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2.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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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해 집구석에 들어앉아 숨만 쉬다가 굶어 죽으란다
“애~ 아가야 대장부 앞길에 재수 없게 아녀자가 어쩌자고 그런다나!”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어이구 내 팔자야!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홀연히 떠난 뒤에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 부디 잘 살아달라고 마님은 짬이 나는 대로 기원해 왔다. 업보다 싶어 정성 들여 빌고 또 빌었다. 한데 그간의 정성이 무색하게 앞선 처녀 가족보다는 다소 나았다지만 여전히 불행을 맞았다는 소식이다.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이 고향을 등진 처녀 가족이 정착한 곳은 한적한 어느 어촌이었다. 마을 뒤쪽 산기슭으로 납작 엎드린 낡은 집을 간신히 얻어 살림집이라 보금자리로 깃들었다. 귀틀집처럼 좁아터진 집이다 보니 간신히 밤이슬과 비바람을 피할 정도였다. 뾰족하게 갈 곳이 없는지라 빌붙듯이 세간살이를 풀었다지만 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거센 파도와 맞서는 뱃사람들이라 그런지 텃세는 물론 배타심이 여타 지방에 비교해서 유난히 심했다.

뭇사람들이 관광 차원에서 느긋하게 거니는 해안이건만 지독한 텃새로 인해 이들 가족에게만은 절대 출입금지다. 게다가 동네 골목길조차 마음대로 거닐 수가 없었다. 나대지로 버려진 듯해도 해안가는 물론 마을을 통틀어 임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란다. 정이 오가고 싶다면 철철이 마을의 발전기금 명목으로 얼마간의 금전을 내놓으란다. 뭇사람들은 무시로 가능하지만 살림을 살려고 온 사람들은 일일이 마을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단다. 그뿐만 아니라 날품도 함부로 팔 수가 없단다. 한마디로 말해 왜 왔냐며 집구석에서 숨만 쉬다 죽으란다.

그렇다고 맥을 놓고 무기력하게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대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옛말에도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덤처럼 얻어온 재물을 종잣돈으로 처녀의 아버지가 대폿집을 단골로 드나들면서 보이지 않은 담벼락이 허물어지기 시작이다. 그런 가운데 문제의 처녀가 아버지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마을을 드나들다가 마을에서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맏아들과 눈이 맞았다.

처녀와 총각이 눈이 맞자 사태는 하루아침에 급변했다. 급기야 혼담이 오가자 그동안 쌍심지로 대하던 처녀의 집안을 두고 서로 잘 보이려고 너나없이 극성이다. 생물 돌미역이라 성게 알을 넣어 함께 국을 끓이면 천하일미라며 들고 오고, 칼국수에 넣으면 그만이라 동죽에 바지락 등을 소쿠리째 담아온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별미라며 칠게도, 쏙도 아낌없이 잡아준다. 처음의 팍팍한 인심이 반년 만에 상전벽해가 일어나듯 너 죽고 나는 못 산다고 얼싸안는다. 이후 처녀가 총각과 혼례를 올려 시집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은 사돈의 소개로 마을 중심부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아무 때나 고깃배가 들어오면 날품팔이로 나설 수가 있었다. 하지만 처녀 가족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사고가 있던 그 날은 바람 한 점 없었다. 바람이 잠들자 파도마저 잠든 바다는 명경지수처럼 고요했다. 먹줄을 튕긴 듯 아련한 수평선을 시기하듯 금비늘 은비늘이 태양 빛을 품어 바다 가득하게  하얗게 반짝인다. 너무 고요하다는 조짐도 한 번쯤은 경계하여 생각해 볼 필요도 있건만 이런 날은 생각이고 자시고, 그냥 보낼 수가 없단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배를 띄워야 한단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기다렸다는 듯 닻을 올리기에 분주하다. 돛을 펼쳐 내남없이 출항 준비로 동분서주다. 모처럼 만의 호기를 두고 장인도 사위도 빠질 수 없다며 한몫 거들고 나섰다. 다들 고요한 바다를 빌어 만선의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배는 다르지만 저마다 고기잡이배에 희망을 싣고는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나갔다. 아마도 몽달귀신, 처녀 귀신, 달걀귀신 등의 귀신에 씌어도 단단히 씐 모양이다.

