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은해사(銀海寺)-은빛 바닷속에 자리한 절집
⑨ 은해사(銀海寺)-은빛 바닷속에 자리한 절집
  • 오주석 기자
  • 승인 2020.05.01 23: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팔공산 은해사는 은빛 바다에 지어진 절집
은해사에 남아 있는 추사 김정희의 흔적
은해사 산내 암자가 보유한 문화재

◆팔공산 은해사는 은빛 바다에 지어진 절집

경상북도 영천의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은해사는 사찰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날 때의 풍광이 마치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하다’ 해서 이름 붙은 사찰이다.

팔공산 은해사 일주문. 오주석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팔공산 은해사의 웅장한 일주문. 오주석 기자

 

팔공산 은해사 전경. 오주석 기자
팔공산 은해사 전경. 오주석 기자

신라 헌덕왕 1년(809년)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사찰(창건 당시는 해안사)로 신라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과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 스님 등 많은 고승을 배출한 고찰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창하였고, 불교 신자인 문정왕후가 집권하게 된 조선 명종 원년(1546년)에 국가의 보조금을 받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짓게 되었다. 이때 조선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이름은 은해사로 고쳤다. 은빛 바다라는 뜻의 은해사라는 이름은 극락정토에 비유하여 지어진 것이다. 또 조선 영조가 왕자 시절에 은해사를 잘 수호하라며 완문을 지어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사찰인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며 5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거북바위도 은해사의 명물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거북바위도 은해사의 명물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사랑나무는 느티나무 가지가 참나무 몸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이룬 연리지나무. 오주석 기자
은해사 사랑나무는 느티나무 가지가 참나무 몸 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이룬 연리지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에 남아 있는 추사 김정희의 흔적

은해사에는 추사 김정희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전국에 남겨진 추사의 글씨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은해사이다. 그래서 은해사는 추사체의 야외전시장이라고 부른다.

1847년의 화재로 소실된 은해사를 중건하면서 당시 주지였던 혼허스님은 불사에 전념했고, 이때 병조판서로 지내던 추사 김정희는 스님의 부탁을 받고 곳곳에 글씨를 남긴다. 추사의 글씨는 은해사 내 성보박물관에 별도 보관돼 있지만, 경내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은 '보화루' 편액이다. 이 밖에 추사가 쓴 현판으로 문루인 '은해사', 불전인 '대웅전', 조실스님의 거처인 '시홀방장', 다실인 '일로향각', 백흥암에 있는 여섯 폭의 '주련(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이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은해사 현판. 은해사 성보박물관 제공
추사 김정희가 쓴 은해사 현판. 은해사 성보박물관 제공
은해사 보화루의 편액도 추사의 글씨. 오주석 기자
은해사 보화루의 편액도 추사의 글씨. 오주석 기자
은해사 백흥암의 주련 역시 추사 김정희의 글씨. 오주석 기자
은해사 백흥암의 주련 역시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백흥암 시홀방장 현판(추사 김정희 글ㅆ). 오주석 기자
은해사 백흥암 시홀방장 현판(추사 김정희 글씨). 오주석 기자

추사와 관련된 일화가 또 있다. 은해사에 남아 있는 추사 최고의 작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불광'이라는 글씨이다. '불광(佛光)'이라는 편액은 당시 불광각에 걸려 있던 편액으로 이 글씨에 대한 숨은 이야기가 있다. 은해사 주지 혼허스님 부탁으로 '대웅전' 등 글씨 몇 점을 남길 때 ‘불광’이라는 글씨도 추사가 직접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나무 판에 원본을 떠 글자를 새겼는데, 판이 작았는지 길게 뻗은 '불'자의 세로획을 잘라 '광'자와 비슷한 크기로 새겨서 걸었다.

추사가 쓴 불광은 명작이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제공
추사가 쓴 불광은 추사 최고의 명작이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제공

훗날 은해사를 찾은 추사는 아무 말 없이 편액을 떼어내고 마당에서 불태워 버렸다. 주지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고 참회하며 원본 그대로 새겨 다시 걸었다고 한다. 현재 불광각은 남아있지 않고, 그 흔적인 '불광'이라는 편액만이 성보박물관 입구에서 숨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은해사 산내 암자 가는 길, 오주석
은해사 산내 암자 가는 길. 오주석

◆은해사 산내 암자가 보유한 문화재

은해사가 거느린 많은 암자도 여러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거조암의 영산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과 함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귀중한 문화재로 꼽히며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은 우리나라에서 얼마 남지 않은 고려 시대 건축물이며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전은 우리나라에서 얼마 남아있지 않은 고려 시대 건축물이며 국보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오주석 기자

거조암 영산전(국보 제14호)은 잡석으로 불규칙하게 축조된 기단 위에 길쭉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계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정면 7칸 측면 3칸의 길쭉한 맞배지붕 집이다. 영산전 안에는 석가모니 불상과 526분의 석조 나한상을 모시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뿐인 ‘오백성중청문’이란 책자가 있다.

이 책에는 5백나한상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제작 연대는 알 수 없고 영파스님이 저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해사 산내암자인 백흥암은 비구니들의 수도 도량으로 일 년 중 부처님오신날과 유월백중일 때 딱 두 번만 대중에게 산문을 열어주는 걸음이 어려운 암자이다. 뜨락을 가운데에 두고 보화루, 심검당, 진영각, 극락전이 처마가 닿을 듯이 붙어있는 사찰인데도 불구하고 고즈넉함과 고상함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

은해사 산내 암자인 백흥암은 일년 중 부처님오신날과 백중일, 단 이틀만 대중들에게 산문을 개방하는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산내 암자인 백흥암은 일년 중 부처님오신날과 백중일, 단 이틀만 대중들에게 산문을 개방하는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오주석 기자

백흥암 극락전은 보물 제790호로 단청이 곱게 날아 은은한 고풍이 피어오르는 건축물이다.

극락전 안에는 한국 불교 목공예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수미단(佛卓, 보물 제486호)이 있어 암자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수미단(佛卓)은 한국 불교 목공예의 최고 걸작품으로 보물 제486호이다. 오주석 기자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수미단(佛卓)은 한국 불교 목공예의 최고 걸작품으로 보물 제486호이다. 오주석 기자

또 운부암에는 보물 제514호인 청동보살좌상을 보유하고 있고, 그 외에도 기기암, 묘봉암, 백련암 등 팔공산 자락을 은빛 바다로 일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은해사가 거느린 암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은해사 운부암의 청동보살좌상. 오주석 기자
은해사 운부암의 청동보살좌상(보물 제514호). 오주석 기자

은빛 물결이 찰랑거리는 바다로 가서 은해사라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정토로 노 저어 가리라.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