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반 고흐에게’
이 별에 올 줄 몰랐지
엄마 뱃속에서 이별하고 나와
수많은 이별을 보고 들어
수두룩하게 이별 연습을 한 줄 알았어
이 별에서 이별은 늘 두렵고 서툴러
몇 백 광년 떨어져 아득히 먼 줄 알았지
우리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저 별로
별을 세며 가는 중이야
저 별에서는 다들 한식구가 되지
오라 부르지 않아도
우리는 혼자서
타박타박 저 별에 가야 해
이 별은 그렇게 지나가는 거야
시집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 순간들』 문학의전당. 2019. 01. 10.
그림을 잘 모르지만 명화名畫 앞에 서면 좋다. 찌든 영혼에 고급 영양제를 주입하는 것 같다. 책꽂이에 꽂힌 십 수 권의 도록圖錄은 짬짬이 전람회를 찾아다닌 증거물이다. 예술가치고 특별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으리라. 네덜란드 출신 빈센트 반 고흐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공부를 하다가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남긴 명작들보다 극적인 인생스토리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하면 웃을지 모르나 사실이 그렇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만든 책 ‘영혼의 편지’ 1, 2권을 진즉에 읽었다. 3년 전 암스테르담에 발을 디뎠을 때엔 얼마나 설렜던가. 살아서는 그림 한 점 팔지 못해 동생 도움을 받는 극빈의 삶이었던 고흐, 역설적이게도 사후에 가치가 빛나고 있다.
시제를 왜 ‘반 고흐에게’라고 했을까? ㅇㅇ에게 식의 작법은 편지글 형식이다. 선뜻 고흐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아마 시인은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썼으리란 추측을 해본다. 별을 좋아해서 별을 그리다가 별이 된 화가가 바로 고흐라는 생각에 미치자 이내 수긍이 된다. 수신자의 자세로 차분히 읽어본다. 시어 '이 별', ‘저 별’은 무거운 일상어인 이승과 저승을 대신하면서 낯선 의미로 확장해나간다. ‘이 별의 이별은 늘 두렵고 서툴’다. ‘몇 백 광년 떨어져 아득히 먼 줄 알았지’만 잠깐인 게 인생 아닌가. '부르지 않아도' 가야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척 우린 영원불멸을 꿈꾸며 산다. 저 별까지 민달팽이의 보폭으로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