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6)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4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2.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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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눈은 병아리를 노리는 솔개처럼 매서웠다
어차피 글을 모르는 처지라 달리 방도가 없어 궁여지책이다
속 빈 강정 같은 저것의 개차반 같은 행실머리에 꼬락서니를 지켜보아야만 합니까?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어떻게 며느리가 분수도 모르고, 감히 시아버지의 묘터를 잡는 불효도 모자라 사지로 밀어 넣느냐는 것이다. 눈꼴 사납지만 곱게 친정 나들이나 할 것이지! 그 꼬락서니에 묘터는 어째 알아서! 그래도 그렇지 시부모도 엄연히 부모나 마찬가진데! 빨리 죽으라고 등을 떠밀어 고사를 지내냐며 눈을 부릅뜬다. 그 성정으로 보아 제 서방이 죽으면 무덤가에 앉아 정조도 지조도 내팽개쳐 무덤이 빨리 마르라 신경질로 부채질할 년이라고 몰아붙인다. 무덤의 흙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새서방과 눈이 맞아 방긋 웃으며 야반도주로 저주받을 년이라 얼굴을 붉힌다. 원래도 기가 죽어있는 고모는 무얼 어떻게 잘못 한지도 모르고 자리에 있든, 자리에 없든 호되게 당한다. 그런 고모를 두고 시어머니는 그동안 참아왔던 화풀이를 일거에 푸는 듯 보였다.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며느리 사랑을 떠나 방패막이를 자처다. 시어머니의 화살-받이로 전면으로 나선다. 지관도 못 찾고, 없어 못 구한 명당자리를 며느리가 구한 것이 무엇에 잘못이냐고 항변이다. 만약 며느리가 그 터를 구하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터를 구한다고 온 산비알(산비탈의 방언)을 미친 노루 새끼 모양 천방지축으로 헤매는 처지를 생각해 보았느냐며 입에다 거품을 문다. 아니한 말로 다 좋아서 그렇게 시오리를 넘어서 산 중턱에 터를 구했다고 칩시다. 나 죽고 난 뒤 장삿날을 맞아 상여꾼을 비롯한 일꾼들의 원망은 또 어떡할 거냐며 일일이 열거다.

길은 멀어서 힘들어, 음식을 무겁고 뜨거워서 나르느라 힘들어, 접빈객에 소홀할까 싶어 안절부절로 애달아, 이래저래 힘들다고 원망으로 자자한 소리에 귀가 솔아 저승 집이라고 찾아든들 잠인들 제대로 자겠냐는 것이다. 시아버지의 항변에 어느 정도 기가 죽었다지만 시어머니의 꽁한 마음은 좀체 풀어질 기미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말이 씨가 된다고 이듬해 이른 봄을 맞아 시아버지가 홀연히 세상을 버렸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시아버지의 상을 맞아 고모는 굴건제복(屈巾祭服)의 상복 차림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어가며 많이도 울었다. 슬퍼서라기보다 원래 눈물이 흔하다 보니 옆에서 우는 소리만 들어도 절로 눈물을 흘리는 고모다. 하지만 그 내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내 편이 사라졌다는 절망감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 고모를 두고 시어머니는 등을 떠밀어 사지로 불아 붙여놓고는 지금에 와서는 왜 우냐는 것이다. 그 알량한 악어의 눈물이냐며 도끼눈이다. 맏며느리의 꼴 같지 않은 눈물방울이 바늘로 가슴을 꼭꼭 찔러서 마음에 거슬린다며 눈을 부라리어 치켜떠가며 앙앙불락이다.

시아버지 사후 고모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눈은 병아리를 노리는 솔개처럼 매서웠다. 호시탐탐 노려보는 시어머니의 매서운 눈초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시아버지를 장사 지낸 석 달 만에 고모는 기계처럼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 삼 년 상에 탈상 전까지 고모는 여전히 상주이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 무덤을 파느라 그랬는지! 세상사 이치를 도외시한 바보 같은 행동인지, 맹추 같은 결정으로 친정으로 발걸음을 잡은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볼 때 진정 고와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에 화가 폭발한 시어머니는 좌우간 결단을 내리라 마음을 먹었다. 오늘같이 내일을 향해서 숫돌에 비수를 벼르듯 새파랗게 벼른다.

