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의 ‘어머니의 고무신’
이화인의 ‘어머니의 고무신’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9.23 10:0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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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양재완 (고산1동) 제공
사진 양재완 (고산1동) 제공

 

이화인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를 묻어드리고 돌아와

마루 한쪽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무신을 바라본다

 

하얗던 몸이

닳고 닳아서 잿빛이다

 

한 생애를 이끌고 왔구나

이때껏 내 대신 모시느라

힘들었을 게다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

 

두 손으로 받쳐 드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어머니 눈물 가득하다

 

시집 『묵언默言 한 수저』 문화발전소. 2016. 2. 20.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조상 묘를 찾아 벌초하는 일마저 여의치 않다. 부득이하게 대행업체에 맡긴다고들 하는데 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일찍이 하늘나라에 국적을 두신 부모님, 1년에 한 번 찾아뵙고 우거진 잡풀이나 베어내는 일을 효도라 여기며 도리를 다하는 양 면죄부를 준다. 유택에 엎드려 조용히 불러보지만 무용한 일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바쁘단 핑계 뒤에 숨어서 잊은 듯이 살다가도 부지불식간에 애틋해진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은혜, 그 하나만도 영원히 탕감 받지 못할 부채여서 그리움이라는 천형을 받으며 살아간다. 자식에게 양친의 생존 여부는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된다. 돈도 명예도 별반 욕심이 없으나 부모복은 부럽다.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 장례를 갓 치른 체험과 진술로 이루어진 시다. 슬픔이 미처 삭지 않아서 곡비처럼 울음을 보태야하는 어조로 읽힌다. '어머니를 묻어드리고 돌아와/마루 한쪽 가지런히 놓여있는/고무신을 바라'보는 상황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여 가슴이 철렁한다. 2연으로 내려갈 엄두를 못 내게 만든다. '하얗던 몸이/닳고 닳아서 잿빛' 무생물인 고무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다가 '고맙다/참으로 고맙다' 인사말로 인격화를 시킨다. 시란 것이 처절한 내부에서 발아할 때 독자의 감성을 흔들기 마련이다. 이 시가 화려한 기교나 수사법이 없어도 충분히 빛나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겠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어머니 눈물 가득'한 아! 속절없는 고무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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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섭 2020-10-05 09:18:10
추석 벌초 끝내고 엄마 생각날 때 읽었습니다.
고생만 하고 가신 엄마.
그 엄마.

류영길 2020-09-23 21:15:30
잘 읽었습니다 댓글까지.

여기에 모인 모든 분들
같은 마음이라 좋습니다

또 이런 시 앞에
어찌할 수 없는 기자님의 그리움병
시보다 해설에 더 가슴이 미어집니다

권정숙 2020-09-23 19:21:28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더군다나 어머니를 바로 여의고 나서 그 심정이 어땠을런지 짧은 시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네요. 어찌 할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로 한번 울컥하고 김기자님의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해설에 또한번 아릿한 아픔에 녹아듭니다. 좋은 시 발굴해서 멋진 해설로 두번의 감동을 주신 김기자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김만태 2020-09-23 18:27:00
신발장이라는 가구는 신식물건이지요.
토방에 고무신 하나면 사계절을 나던 시절이
있었지요.
낡거나 찢어지면 때워서 신기도 했구요.
마루밑에 헌고무신 엿 바꿔먹고
엄마한테 덴통 혼날일이,
또 왔으면 좋겠습니다. 꿈에라도...

무철 2020-09-23 15:08:16
추석을 앞두고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글을 봅니다.
이미 오래전에 멀리 가신 부모님.
그래서 그리움도 자꾸만 엷어지는데
'어머니의 고무신'을 읽으면서 새삼 옛 생각에 한참 젖어 봅니다.

'시가 화려한 기교나 수사법이 없어도 충분히 빛나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겠다.'

오늘도 가슴에 와 닿는 시를 읽고, 함께 공부도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