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5.0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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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고 원통, 절통하여 생목숨을 끊은들 어찌 그 허물마저 벗을 수 있으라!
결국에는 무당이나 점집에 의지하는 것은 우리네랑 별반 다를 게 없구먼!
전생의 빚을 받고자 작정하고 오든 간에 아기가 안락하게 깃들 수 있는 몸으로 기다려야 한단다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부전자전에 모전여전이라더니 그 어미에 그 딸이 구만! 마음에도 없는 말 한마디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또박또박 말대꾸에 입을 헤벌쭉 벌리다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못된 것 같으니! 못 배우고 무식한 것들은 하나같이 천박하기가 그지없구나! 나~원 참! 집안서 새는 바가지가 밖이라 아니 샐까? 어디서든 표가 나도 표가 난다더니 딱 그 짝이네!” 하는 악담 끝에 헌 옷 보따리 하나를 마당으로 내 던진들 무슨 수로 거역할 수 있을까? 어미를 두고 천하에 몹쓸 년으로 몰아붙인들 여린 마음의 내 딸이 감히 무어라 한마디 대꾸할 말이 있을까? 말이 곧 법이라, 없는 죄는 만들고, 청천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외간남자와 사통이란 터무니없는 꼬리표를 붙여서는 천하에 음탕한 년으로 몰아 조리돌림을 한다 한들 무어라 변명하리! 실오라기 한 가닥 못 걸쳐 발가벗은 몸에 인간 소가 되어 코로는 코뚜레를 꿰고, 어릿광대처럼 큰북을 걸머지고 동네를 바퀴, 바퀴 돈다고 할지라도 입 한번 뻥긋 못하리! 다들 억울하다 쑥덕거릴 뿐 멀거니 바라볼밖에 없으리! 하늘을 우러러 무고를 주장,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밖에 속수무책이리라! 억울하고 원통, 절통하여 생목숨을 끊어 낸다 한들 어찌 그 허물마저 씻은 듯 말끔히 벗을 수가 있을까? 원한에 사무쳐 저승에도 들지 못해 원귀가 되어 구천을 떠돌리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참담하기 그지없다. 가슴으로는 엄동설한이 가득하고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정신은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급기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님 그런 가당치 않은 분불랑은 부디 거두어주십시오! 너무 황망하여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희같이 천하고 미천한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지체 높으신 마님이란 어떻게 동등한 입장으로 대거리를 하다니요!” 하는 할머니는 새삼 옷고름이 느슨해졌나 어루만지고 옷매무새를 살펴서 하염없이 머리만 조아릴 뿐이다.
“아이 어째 이러하실까?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그러하실 필요가 없다니까요!” 하는 마님도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딸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을 읽고도 남았다. 한발만 아차 잘못 내디디면 깨어질까? 조심스럽게 살얼음판을 걷는 두려움이란 이런 것일까? 아들을 둔 나의 마음도 이러할 진데 딸 가진 어미의 마음이야 오죽이나 할까 싶어 한참을 물끄러미 할머니의 활처럼 굽은 등을 내려다보던 마님이

“그럼 안사돈께서는 안사돈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더는 강요치 않겠습니다. 한데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이번 혼사를 거론한 이야기 전부라면 저도 이렇게까지는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며 이미 혼사가 이루어진 듯 말하는 마님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이야기를 이어간다.

며칠을 혼자 생각에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어 끙끙 앓은 마님은 어느 여름날을 맞아 행랑어멈의 조심스러운 조언에 따라 무당집을 찾기로 했다. 지금껏 마님은 평생을 들어 무당과는 인연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행랑어멈이 너 나 없이 이런 경우 점집이나 무당을 찾는다는 말에 용기를 낸 것이다. 자식의 혼사 일만 아니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행랑어멈이 길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온 동네를 들어서 소문낼 일이 있냐며 뿌리쳐 홀로 나섰다.