그때 복중 태아가 언질을 주었는지, 처녀는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서방의 앞길을 양팔로 막아섰다. 오늘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한사코 발목을 잡는다. 뚜렷한 예감은 아니지만 이대로 바다로 보낸다면 필시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만 같단다. 처녀가 양팔을 벌려 서너 끼니 정도는 굶어도 좋다며 제발 집에 있으라고 말렸건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 그런지 전에 없이 시어머니까지 나서더니 위아래를 훑어서 새파랗게 눈을 부라려

“애~ 애 아가야 어떻게 된 애가, 대장부 앞길을 아녀자가 막아서 쫑알쫑알, 재수 없게, 당최 생각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어쩌자고 그런다나!” 한마디에 제 죽을 자리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는 서방은 원군을 등에 업은 듯 거봐라! 훌쩍 배를 타 버린다. 항구를 돌아나가는 배를 두고 처녀는 마당 가장자리에 나와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았다.

“용왕님~ 천지신명님!” 온갖 신이란 신은 있는 대로 찾아가며 서방의 무사 귀환을 빌고 또 빌며 머리를 한정 없이 조아렸다. 하지만 불행은 세상없이 고요한 바다를 보는데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쁘장한 가면을 쓴 바다가 인명을 노리고 있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고깃배가 항구를 떠난 지 한 식경이나 지났을까? 급기야 우려한 바가 현실이 되어 눈앞으로 나타났다.

넓고도 넓은 대양에 비해 말 그대로 일엽편주! 삐그덕 삐그덕 젓는 노에 따라 수평선 너머로 아스라이 고기잡이배가 사라질 때다. 하늘 가장자리로 뭉게구름 한 조각이 이는가 싶더니 금세 먹장구름 무리가 하늘이 비좁도록 뒤덮는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나 살필 필요가 없었다. 구름 구름마다 물동이를 두서너 개를 품은 듯 묵직하여 머리에 닿을 듯 나지막하게 깔린다. 하늘을 빼곡히 뒤덮기까지는 일진광풍이 불어오듯 말 그대로 순식간이었다. 뒤를 이어 번갯불이 천지를 밝히고 천둥이 지축을 울리는가 싶더니 집채를 날려버릴 듯 강한 바람을 앞세운 물보라가 거침없이 몰아친다. 사위가 어둠에 잠긴 바다 위로 두루마리 파도가 허를 날름거려 춤을 춘다. 해안가를 온통 집어 삼켜버릴 기세로 몰려든다. 어떻게 손을 써볼 사이도, 짬도 없었다. 질풍노도와 같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들은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처녀의 아버지도 처녀의 서방도 그날로 저승사자를 따라서 물귀신이 되었다. 유품 한 점 찾을 수 없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시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단지 며느리란 미움 살이 도져 아들 편에 선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며느리가 보란 듯 한마디 역성을 든다는 것이 틀어져 생때같은 자식을 졸지에 잃었다.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멀쩡하던 며느리가 졸지에 청상과부 신세다. 서방을 사지로 몰고 간 시어머니를 두고 나쁜 마음을 먹으면 접포[蝶布:소박맞은 여인들이 지니는 징표, 나비 또는 별포(別布)라고도 한다]를 요구, 집을 나간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럼 뱃속의 유복자는? 손자라면 집안의 대를 잇고, 손녀라도 유일한 핏줄인데 할머니로서 외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그날 이후 그 처녀는 눈물 바람에 얼음장이나 마찬가지인 세숫대야에 걸레를 빠는 일도, 밥을 태울 때면 노랫가락처럼 듣던

“상판대기 반반하게 비렁뱅이로 기어든 주제에,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개뼈다귀처럼 하찮은 인간말종이 찰거머리처럼 찰싹 들러붙어 내 귀한 아들의 등골을 빼 먹으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어야지, 사람 새끼라면 오감은 줄은 알아야지!” 같잖다는 듯 혀를 ‘쯧쯧’ 차는 것에는 성에 아니 차는지 울대를 바짝 세워 가래침을 ‘칵칵’ 뱉고는

“하여튼 근본 없는 것들이란 어쩔 수 없구나! 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험한 꼴을 보는지! 어이구 내 팔자야! 너는 어찌 된 아이가 당최 그 나이가 되도록 친정에서 뭘 배워왔길래 여태껏 그 모양 그 꼴이고! 개돼지도 그만치 가르치면 괴발개발 흉내라도 내겠다. 에이 지지리 못나도 저리도 못났을꼬?” 입에 붙은 듯 지겹던 잔소리도 더는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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