞에 있는 늙은이가 해야 한다며 도맡는다. 며느리는 손도 못 타게 단속이다. 이런 일은 젊고 힘 있는 사람들 몫이라 해도 소용이 없다. 김천댁이 이러다가 몸 져 눕는다며 한사코 말려도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를 아껴두었다가 무엇 하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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