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라라의 '분산'
최라라의 '분산'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7.01 1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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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픽사베이

 

최라라의 ‘분산’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정교하게 해체되었다
두 손은 어제 저녁의 편의점에서 오지 않았고
오른발은 의자 밑으로 떨어져 굴러다닌다
지금 왼발을 찾는 건 무리다
내 입은 꿈속의 바이칼호수를 둥둥 떠다니는 중이고
좌뇌는 꼭 타보고 싶었던 쇄빙선에 드디어 올라
남극 어딘가를 횡단하는 중이다
맨 마지막 꼬리뼈는 오 년 전
몽골 초원의 그 말 잔등에 있다
내 열두 번째 머리카락은
동해 바람의 소매에서 달랑거리고
두 눈은 봉화 발 협곡열차를 타고 끊임없이 깜빡이는 중이다
떠나고 싶던 순간의 눈물은 그 근처에서 배회 중이다
안타까운 사랑이여,
무심코 흘린 나의 어떤 고백은 노숙자가 되었다
내 것인 줄 알고 사용했던 입술의 습관 중 하나는 급행으로 부친다
이제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누가 나를 아는 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시 살아나 나도 모르는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나를 모른다

 

시집『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천년의시작. 2017년 10월 20일

 

어떤 분이 그랬다. 1년에 책 한 권 읽는다고. 놀라서 반문하며 웃었더니 내 웃음이 과했었나보다. 대신 그만큼 꼼꼼하게 정독한다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농담이거나 과장어법일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니고 1년에 한 권이란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에 비하여 한국인의 독서량이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입증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나의 독서량을 자랑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빠진 시력이 원인이랄까, 게으름이 주범이랄까. 기껏 책을 사서 쟁여두기만 하고 읽기는 점점 소홀해진다. 요즘은 주로 시집을 산다. 아는 사람의 신간을 구입하면 피자 한 판 먹어치우듯이 앉은자리에서 후다닥 읽어치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 이 시집은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낯선 듯이 익숙한, 내가 지향하는 시창작법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첫 행부터 어리둥절케 만든다. 이 어리둥절함은 혼란이 아닌 즐거움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 철학적 개념인 ‘현실존재’를 부정하나 싶지만 다음 행 ‘정교하게 해체되었다’에서 시 제목인 ‘분산’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마치 장난감 로봇을 해체하듯이 ‘나’를 가리가리 파괴시킨다. ‘맨 마지막 꼬리뼈는 오 년 전/몽골 초원의 그 말 잔등에 있다’ 아주 구체적이다. 체험인지 상상인지 경계점이 모호할 정도로 언어를 부려 쓴 맛이 흥미롭고 맛깔나다. 낯선 음식이 의외로 입에 맞을 때의 기분처럼. 별안간 나 역시 나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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