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2.0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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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버님 그게~ 소녀의 좁은 소견에 뒷산에 한번 가보심이!
세상살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모두가 만족할 만 그런 정답은 없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들에서나 길에서나 산을 쳐다보며 전에 없이 명당 터가 보인다고 수군거렸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예~ 그게요! 여태껏 모르고 계셨어요? 예~ 작은 마님! 그게 말이에요!” 속삭이듯 말하는 행랑어멈이 굳게 닫힌 마님의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치를 보아가며 조심스럽게 들려준 말에 의하면 시아버지께서는 당신 사후를 준비로 묫자리를 보려 다닌다는 것이다. 그간 묘터를 본다고 나다닌 지는 햇수로 따져서 십여 년은 족히 넘는다고 했다. 한데 지금껏 일삼아 나다녀도 마음에 드는 자리를 점 찍을 수가 없었단다. 산 밑에서는 손금을 보는 듯 빤한데 어렵게 올라보면 안개가 사린 듯 아른아른하여 진정한 혈(穴)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그런 가운데 야금야금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고 보니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고 마음만 급하단다. 좌우간 지팡이를 짚기 전에 끝을 보기는 보아야 하는데 답답하다 보니 더 극성이라며 또 사방을 휘두르고는

“근방의 어지간한 산은 다 올랐다네요! 그것도 두서너 번씩 말이에요! 그런데 그 묫자리가 다 뭐라고, 기껏해야 영감님이 누울 필요한 땅은 두 평에도 못 미치고 전부 해서 열 평이면 족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이제는 새벽녘에 눈을 뜰 때마다 길은 멀어지고 산은 높아지다 보니 사고가 끊임이 없는 게지요!” 묻지도 않은 말은 사족처럼 덧붙인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가 고모의 혼담으로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때 영감이 터를 보러 간다는 말은 즉, 산소 자리를 보러 간다는 말이었다. 한데 사연을 짐작조차 못 하는 할머니는 99개를 가진 부잣집이라 1개를 더 채워 100을 만들려는 욕심으로 전답을 구하는 거라 오해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 지났을까? 기력을 회복한 시아버지가 또 터를 보러 간다는 말에 시어머니는 결사반대로 앞길을 막아섰다. 길을 막는 사정이야 백번 이해가 되건만 가슴이 답답한 시아버지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져 우거지상이다.

“그럼 임자는 내가 죽은 후 저승 집이 없어 장사도 못 지내야 속이 시원하겠소! 이제는 기력도 웬만히 회복, 명당으로 가든 자갈밭으로 기어들든 그도 아니면 까마귀밥으로 내주든 좌우간 결정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하루라도 젊어서 기운 있을 때 나다녀도 다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도 저도 없이 미운털이 박힌 영감이라고 거적에 둘둘 말아 길가에 버리듯 묻어버리고 말게!” 역정을 내었건만 시어머니가 잔소리 겸 몸을 좀 더 추스른 뒤에나 달리 도리를 내도 내보라는 데는 긴 탄식으로 주저앉은 시아버지다. 그때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시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기가 죽어 사랑방으로 드는 시아버지 앞으로 쭈뼛쭈뼛 나선 고모가 옷고름을 물어 잘근잘근 씹어가며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아버님 혹 뒷산에 가보셨는지요! 거기에 썩 괜찮아 보이는!” 말을 흐릴 때다.

“애~ 새아가야~ 뜬금없이 뒷산은 왜?”

“예~ 아버님 그게~ 소녀의 좁은 소견에 뒷산에 한번 가보심이!” 고모는 뒷산에 그럴싸한 묫자리가 있다는 말에다가 간단한 설명을 곁들었다.

“오~ 냐! 그런데 새아가는 그 자리가 묘 터로 적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고?” 반문할 때 고모는 친정아버지의 못자리를 보고 느낀 대로 또 할머니가 누누이 말하던 그간의 설명을 곁들여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설명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던 시아버지는 고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냐! 새아가가 이 시아버지를 위하는 내 말뜻은 잘 알겠다만 내 그간 수차례나 오르고 올랐건만 못 보았는데, 하여간 네 갸륵한 정성으로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일간 내 너를 부를 것이다. 그때 한번, 새아가 네가 말한 자리를 찾아 찬찬히 살펴나 보자 꾸나!” 반승낙이다. 그 모습을 방문 틈으로 몰래 지켜보는 시어머니의 눈으로는 불이 이는 듯이 이글거렸지만 뒤돌아섰던 고모는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한데 시어머니는 얼굴을 붉혀 험악하게 인상 지을 뿐 여전히 목석(木石) 인양 침묵으로 일관이다. 어지간히도 인내하는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또 며칠이 흐른 어느 오전 나절에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고모는 산길을 앞장서서 오르고 있었다. 봄이 한층 무르익어가는 산길을 40~50여 분을 오른 산 중턱에서 고모가 발길을 멈추자