대문을 열자 바짝 달아오른 신작로부터 더운 열기가 물컹 솟아올라 얼굴께로 와락 달려든다. 금세 목덜미를 감싸서 땀이 흐른다는 느낌이다. 습관처럼 손수건으로 목 덜미께를 훔치며 눈을 들자 농번기라 그런지 논이면 논마다, 밭이면 밭마다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일에 빠져 있었다. 간혹 마님의 네거리 차림을 보고는 손을 흔들어

“마님! 이 더위에 어디를 가세요?” 하는 겉치레 인사를 보낸다. 하지만 마님의 마음은 처음 길을 나섰을 때의 할머니 마음처럼 모르는 체 외면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당집을 향해 가는데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듣는 인사말들이 자격지심으로 자신을 비웃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가진 재산에 재물이 많아 창고서 쌀이 썩어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세가 높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에는 무당이나 점집에 의지하는 것은 우리네랑 별반 다를 게 없구먼!” 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꿀떡이지만 기왕지사 아들의 혼사 문제로, 장래 문제로 나선 걸음이라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고개를 숙여 묵묵히 걷는다.

무당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 앞에 이르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님의 귀에 여름 매미가 따갑게 울고. 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스산하다. 마당이 비좁다며 나비가 쌍쌍이 춤추고 벌들이 분주히 날아다닌다. 분위기에 취하는 것도 잠시, 생경한 풍경의 이 자리에 내가 왜 왔는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는데

“밖에 누가 왔습니까? 왔으면 어~여! 들어오시질 않고 무어에 꾸물거리고 섰습니까?”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울긋불긋하게 차려입은 무당이 젊은 여인을 마주하고 앉았다. 오십 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무당의 뒤편으로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신도(巫神圖)가 벽으로 걸렸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온 듯 누렇게 색이 바랜 그 무신도는 다른 무신도에 비해서 조금은 특이해 보였다.

보통 무신도라고 함은 천신(天神)·일신(日神)·월신(月神)·성신(星神)·지신(地神)·산신(山神)·수신(水神)·화신(火神)·장군신(將軍神)·명부신(冥府神)·동물신(動物神)·왕신(王神)·대감신(大監神)·불교신(佛敎神)·용신(龍神)·방위신(方位神)·사귀(邪鬼)·역신(疫神)·산신(産神)·신장신(神將神)·무조신(巫祖神) 등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한데 무당이 접신(接神) 하는 무신은 어떤 아리따운 여인인 모양이다. 오른손으로는 비스듬하게 하늘을 향한 유엽도(柳葉刀)를 꼬나 잡고, 왼손으로는 가슴께로 반쯤 펴다가 만 접부채를 잡은 모양새로 보아 한편의 여협도(女俠圖)를 보는 듯하다. 언뜻 보면 당나라 전기(傳奇)소설 '홍선전(紅線傳)'의 주인공 홍선(紅線)을 그린 듯도 보였다. 또 달리 보면 그도 아니다. 발아래로 커다란 청룡을 거느리는 모양으로 보아 의상대사를 사모한 나머지 청룡으로 화한 선묘낭자(善妙娘子)를 그린 듯도 보였다. 한데 달리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무녀의 딸로서 젊었을 적의 어머니를 그렸다는 말이 풍문으로 나돌고 있다. 신내림을 어머니로부터 받았다는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귀신을 동무로 삼아 놀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볼 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마님이 무신도에서 시선을 거두는 때를 같이하여 고개를 숙인 여인을 곁눈으로 일별하여 보는데 다행히 이 마을에 사는 여인은 아니다. 그 여인도 마님처럼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점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꿇어앉아 무당을 마주한 여인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마님이 가만히 경청하여 보는데 아기가 쉬 들어서지 않아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무당은 연신 마음을 넓게 쓰고 편식은 금물이란다. 이미 자식을 보고자 마음을 굳히고 나아가 아기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했다면 다소 생소하고 입에 거북하더라도 육식을 해야 한단다. 일삼아 먹기가 뭣하다면 생기는 대로 먹으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아기를 위해 피하지 말란다.

후일 축복처럼 찾아들든, 선물처럼 다가오든, 저승에서 죄인으로 유배를 살려 오든, 전생의 빚을 받고자 작정하고 오든 간에 아기가 안락하게 깃들 수 있는 몸으로 기다려야 한단다. 그러려면 먹는 것을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며 일반적인 충고다. 그러면서 본래의 사주에는 슬하에 자식이 없는데 지극정성이면 천지(天地)가 나서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도와서 또 모른다며 정성을 다하라며 훈계하듯 타이른다. 그때 마님은 이대 독자로 아들 하나를 간신히 낳고는 여태까지 감감무소식인 자신과 겹쳐 슬하에 자식이 없는 여인의 신세가 여간 가엽지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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