고모를 두고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차지 않았다. 집안도 비교 대상이 아님은 물론 가진 재물도 한없이 빈약하다. 선대를 들어 그럴싸한 조상도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배움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허난설헌(許蘭雪軒, 본명은 허초희다)처럼 남들에 비해 뛰어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글을 깨우쳤으면 했다. 훗날 집안 살림은 물론 재산관리를 위해서라도 그것만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데 글은 고사하고 일자무식이다.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다. 게다가 건강도 엉망진창이다. 무릇 맏며느리라 하면 후덕한 인상에 엉덩이는 펑퍼짐하고 몸매가 두루뭉술 좋아야 하는데 부합되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무말랭이처럼 빼빼 곯아서는 말라깽이다. 저 몸매 어느 곳, 어디를 들어 빈틈이 있으며 아기집이 있을까? 아기가 들어서고 낳을까 싶다. 생각 탓일까? 한마디로 말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단지 아들이 목을 매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며느리로 받아들이긴 받아들였지만 볼 때마다 기가 차다. 이대로 지켜보자니 절로 속이 쓰려 까맣게 말라 죽을 지경이다.

별수 없이 시어머니가 영감이 잠든 산소를 찾는다. 간단한 재물을 장만하여 산소에 올라보니 아닌 게 아니라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어씨 세장법(魚氏 世葬法:어씨 집안처럼 명당을 찾지 않고 장사 지내는 것)으로 풍수지리가 허무맹랑하다 할지라도 발아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데 분명 좋은 터로 보였다. 게다가 영감이 잠든 옆으로 자신이 들어갈 자리라 표한 가묘(假墓:시신을 묻기 전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무덤)를 보는데 기분에 묘하다. 이 자리 이 터라면 사후세계가 맑고 밝게 열리리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마냥 기분에만 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상석 위에다 준비한 재물을 가지런하게 진설하고는 강신례에 따라 세 번에 걸쳐 술을 무덤 앞에 뿌린 뒤 재배다. 이어서 청작서수(淸酌庶羞:맑은 술을 따르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라, 술 한 잔을 상석 제일 윗자리에 고이 따르고는 나부죽이 재배를 올린 후 상석 앞 정중앙으로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는다. 고리타분한 형식을 떠나서 생각나는 대로 또박또박 고유(告諭:어떠한 사실을 널리 알려서 깨우침)다. 어차피 글을 모르는 처지라 훈장님의 손을 빌려 구구절절 써 온들 무엇하랴! 달리 방도가 없다 보니 궁여지책이다. 중간중간 생각을 가다듬느라 띄엄띄엄 쉼도 잦다.

“영감님! 오늘에 이르러 기어이 영감님의 간곡한 당부를 저버려야 하는 나를 두고 원망일랑 마세요! 덩그렇게 저승에서 내려다보고서 부디 미월랑 마세요! 남들 눈에는 사람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며느리가 아니라 징글징글한 버러지로 보이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나 죽에 당신을 만나면 그러한 일체의 원망일랑 싫다 않고 달게 받으리다. 하지만 나도 이날 이때까지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나도 알고 보면 속 좁은 아녀자라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대로는 답답해서 진정 못 살 것아 그러오! 속에서 천 불이 일어 오장육부가 죄다 재로 남을까 싶어 그러오! 영감님도 참으라고! 무당도 참고 참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속 좁은 아녀자의 인내라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딸도 아니건만 언제까지 속 빈 강정 같은 저것의 개차반 같은 행실머리에 꼬락서니를 지켜보아야만 합니까? 이제 더는 눈꼴 시려서라도 그렇게는 못 합니다. 지난날 내가 스스로 언약했던 약속이건만 지금에 와서 헌신짝처럼 저버린 못난 여편네라 꾸짖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참이나 계좌 정중앙에 나부죽이 엎어지듯 엎드렸다가는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피더니 홀린 듯이 혼잣말이다.

“영감님! 영감님이 잠들어 계셔서 그런가? 벽창호 모양 문맹인 내 눈에도 양지바른 자리가 좋기는 좋아 보이네요!” 몸을 일으키더니 치맛자락에 묻은 검불을 툭툭 털어 천천히 산에서 내려온다. 이미 마음속으로 미운털이 깊이 박히고 ‘소박’이란 단어가 가슴속에서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터라 다른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인연으로 맺어진 고부지간을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 끊어 낼까 심히 고심할 따름이다. 헌 옷 보따리만 달랑 들러서 보내! 얼마간의 재물을 손에 쥐어서 보내! 잡다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시어머니가 담 모퉁이를 돌아들 때였다. 문득 동네 아낙네 몇몇이 길모퉁이 너머에서 수다를 떠는지 시끌벅적하다. 무슨 이야기가 저리도 재미날까? 귀를 기울여 듣던 시어머니는 얼음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마님이 귀를 쫑긋 세워 듣는데 아낙네들이 장황하게 떠드는 이야기의 주제는 분명 영감이 바람을 피웠다는 두 번째 처녀의 집안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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