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인식은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이다. 문화창조아카데미 총감독, 과학문화연구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역임했다. 과학칼럼니스트로서 30년 가까이 집필 활동을 하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2년 국내 최초의 인지과학 개론서 《사람과 컴퓨터》를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인공지능 분야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때마다 가장 먼저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더 나아가 미래인류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들을 선별해 5부 17장, 123개의 글로 구성하고 있다.
목차는 ‘1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1장 보통 사람의 마음, 2장 특별한 사람의 마음, 3장 행복한 마음, 2부 사회생활을 지배하는 마음 4장 사회적 마음, 5장 남을 돕는 마음, 6장 폭력적 마음, 7장 사랑하는 마음, 3부 마음이 세상을 움직인다 8장 경제적 마음, 9장 비이성적 마음, 10장 정치적 마음, 11장 집단의 마음, 4부 우리가 모르는 불가사의한 마음 12장 심령현상, 13장 죽음에 관한 마음, 14장 신앙에 관한 마음, 15장 마음과 몸, 5부 미래의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6장 인공적 마음, 17장 마음의 미래’로 되어 있다. 독자들이 관심과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글들을 소개한다.
1. 짝짓기 상대: 모래시계 몸매를 왜 좋아할까
2,000년 동안 사내들은 줄곧 날씬한 허리를 가진 여인을 선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논문이 2007년 《영국학술원 회보(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3월 22일 자에 게재되었다. 이 논문의 필자는 인도 출신의 미국 사람인 데벤드라 싱이다. 그는 여자 몸매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수치인 허리/엉덩이의 비율(WHR), 곧 엉덩이 치수에 대한 허리 치수의 비율을 연구하여 유명해진 진화심리학자이다.
싱은 미인들의 허리/엉덩이 비율이 항상 일정한 범위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싱에 따르면 미스 아메리카나 《플레이보이》 잡지에 나체로 등장하는 미녀들은 몸무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0.68~0.72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195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인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의 몸매를 비교해 보면 싱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먼로는 육체파의 원조(36-24-34)인 반면 헵번은 청순미의 상징(31.5-22-31)이지만 허리/엉덩이 비율은 똑같이 0.7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슈퍼모델 역시 평균 신체 크기는 33-23-33으로 허리/엉덩이 비율은 0.7이다. 0.7은 모래시계처럼 생긴 가장 여성스런 몸매이다.
영국의 생물학자인 존 매닝은 생식능력의 측면에서 허리/엉덩이 비율은 진화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허리/엉덩이 비율이 낮을수록 생식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허리가 잘록한 여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이 분비되어 임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엉덩이가 넓으면 아기가 나오는 통로가 협소하지 않아 분만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여자의 개미허리는 다산의 가능성과 신체의 건강함을 나타내기 때문에 남성들이 선호하게 되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코르셋, 엉덩이를 조이는 거들, 하이힐 등 여성의 패션도 허리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185~188쪽)
2. 화폐: 유난하게 돈에 집착하는 사람의 심리
많은 사람이 돈에 울고 돈에 웃는 삶을 꾸려 간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돈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돈은 경제활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교환의 수단일 따름이지만 돈의 위력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이 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2006년 영국 엑시터대 심리학자 스티븐 레어는 《행동 및 뇌 과학(Behavioral and Brain Science)》 온라인판 4월 5일 자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돈이 마치 중독성이 강한 마약처럼 마음에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돈에 중독되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일벌레가 되며 비정상적으로 돈을 낭비하게 되거나 충동적으로 도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레어는 돈이 니코틴이나 코카인처럼 뇌의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보상체계는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동, 예컨대 식사, 섹스, 자식 양육 등을 규칙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쾌락으로 보상해주는 신경세포의 집단이다.
니코틴이나 코카인 같은 중독성 물질은 보상체계가 그것들을 음식이나 섹스처럼 필요 불가결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요컨대 돈이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키므로 돈이 떨어지면 끼니를 거른 것처럼 고통을 느끼지만 돈이 생기면 곧장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현생인류가 돈을 갈구하는 욕망이 진화된 이유를 설명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2006년 프랑스 심리학자 바바라 브리어스는 《심리과학》 11월호에 사람의 마음 속에서 현금에 대한 욕망은 식욕과 비슷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사람보다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적게 내려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복권에 당첨되어 거금을 손에 넣는 순간을 꿈꾸면서 돈을 탐내는 사람들은 과자를 누구보다 많이 먹었다. 브리어스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뇌 안에서 음식을 생각하도록 진화된 신경회로가 돈에 관한 욕구도 함께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204~205쪽)
3. 기도: 기도하면 건강에 좋다
신앙생활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종교적 믿음이 질병 치유에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이론가는 하버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1935~ )이다. 1996년 4월에 펴낸 《영원한 치유(Timeless Healing)》에서 벤슨은 기도를 반복하면 이완 반응(relaxation response)을 불러일으키므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1975년 그가 처음 개념을 정립한 이완 반응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의 생리적 변화와 정반대가 되는 상태를 뜻한다.
2009년 《타임》 2월 23일 자 커버스토리는 기도가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사례를 열거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인구통계학자 로버트 흄머는 1992년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신자들의 건강 상태를 분석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는 신자는 교회와 담쌓고 사는 사람보다 특정 기간에 사망할 확률이 50퍼센트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피츠버그 의대 외과 의사 대니얼 홀 역시 교회 신자가 보통 사람보다 2~3년 수명이 길다고 주장했다.
