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1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5.2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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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포기한 어린 계집아이의 사주에서 어째 아들딸이 보이고 이런저런 복이 넘쳐나기에 궁금하기 짝이 없어
복은 화와 함께 온다는 세상 진리를 근심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만 해도 목숨을 부지하여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참으로 요상도 하지요! 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요! 어쩌면 이렇게도 공교로운 일이 있는지 말이에요!” 하고 할머니를 돌아보는 마님은 입가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한편으로

“예~ 저~ 재 너머에 사는” 하고는 무당에게 말끝을 흐렸다고 했다. 하지만 무당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며

“그렇지요! 이름은 끝순이지요! 성이 최 씨에! 어때요?” 하는 무당의 말에 마님은 그야말로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들이 말한 처녀의 사주가 이곳에 있는 것도 신기하고, 그것을 기억하고는 기어이 찾아 아들의 사주와 맞추어 보는 무당의 신기에 그저 감동할 따름이었다. 장차 며느리가 될 처녀의 사주라면 연길단자(涓吉四柱)가 와야만 알 수 있는데 어째 그것이 여기에 있을까 싶었다. 이런 일은 일삼아 꾸미기도 어렵다 싶었다. 사주를 찾는 과정만 해도 그렇다. 차곡차곡 쌓인 종이 뭉치를 한참이나 뒤적거려서는 간신히 찾았고, 색깔 역시 누렇게 색이 바랜 모양이 십여 년은 족히 묵어 보였다. 게다가 마님과 무당과는 생명 부지로 오늘이 초면이다. 아들과 매파의 말에 의하면 그 집안의 전후 사정으로 보아 이렇게 치밀하고도 완벽하게 일을 꾸며 도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머리를 갸우뚱하는 마님이

“어떻게 그렇게 그 아이에 대해서 소상히 알며 또 우리 며느리자리, 아니지 그 처녀의 사주는 또 어떻게?” 하는 마님의 물음에 무당은 그간의 할머니와 관계를 소상히 밝히며

언젠가 할머니가 답답한 심정에 고모의 생사와 만약 요행으로 살아난다면 앞날에 대해 알고 싶다고 왔을 때 이상하다 싶어 받아 놓은 것이라 했다. 보통의 경우는 보름이고 한 달이고 간에 모아놓은 뒤 길일을 택해 태워 없앤다는 무당은 그날 고모의 사주를 보고서는 후일을 기약으로 남겨 두었다고 했다. 그날 무당이 이상 타 생각한 것은 세상이 포기한 어린 계집아이의 사주에서 어째 아들딸이 보이고 이런저런 복이 넘쳐나기에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고 했다. 더 없이 미래가 궁금한 까닭에 직업병이 도졌다고 했다. 후일 연분이 생긴다면 과연 어떤 배필을 만날까 싶어서 선뜻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한데 오늘 이렇게 하늘이 맺어준 천생배필을 보는데 자신의 판단이 틀림없어 기쁘기 한량없다며 덧붙여 당부 겸 말하기를

“처녀의 과거지사나 현재의 살림살이를 따지지 말고 둘을 맺어준다면 분명 복을 있을 겁니다. 없는 복도 깃들어 자손이 주렁주렁하여 번창할 겁니다” 하고는 달리 궁금한 점이 없으면 돌아가란다. 오늘 이후 달리 인연이 있다면 근일 간, 다음날 또 만나자며 복채는 그때 가서 알아서 계산하자며 피곤을 핑계로 자리를 깔더란다.

가만히 앉아 머리를 조아려가며 마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할머니는 그즈음 극심한 자기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할머니는 몇 날 며칠의 밤낮을 두고 벼르고 별렀다. 여차하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품 안에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품고 왔다. 한데 일이 너무 싶게 풀리고 있다. 꼬인 실타래가 풀어지듯 만사가 너무 쉽다 보니 호사다마라고 언제 어느 곳, 어떤 지점으로부터 마가 끼어들까 싶어 불안 키만 하다.

