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던져도 아깝지 않은 길
나를 던져도 아깝지 않은 길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2.01.21 07:50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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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울음
고목에 피운 꽃…
사진 김채영 기자 제공
사진 김채영 기자 

 

대체 詩란 무엇인가. 자연과 인생에 대한 감흥, 사상 등을 함축적이면서 음률적으로 표현한 글이라는 것이 사전적인 의미다. 마음속에 간직된 생각이 정제된 언어의 옷을 입고 표현된 것, 인간 감정의 미적 발로가 바로 시라는 장르다. 일상적인 말과는 결이 다르다. 리듬을 갖춘 언어 형식으로 표출된 시는 사람이 이룩한 가장 응축된 언어 예술의 정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를 문학의 꽃이라 일컫는 것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이겠다.

해가 바뀌기 무섭게 인터넷신문을 뒤적이는 이들이 있다. 이유는 신춘문예 당선자 소식이 궁금해서다. 문청들의 로망, 문학판에 발을 걸친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도전장을 내밀어 봤을 게다. 도전은 자신의 문학적 위치를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22년의 신춘 축제도 이제 막을 내렸을 시점이다. 부러움이 뒤섞인 축하 인사를 받은 당선자들의 어깨가 귓바퀴에 걸려있을까. 어쩌면 축하 인사를 너무 많이 받아서 어깨가 무거울는지도 모른다. 낙선된 도전자들의 어깨는 어디쯤 늘어져있을지, 숨은 격려를 보낸다.

지방지 중앙지 할 것 없이 당선자의 얼굴과 당선작이 공개되었다. 신춘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양 면면들이 대부분 청춘들이다. 특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의 경우는 아무래도 의식이 기발하고 통통 튀는 청춘들에게 유리할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꿋꿋하고 당당히 피어올린 한 송이의 꽃이 돋보인다. 서울신문 당선작인 ‘반려울음’이다.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동무란 의미 아닌가. 울음과 짝이 된다는 시제부터 예사롭지 않다. 올해 신춘문예는 이선락(64 경주) 씨만 빼고 모두 여성이다. 유일한 남성, 최고령자라는 수식어의 주인공 이선락 당선자를 만나보았다.

 

사진 이선락 시인 제공
사진 이선락 시인 제공

 

▣ 시인님, 축하드립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기쁩니다. 나름 덤덤해져야지, 생각했으면서도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을 땐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였죠. 내가 해왔던 일들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죠. 나이 64세 늦깎이,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일입니다.

 

▣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어릴 적(중학생 시절)부터 막연히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늘 생각은 있었지만, 글을 쓴다는 건 만만찮은 일이었죠. 어느 날 귀촌을 했고, 토함산을 오르다 기슭에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을 방문했었죠. 어떤 불길 같은 게 확 옮겨 붙는 느낌이었어요. 곧바로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학장 손진은)에 등록하고 수강하면서부터 성취욕이 생겨났다고 할까요.

 

▣ 시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시인이 된다는 것,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즐겁게 읽고 쓴 게 첫 과정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냥 시집을 많이 읽은 것이 가장 큰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많이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시, 외국 번역 시 할 것 없이 읽고 또 읽었어요. 자연히 문예사조도 접하게 되었고, 우리 시를 관통해 왔어요. 요즘도 될수록 많이 읽으려고 노력중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다보면 여러 가지 영감이 떠오를 때가 많아서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되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그런 일들이 과정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어설픈가요.

 

▣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세상 앞에, 제가 쓴 글 앞에 진솔해지는 게 글 쓰는 사람의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말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만.

 

▣ 시를 쓰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을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특별히 행복했던 일이라기 보단 저는 글을 쓰면서 항상 행복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었던 일에 온 힘을 쏟아 붓는 것만큼 보람되고 재미있는 게 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남의 시를 읽을 때도 즐거웠지만, 제가 글을 쓸 때 더 즐겁고 행복했어요. 무언가를 쓸 때면 세상 다 잊고 나만의 세상, 나만의 공간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도 행복해요.

 

▣ 시를 쓰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시를 쓰면서 어렵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거나 읽히지 않는 시를 읽을 때도 눈을 감고 시인의 세상에 몰입해가면 저절로 다른 세상 구경을 하듯 즐거워지곤 하죠. 저는 다른 시인의 시를 읽을 때 그 시를 해독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냥 느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운 건 어려운대로 넘어가고, 좋은 느낌이 드는 것은 몇 번이고 다시 읽곤 합니다.

 

▣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위에서 다 말씀드렸습니다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 저는 종일 시를 생각하며 걷고, 일하고, 놉니다. 놀면서도 무언가가 떠오르면 아무데나 기록합니다. 시작노트 같은 건 없어요. 읽던 책의 여백이나 이면지, 휴지 등 아무데나 기록해두었다가 눈에 띌 때마다 생각해보고 다시 쓰고, 합니다. 기억력이 나쁜 제겐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 신춘문예 당선자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신출내기인 제가 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선배 문인들, 기타 여러분께 많은 편달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굳이 누군가가 청한다면, 많이 써서 퇴고를 열심히 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인이라고 누군가 불러주니, 계획이란 게 시 쓰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세상을 이해하는 깊이와 폭을 더 확장시켜 보겠습니다. 공감이 가는 글을 많이 써보고 싶습니다.

 

노년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 진작 알았더라면 다르게 살았을까. 남들은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 해도 나는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호기롭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 늙음을 부인하고 싶지만 시나브로 쇠약해지는 몸이 현재의 나이를 절감케 하니 어쩌랴. 자신감은 사라지고 젊은 날의 사기충천했던 혈기가 식은 우거짓국처럼 되었다. 그래도 한탄하지 말자.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보자. 나를 던져도 아깝지 않은 길을 찾자. 돌아보면 가지 않은 길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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