“허~어 여기에~ 이런 자리가?” 시아버지는 감탄으로 무릎을 치고 있었다. 애당초 고모가 어설프게 본 것과는 달리 시아버지는

“북으로 우뚝한 주작은 하늘을 떠받치는 듯 기상도 좋고, 거기다 좌청룡은 푸른 등이 구불구불, 천하를 감싸서 발아래로 희롱하고, 우백호는 산천경개를 포효하여 잡귀신을 얼씬 못 하도록 우렁차서 가히 일품이로고 진정 천하일품이야!” 감탄사를 연발하더니

“저기 저 너른 들을 감돌아 나가는 푸른 물줄기는 청룡이 여의주를 물고는 구름을 두리두리 휘감아 승천하는 기세로구나! 게다가 안산은 또 어떻고, 안산으로 앉은 현무로 볼 것 같으면 복을 끌어안은 모양새가 태아를 자궁 안으로 갈무리하는 형세로구나! 풍수지리 교본에 그러진 그대로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 같구나! 내 그동안 10여 년간을 들어 수없이 많은 산을 올랐건만 어째 이곳을 몰라보았을꼬? 그동안 당달봉사 같은 그놈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서는 헤매온 세월에 생고생만 진탕 했구나! 구렁이 알 같은 생돈만 체하지도 않은지 꿀꺽꿀꺽 무지하게 깨어지고 말았구나! 어~ 허! 이 핑계 저 핑계로 피해 가는 재주만 특출났지 묫자리 하나 제대로 잡을 줄 모른 작자가 무슨 명지관이라고, 사이비에 돌팔이 같은 놈 같으니!” 푸념 토로하는 시아버지는

“며늘아가! 오늘 보니 네가 천하를 들어 명지관이로구나! 명지관이야! 내 그간의 노심초사에 골치를 썩여오던 문제를! 십수 년간의 숙제가 새아가 너로 인해 단숨에 풀어지는구나!” 기특하고 대견하단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모두가 만족할 만 그런 정답은 없는 모양이다.

시아버지께서 묘터에 빠져 좋아하는 것에 만족한 고모의 일상은 전날과 다름없이 갑갑하다. 당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은 시집살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고모부의 고모에 대한 외사랑이 날이 갈수록 한결같아 더했으면 더했지 식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없었다면 시어머니가 소박을 놓기도 전에 고모가 먼저 집을 뛰쳐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모가 시아버지의 묘 터를 잡고부터 집안 분위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피부로는 못 느끼지만 분명 바람의 방향이 이상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고모는 또다시 시아버지의 부름을 받고는 산길을 앞장서서 오르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행랑아범이 간단한 제물과 술 한 병을 들고 뒤를 따른다는 점이다. 고모가 발걸음도 가볍게 묘 터에 다다르자

“새아가야 네 눈에는 땅을 짚고 헤엄치는 모양으로 단박 인데 어째 내 눈에는 여기 이 자리가 볼 때마다 처음 보는 듯 생경해서는 몰라볼꼬?” 신기하다는 듯 고모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래~ 그래! 바로 여기야! 여기지!” 감탄하는 시아버지는 빈터에 제물을 진설하고 술 한 잔을 부어 고유를 겸한 산신 축을 한 다음 미리 준비한 접시를 묻었다. 그러고는 홀가분하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고도 감사합니다. 우매하고 어리석은 저에게 이토록 과분한 며느리를 보내주시는 것도 모자라 장차 우리 집안을 영화롭게 하시매 감사드립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들에서나 길에서나 산을 쳐다보며 전에 없이 명당 터가 보인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미 지줏댁 영감이 사후자리로 표를 했다는 말에 씁쓰레하게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이때까지 잠잠하던 명당이 어떻게 부지불식간 뭇사람들의 눈에 보이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의문은 이내 고모에 의해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즈음하여

“14년간의 병치레 끝에 무얼 알면 얼마나 알까? 상판대기만 반반한 어리보기로 보았더니 여~영 숙맥은 아니었나 보네! 그러게 말이야 그 댁 며느리가 예사 사람이 아닌 모양이여! 그날 수록 없는 듯 살아도 우리네와는 다른 모양이여!” 고모를 재평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어머니만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모를 닦달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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