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합천 영암사지는 폐사지 답사 일번지
(10) 합천 영암사지는 폐사지 답사 일번지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5.13 11:3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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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사지...통일신라 불교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
보물 3종 세트인 쌍사자석등, 삼층석탑, 적연국사탑비 귀부

◆아름다운 폐사지 영암사지

아름다운 폐사지 영암사지. 오주석 기자
아름다운 폐사지인 영암사지. 오주석 기자

합천의 철쭉 명산인 황매산 모산재 밑 산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암사지는 여느 폐사지(廢寺址·절은 없어지고 절터만 남은 곳)처럼 한때 번성했다가 세월의 풍파를 거치며 스님도 절집도 사라진 쓸쓸한 옛 절터이다.

쓰러진 절집 영암사는 창건기록은 없고 내력에 대한 것만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빈 절집의 탑비에는 ‘고려 현종 때(1014년) 적연선사가 가수현(지금의 가회면)에서 83세로 입적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금오산 자락의 절집 선봉사 비석에는 천태종 5대 사찰로 원주 거돈사, 진주 지곡사, 해주 신광사, 여주 고달사와 함께 합천 영암사가 기록되어 있다.

영암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에 남아 있는 유물.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3개의 보물은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삼층석탑(보물 480호), 귀부(보물 489호)이다. 금당지, 서금당지와 중문지, 회랑지 등의 건물터와 석조, 기단, 계단이 남아 있다.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현존하는 유물들이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유물과 발굴 당시 출토된 기와 등을 연구한 학계는 통일신라 말 혹은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영암사지 보물 3종 세트

1) 쌍사자석등(보물 353호)

영암사지의 백미인 쌍사자석등.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의 백미인 쌍사자석등. 오주석 기자

폐사지 답사 일번지인 영암사지는 석축으로 단을 쌓고 가장 상단에 있는 금당지 앞에 ‘쌍사자석등’이 서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쌍사자석등은 우리나라에 총 5기가 남아 있는데 보은 법주사 석등(국보 5호), 광양 중흥산성 석등(국보 103호), 여주 고달사지 석등 (보물 282호), 양주 회암사 석등(보물 389호), 그리고 합천 영암사지 석등(보물 353호)이다. 그중 법주사 석등이 최고로 알려져 있는데 8세기 말 또는 9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은 9세기 중엽이나 후반 즉 신라 후대에 조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은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생동감이 있다. 사자 두 마리가 마주 보며 석등의 화사석을 받치고 서 있는데, 뒷다리에서 힘이 느껴지도록 조각되어 있다. 화사석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고, 석등에도 다양한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쌍사자석등과 무지개다리. 오주석 기자
쌍사자석등과 무지개다리.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은 1945년 광복 이후 문교부에서 국보 제531호로 지정했지만, 1963년에 다시 사정하면서 사자 다리가 부러져 있었던 이유를 들어 보물로 격하했다. 이 쌍사자석등은 1933년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반출하려던 것을 주민들이 막아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했다가 1959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는데 당시 반출하기 위해 석등의 사자 다리를 절단하였다고 한다.

2)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480호)

영암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삼층석탑. 오주석 기자

황매산 자락의 모산재를 배경으로 서 있는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9세기 통일신라 삼층석탑으로 위압적이지 않고 온화하게 느껴진다. 석탑을 이루는 각 부분을 간명하게 짜 맞춰서 그런지 꽤 단단하고 경쾌한 맛이 난다. 이 탑은 통일신라 3층 정형 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정교한 조각 솜씨와 경쾌한 추녀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주와 탱주 그리고 부연이 조각된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세웠는데, 탑 꼭대기의 상륜부가 모두 없어진 현재의 탑 높이는 3.8m이다.

3) 영암사지 적연국사탑비 귀부(보물 489호)

영암사지 서금당지와 귀부.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서금당지와 귀부. 오주석 기자

금당지에서 남서쪽 50m 지점에 비신 없는 두 개의 귀부가 있다. 둘 중 하나는 적연국사(寂然國師)의 비신이 세워졌던 귀부다. 적연국사는 1014년 입적했다. 원적에 든 지 9년만인 1023년 후학들이 영암사에 탑비를 세웠다. 비신은 사라졌으나 다행히 ‘영암사적연국사자광탑비’ 탁본 1첩이 서울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어 스님의 여정 일편이나마 엿볼 수 있다.

영암사지 적연국사탑비 귀부,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적연국사탑비 귀부,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는 통일신라 불교 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

금당에 오르는 계단은 동서남북에 하나씩 있다. 네 계단으로 조성돼 있어 높지 않아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돌계단 측면을 자세히 보면 새 한 마리 조각돼 있는데 극락에 살면서 부처님 법을 전한다는 묘음의 새 ‘가릉빈가’이다.

영암사지 금당터 계단에 조각된 가릉빈가(극락조). 오주석 기자
영암사지 금당터 계단에 조각된 가릉빈가(극락조). 오주석 기자

금당을 받치는 면석에는 후면을 제외한 3개의 면석에 사자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그 사자를 누구는 삽살개라고 한다. 법당을 참배하는 사람들을 향해 “어서 오시라!”는 듯 앙증맞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영암사지 금당 기단 면석에 새겨진 사자상. 오주석
영암사지 금당 기단 면석에 새겨진 사자상(혹자는 삽살개라고 해석한다). 오주석

이렇듯 영암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가람배치의 전형이라 해서 불교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해질녘 영암사지와 같은 폐사지에 서서 각박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설계하는 아름다운 시니어가 되어보자!

시니어들이여! 최고의 폐사지인 영암사지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하고 남은 인생을 설계하자. 오주석 기가
시니어들이여! 최고의 폐사지인 영암사지에서 지난 세월을 회고하고 남은 인생을 설계하자. 오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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