미시간대의 사회학자이자 보건 전문가인 닐 크라우스는 1997년부터 교회 신자 1,500명을 대상으로 경제적 곤궁에 처했을 때 어떻게 뚫고 나가는지를 연구했다. 특히 스트레스와 건강에 초점을 맞추었다. 크라우스는 자신의 처지를 탓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도움을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 더 건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도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됨에 따라 환자 치료를 위해 종교가 한몫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테면 신부나 목사가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발상에 대해 미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환영하는 눈치이지만 의사들은 마뜩찮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340~341쪽)
4. 뇌 건강: 뇌를 젊게 하는 방법
2009년 격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 2월호에는 새로운 신경세포를 오래 생존시켜 뇌의 기능을 끌어올리는 방법 여섯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1) 운동- 운동을 하면 뇌로 흘러들어 가는 혈액의 양이 증가한다. 핏속의 산소와 영양소는 신경세포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운동은 뇌의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므로 치매 예방 효과가 높다. 노인의 경우 하루에 20분 정도 걷기만 해도 뇌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 음식- 사람의 뇌는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소모하므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뇌 기능이 약화된다. 뇌 기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는 불포화지방산과 산화방지제가 함유된 식품이 꼽힌다. 불포화지방산 중에서는 오메가3가 기억 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우울증, 치매, 주의력결핍장애 따위의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을 낮춰 준다. 오메가3 지방산은 고등어나 참치 같은 등 푸른 생선이나 들기름, 견과류에 많다. 한편 산화방지제는 뇌의 노화를 예방하고 기억력을 증진시키므로 야채, 식물성 유지, 견과류 등을 많이 섭취할 필요가 있다.
(3) 흥분제- 신경계의 활동을 자극하고 혈압, 심장박동, 호흡을 끌어올리는 물질을 흥분제(stimulent)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은 카페인이다. 카페인은 차의 잎, 커피의 열매나 잎, 콜라 열매, 카카오나무에 함유되어 있다. 카페인은 커피를 통해 가장 많이 섭취된다. 하루에 커피를 4~5잔 마시지 않으면 기분이 울적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카페인은 대량으로 섭취하면 중독될 수도 있다.
(4) 비디오 게임- 전자오락 게임이 청소년의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일주일에 몇 시간씩 비디오 게임을 한 외과 의사는 그렇지 않은 의사보다 수술실에서 30퍼센트 정도 실수를 적게 하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을 하면 정신적으로 여러 기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5) 음악-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면 뇌에서 무엇보다 편도체의 활동이 억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편도체는 공포와 경계심을 일으키는 부위이다. 요컨대 음악을 들으면 공포감이 줄어든다. 음악은 불안감과 불면증을 완화하고 혈압을 낮추며 치매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음악의 기능은 뇌의 기능을 여러모로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명상- 수행자들이 명상을 하는 동안 신체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뇌 활동에도 변화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명상은 스트레스를 줄여 주기 때문에 우울증, 과민반응, 주의력결핍장애 같은 질환을 치유하는 데 활용된다.
적절한 운동, 머리에 좋은 음식, 적당한 양의 카페인, 건전한 비디오 게임, 아름다운 음악, 규칙적인 명상으로 늙어가는 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349~351쪽)
5. 초지능: 21세기 후반 트랜스휴먼 사회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교수인 닉 보스트롬은 2014년 7월 영국에서 출간된 《초지능》에서 ‘지능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현격하게 능가하는 존재’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라고 정의했다.
보스트롬은 기계가 초지능이 되는 방법을 두 가지 제시했다. 하나는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전문지식 추론이나 학습능력 같은 인간 지능의 특정 기능을 기계에 부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인간 지능의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기계로 수행하는 기술, 곧 인공일반지능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정도의 수준이다.
2006년 인공지능이 학문으로 발족한 지 50년이 되는 해에 개최된 회의(AI@50)에서 인공지능 대상 전문가를 대상으로 2056년, 곧 인공지능 발족 100주년이 되는 해까지 인공일반지능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참석자의 18퍼센트는 2056년까지, 41퍼센트는 2056년이 좀 지난 뒤에 인공일반지능을 가진 기계가 실현된다고 응답했다. 결국 59퍼센트는 인공일반지능의 실현 가능성에 손을 들었고, 41퍼센트는 기계가 사람처럼 지능을 가질 수 없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트롬은 기계가 초지능이 되는 두 번째 방법으로 마음 업로딩을 제시한다. 사람의 마음을 기계 속으로 옮기는 과정을 마음 업로딩이라고 한다. 1971년 마음 업로딩이 언급된 논문을 최초로 발표한 인물은 미국 생물노화학자 조지 마틴이다. 그는 마음 업로딩을 생명 연장 기술로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디지털 불멸’이라는 개념이 미래학의 화두가 되었다. 마음 업로딩은 미국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백이 1988년 펴낸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에 의해 대중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모라백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사람 마음이 로봇 속으로 몽땅 이식되어 사람이 말 그대로 로봇으로 바뀌게 된다. 로봇 안에서 사람의 마음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마음이 사멸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모두 물려받게 되는 로봇, 곧 마음의 아이들이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스트롬은 《초지능》에서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도 초지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을 초지능 존재로 만드는 기술로 유전공학과 신경공학을 꼽았다. 유전공학으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해짐에 따라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제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능을 개량하는 유전자를 보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신경공학의 발달로 뇌 안에 가령 기억 능력을 보강하는 장치를 이식할 수 있으므로 초지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사람의 정신적 및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라고 한다.(403~405쪽)
뇌와 마음은 가장 수수께끼가 많은 부분이자 우주를 능가하는 새로운 개척지이다. 애덤 스미스와 찰스 다윈을 거쳐 인공지능 연구까지 250년간 끊임없이 이어져 온 마음 탐구의 역사는 21세기에 신경과학 연구를 기점으로 분수령을 맞았다. 이 책은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철학, 행동경제학, 정신의학, 인공지능, 네트워크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음 탐구의 생생한 성취를 담고 있어서 인간 탐구의 현주소이자 마음 연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