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당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12.26 19:41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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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갈대
수화 하는 나무

 

당신은 무엇으로 사는가

 

Daum에서 문학cafe를 운영한 게 20년이다. 회원들이 올린 자작시에 댓글로 격려하고 있다. 칠십대의 회원이 시집을 발간하셨다며 주소를 물으셨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계절마다 갈대』라는 귀한 시집이 6권이나 왔다. 하나는 내 이름의 사인과 온누리상품권 3장이 동봉돼 있었다. 책값을 지불해야할 판에 상품권이라니,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전화를 걸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받은 상금으로 출판했다며 부담 갖지 말고 주변인과 나누라는 답이 돌아왔다. 온라인상에서의 지인일 뿐 엄밀히 말해 생면부지의 관계가 아닌가.

시집 끝부분을 펼쳐보고서야 시인의 속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동안 댓글로 응원했던 소소한 내 마음들이 실려 있었다. 댓글에 대한 대가라 여기면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일 테고 그냥 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솔직히 그보다 더한 응원도 가치 절하되거나 고맙단 인사가 휘발성이기 다반사였는데 시린 가슴이 훈훈해졌다. 작은 관심도 크게 해석하고 깊게 감사하며 사는 분 같았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를 반문하게 만들었다. 아마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뜨거운 심장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었다. 이런 분과 인연됨이 소중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기분 좋은 충격이랄까.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강의를 함께 들었던 문우께서 시집을 내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반가우면서도 적잖게 놀라웠다. 그때를 회상하자면 그 할아버지는 좌측 창가 안쪽에서 나는 우측 창가 안쪽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분 옆자리엔 늘 아가씨 두 명이 앉았다. 빈자리가 있어도 다른 데 가지 않는 게 조금 의아스러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가씨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보청기도 무용한 고도난청의 장애를 앓는 분이고 자기들은 자원 봉사자라는 것이 아닌가. 궁금증을 해소하고 안타까움을 산 격이 됐다.

노트북을 펴놓고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자판으로 두드리면 할아버지는 모니터 화면을 읽으면서 강사의 설명을 듣는 방식이었다. 눈으로 듣는 연습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셨을까? 노하우를 터득하신 듯 모범생의 자세여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KT&G 복지재단의 문학상을 받아서 시집 『수화 하는 나무』를 펴내셨으니 결코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이분이 낸 시집 한 권의 의미는 여타의 시집과 견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고난을 극복한 인내의 상징이자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이다. 과학이 포기한 곳에 신의 손길이 내린다는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

 

사람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과 같은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위의 두 사례는 우리가 거울로 삼아서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질문에 오늘 나는 이렇게 화답하련다. 인간은 정으로 살고 희망으로 산다고. 혹자는 진부하다 하겠으나 살아가는 동력일 게다. 부귀영화가 영원할 것 같지만 식혜 그릇에 떠있는 밥알에 불과하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자기 운명의 한계에 굴복하여 내일을 내다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실패를 스스로 초래하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까.

물론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잘난 사람에게 후하고 못난 사람에게 야박한 면이 있다. 그래서 못난이의 삶은 언제나 팍팍하다. 꿈은 사치가 되고 절망에 저당 잡힌 신세가 된다. 설령 그렇더라도 세상의 그늘에 숨어 조용히 잊히기를 바라면서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지 말아야겠다. 빗방울이 아무리 거세도 뼛속까지 적시진 못한다. 햇빛 속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역경은 내 칼을 가는 돌이라 하지 않던가. 희망과 절망의 거리는 손바닥 뒤집기만큼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잃어버린 꿈들이 머무는 그곳에 따뜻한 정과 희망이 별처럼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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