삼국지에 따르면 유비가 이끄는 촉군(蜀軍)이 양수(楊修)의 계륵(鷄肋)으로 유명한 한중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때였다. 촉왕(蜀王) 유비(劉備)도, 연인(燕人) 장비(張飛)도, 상산(常山) 조자룡(趙雲, 子龍)을 비롯한 장수와 참전한 모든 병졸이 술과 기름진 안주를 놓고 대취하여 흥청거렸다. 이대로라면 천하통일의 대업이 눈앞으로 왔다 여겨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다. 그때 그 자리에서 오직 제갈량(諸葛亮)만 홀로 근심에 젖어 있었다. 복은 화와 함께 온다는 세상 진리를 근심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곳으로부터 이 잔치판에 찬물을 끼얹으려나 싶어 전전긍긍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얼마 후 형주(荊州)를 지키던 관우(關羽)의 부음을 접한다. 관우가 죽자 장비는 전군에 명하길 3일 안에 흰 상복을 입으라는 무리한 고집 끝에 범강과 장달에게 목숨을 잃는다. 장비가 측근 부하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자 이 모든 책임을 동오(東吳)로 돌린 촉왕(蜀王) 유비가 복수심에 불타 전면으로 나선다. 제갈량의 만류에도 75만 대군으로 공격했건만 오장(吳將) 육손(陸遜)의 계략에 휘말려 이릉대전(夷陵大戰)에서 크게 패한 뒤 백제성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침착하지 못한 판단이 대세를 거슬러 버린 것이다. 이후 제갈량이 북진을 꿈꾸며 출사표(出師表)를 올리는 등으로 고군분투,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천하를 도모했건만 수포에 그치고 유비의 촉국(蜀國)은 3국 중 가장 먼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운의 나라가 되었다질 않는가?

할머니는 이 모두가 행여 꿈이 아닌가 싶어서 손톱으로 종아리를 꼬집는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혀서 하심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상하구별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하는 마님의 말은 아니 들은 것으로 여겨서 이후 기분에 겨운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생각했다. 재차 종아리를 꼬집은 손가락에 힘은 주는데 짜릿하여 아픈 것이 진정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짜릿한 아픔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는 할머니는 세 치 혓바닥은 자신을 베는 칼이라는 말을 떠올려 아예 입을 닫으리라 다짐이다, 마님의 재채기 한 번에도 몸살을 앓아누울 정도의 처지의 할머니는 애당초 반항에 혼담을 물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격으로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일이 틀어질 경우는 머리를 조아려 없는 죄에도 용서를 구하여 머리를 풀어 간청할 작정이었다.

한데 지금껏 마님의 입을 통해 들어온 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이미 정해진 혼사나 다름없다. 마님이 작정하여 고모를 며느리로 점찍은 이상 달리 이설을 달 수가 없는 지경이다. 또 할머니가 머리를 풀어가며 죽기로 반대할지라도 마님이 이미 작정한 이상 고모는 마님의 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내 딸을 내 마음대로도 못하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갑자기 고모가 아깝고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날의 간절함은 잊고 이대로 곱다시 고모를 며느리로 내어준다면 한참이나 밑진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입도 벙긋 못하는 할머니다.

마침내 마님은 그간에 있었던 본인의 이야기를 끝냈다며 목이 타는지 식어 빠진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방문이 열리고 점심상이 들어온다.

작은 두레상에 네 식구, 아니 다섯 식구가 아옹다옹, 북적거려 먹던 밥상은 저리 가란다. 직사각형의 교자상에 허연 쌀밥과 고깃국은 기본으로 각종 나물무침과 비린 반찬으로는 큼지막한 굴비 한 마리가 통째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가을을 맞아 제철인 송이 무침도 접시가 적다며 허벅지게 올랐다. 또 두부조림을 비롯하여 실파를 송송 썰어 넣은 계란찜도 꽃으로 수를 놓은 듯 사기그릇에 담겨서 새침데기로 올라앉았다. 한마디로 휘황찬란한 밥상이다. 태어날 때만 해도 목숨을 부지하여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그 딸내미로 인해 이토록 거한 한상차림을 받고 보니 그간의 세월이 꿈만 같다. 괜한 눈물이 앞을 가려 수저 잡기를 주저하는데

“지금껏 저희 욕심에 무례하게 군 점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 한데 찬이 입에 맞으실까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지난 허물을 너그러이 사해 주신다는 의미로 아무쪼록 많이 드십시오! 체면 차리지 마시고 많이 드십시오 안사돈!” 하며 할머니 손에다 수저를 쥐여주는데 다정다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즈음에도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려

“감사합니다. 죄다 다 맛이 있어서 어디에 수저를 두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하며 국물만 숟가락으로 깨작깨작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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