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톺아보기] 고창영의 ‘등을 밀어준 사람’
[문학 톺아보기] 고창영의 ‘등을 밀어준 사람’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12.09 10:0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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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픽사베이

 

고창영의 ‘등을 밀어준 사람’

-산티아고 오르막길에서

 

그것은 손끝이었네

손가락 끝

사알짝

댄듯 만듯

 

무너지듯 주저앉아

아이처럼

서럽게 울고 싶던

숨막히는

오르막길

 

그 산을 넘은 힘은

누군가의

손끝이었네 고요히

등 뒤에서 살짝만

밀어주던

 

시집 “등을 밀어 준 사람” 이야기담. 2019. 3. 7.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유행가 가사 한 소절에 울컥해진다. 진심을 다해도 상처만 돌아오는 게 인생이런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천년 악연을 만들 수도 있다.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하니까. 좋다, 잘한다, 응원 한마디가 여기까지 오는 원동력이었다. 얼떨결에 판을 편 문학 톺아보기가 74번째다. 용기 북돋아준 고마운 얼굴들이 스친다. 숨은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게다. 이 장을 빌려 감사를 전한다. 문학사적으로 고평가되는 작품만 고집한 건 아니다. 그럴 역량도 안 되지만 최대한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선별에 신경을 썼다. 작품의 맥을 정확히 짚지 못해 무지를 범했을 수도 있다. 못내 부끄럽다는 인사 덧붙인다.

'등을 밀어준 사람’ 시의 속살이 간결하고 따스하다. 시구의 결을 따라 차근히 가다보면 보편적 인정이 감지된다. 굳이 연 구분을 한 것은 험준한 산행에서 호흡을 고르며 쉬어가듯이 등을 밀어준 사람의 고마운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시인의 의도인지 모르겠다. 등산을 해본 사람은 안다. ‘손가락 끝/사알짝/댄듯 만듯’ 밀어주거나 잡아만 주어도 얼마나 수월한지를. 비단 산행만 그럴까? ‘무너지듯 주저앉아/아이처럼/서럽게 울고 싶던’ 그런 순간이 있지 않던가. 인생살이 전반이 등산과 무엇이 다르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달변가의 백 마디가 아니라 진심 어린 어눌한 한마디다. 2020년, 코로나19의 태산을 무사히 넘는 것도 그런 정 덕분일 게다. 손가락 끝 살짝만 닿아도 온기가 나눠지는 연말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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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숙 2020-12-14 18:26:20
오랜만에 만난 문학톺아보기가 참 반갑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꿈이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멀어진 꿈이 되고 말았네요. 사노라면 이런일 저런일 겪는게 다반사이지요. 어찌 내가 바라는 꽃길만 걷게 되나요. 예기치 못한 힘든 길을 걷다보면 근육도 생기고 그래서 더 힘든길도 너끈히 걸을수 있겠지요. 기다리는 수많은 독자를 위해서라도 문학톺아보기 쉬지않고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hoho 2020-12-10 14:37:35
기자님 !
그동안 글이 없어 무슨 일인가 궁금했어요.
글을 자주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은 병원을 다녀오면서 생각이 많았어요.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남편.
뒷모습이 많은 이야기를하네요..ㅠ

40년을 함께한 부부는 거리두기란 말도
무색하게 , (늙은 바퀴벌레들처럼) 하루종일 꼭 붙어다녔습니다.
힘이 되는 아내가 되어야겠어요. ^^

김만태 2020-12-10 07:45:46
벌레먹은 사과를 도려내듯
더욱 아쉬운 연말입니다.
간간이 전해주신 글들...
그 고마움을 손끝으로 옮겨봅니다.

세월의 고비가 참 높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수레는 끄는 힘보다
미는 힘이 더 필요하지요.
서로서로 등떠밀기보다
등받이가 되는 연말연시
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무철 2020-12-10 00:36:30
대략 50일은 된 것 같은 이 코너의 공백이 너무나 컸는데
다시 글을 대하니 정말 기쁩니다.
서두의 '유행가 가사 한 소절에 울컥해진다.'는 구절은 누구나 겪어 본 일이지만
그냥 유행가의 한 소절이었다고 치부해 버리면 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김 기자님 말씀처럼 비록 어눌하더라도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손가락 끝 살짝만 닿아도 온기가 느껴지는 연말'을 맞으면서
중단 없는'문학 톺아보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조영신 2020-12-09 16:31:30
따뜻한 글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참 그러했지!!'하는 공감으로 흐뭇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