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정유미 외 'letters to library'
[장서 산책] 정유미 외 'letters to library'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11.1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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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스 투 라이브러리 : Soul Food

이 책은 필리핀, 미얀마 등 총 6개국의 결혼이주여성 9명이 모여 만든 그림책이다. 그리운 고향의 도서관으로 보내는 편지를 한국어·영어·모국어 3개 국어로 기록했다. 태어나 자란 곳은 모두 다르지만 '그림과 치유'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그림책을 만들었다.

고향이 필리핀인 엘사 에스피노실라는 '생명의 나무'라는 제목으로 바나나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필리핀에서 바나나 나무 한 그루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한 가문을 먹여 살리는 중요한 존재이다. 어른들은 나무껍질을 꼰 줄로 빨랫줄이나 테이블 커버를 만들고, 어린이들은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었다. 바나나 나무는 비오는 날에는 우산이 되고, 무더운 날에는 부채가 되어준, 끊임없이 모든 걸 내어주던 대자연의 어머니였다.

일본 출신의 야마기시 아끼꼬는 '저녁노을'을 그렸다. 어릴 때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하늘이 새빨갛게 물든 걸 보고 나서야 귀가를 서둘러서, 고향을 멀리 떠나도 노을을 보면 어린 시절의 하늘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끼꼬는 '패랭이꽃'과 '첫눈'도 그렸다.

미얀마 양곤 출생의 수텟몬은 '바간'이라는 제목으로 불교 사원을, '타나카'라는 제목으로 미얀마 사람들이 선크림 대신 쓰는 천연 화장품을 그렸다.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안효주는 어머니가 일터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이불 속에 넣어 두시던 '밥 한 공기'와 학년이 마칠 때 교실에서 가졌던 '책거리', 어릴 적 뛰어놀다 배가 꺼지면 간식처럼 따먹었던 '진달래'를 그렸다.

일본 사이타마현 출신의 사토 치카코는 '말의 힘', '헤아리는 마음', 중국 길림성 출신의 배춘화는 '양금택목', '경제독립', 러시아 아르한겔스크 출신의 아비가일은 '꽁꽁 얼었지만, 따뜻한', '러시안 티', 경북 의성군 출생의 김동희는 '민들레', '민들레 홀씨', 서울 출생의 정유미는 '가능성의 씨앗'이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책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모국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낯선 땅에서 살면서 겪었을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출신의 야마기시 아끼꼬가 그린 그림과 안효주, 김동희의 그림은 시골에서 자란 기자의 어린 시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이주여성들이 고향의 소식을 접할 수 있고, 모국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문화도서관이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들어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